한국투자증권과 대한투자증권 인수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제2금융권 구조조정의 핵심인 동시에 ‘부실덩이’ ‘골칫덩이’로 한참 동안이나 정부와 금융계의 속을 썩였던 두 회사가 순식간에 귀하신 몸으로 변신했다.정부는 3월 안에 인수 희망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매각의향서를 발송할 계획이다. 이를 받고서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는 곳에 정부가 다시 입찰제안서를 보내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재정경제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기관들은 30곳이 넘는다. 국민은행을 비롯해 동원금융그룹 미래에셋그룹의 사모펀드(PEF), 동부 등 국내 자본과 AIG, HSBC, 영국계 보험사 푸르덴셜, UBS, 모건스탠리 등 해외의 거대 금융사들, 그리고 뉴브리지, 올림푸스, 칼라일 등 외국계 사모펀드들마저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 투신사 대표는 “금융사 CEO라면 누구든 ‘살 수 만 있다면 묻지마 투자라도 해야 된다’고 농을 할 정도로 갖고 싶어 하는 게 한투와 대투다”고 말했다. 인수 의향 있는 곳이 어디냐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라는 얘기다. 더구나 앞으로 인수 희망자들이 각자의 처지와 돌아가는 상황에 맞춰 컨소시엄을 구성, 복잡하게 합종연횡을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주인이 누가 될 것이냐는 아직 미궁속이다. 외국계 펀드들의 경우 최근 해외자본, 특히 펀드에 매각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여론의 부담이 크므로 단독 인수보다는 컨소시엄을 구성하게 될 공산이 크다. 많은 구매 희망자들은 국민연금 등 자금도 있고 향후 운용사의 큰 고객이 될 연기금을 파트너로 맞이하고 싶어 안달이다. 또 ‘사고 싶은’ 이들은 부지기수이나 정작 ‘살 능력이 있는’ 곳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투신업계에서는 일찌감치 언론을 통해 인수 의사를 강하게 밝혔던 곳보다는 조용하게 물밑 작업을 진행 중인 곳이 결국 인수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고 있다.조금이라도 나은 곳에, 더 값을 쳐서 팔아야 할 재경부와 예금보험공사로서는 경쟁이 거셀수록 신이 날 수밖에 없다. 최근 재경부는 “두 회사를 한꺼번에 사겠다는 곳도 있다”, “HSBC도 관심이 있다”등 진전 상황을 맛보기로 조금씩 흘리면서 조금이라도 더 잘 팔기 위해 분위기를 띄우는 기본적 매각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한투, 대투가 인기절정이 된 직접적 계기는 구매 희망자들이 푸르덴셜이 현투를 매입하는 과정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구매자 입장에서) 가격도 괜찮았고, 정부가 부실을 보전해준다는 것도 확인했으므로 안심이 된 것이다. 추가 부실에 대한 두려움만 없으면 국내 제1, 2의 투신사인 한투, 대투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먹잇감이다. 이것을 갖기만 하면 단숨에 업계 1위가 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많은 외국의 거대 자산운용사들은 한국시장에 진출하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다.갑자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한 데는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의 돌출 발언도 한몫을 했다. 김행장은 지난 2월25일 기자들과 만나 “자산운용에 노하우가 있는 전략적 투자가와 함께 한투나 대투를 사고 싶다”고 갑자기 밝혔다. 그 표면적인 이유는 국민은행의 자산운용 부문을 강화해 펀드 판매 및 운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원하며, 씨티의 한미은행 인수에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금융계에서는 발언의 속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평소 언론 다루기에 능숙한 김행장이 한투, 대투 가격을 좀 올려주기 위해 ‘립서비스’를 해주는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국민은행은 자금이 충분해 전략적 투자가 외에는 필요가 없고, 김행장이 예로 든 것처럼 피델리티나 템플턴 같은 세계적인 운용사 입장에서는 국민은행과 전략적 투자가로 손잡아 ‘윈윈’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도 발언의 속내를 궁금케 하는 요인이다.많은 인수 희망자들 중에 UBS의 행보도 관심을 끈다. 최근 UBS의 이사회 멤버들은 국내에 들어와 한투, 대투 인수와 관련해 금융계 인사들의 의견을 구하고 다녔다. 이들은 합작보다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확실히 하는 방식으로 인수 의사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UBS는 2001년 한투와 제휴를 맺었었고, 이미 2년 전 한 차례 한투운용을 인수하려고 시도했다가 무산된 경험이 있다. 심각하게 인수를 추진했던 만큼 한투의 사정에 대해 깊숙이 알고 있다는 평가다.한투, 대투에는 지금까지 모두 7조4,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매각 가격은 실사 후 추가 부실규모가 어느 정도이고, 정부가 이를 어느 정도까지 책임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투, 대투 인수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부는 “상반기까지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에 대해 한 외국계 투신사 대표는 “연내에 마무리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렇게 매각을 많이 해 본 정부가 대체 뭘 보고 상반기라고 시한을 못 박는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웃했다.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집중 분석한국형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증폭1970년대 세계를 강타했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한국에서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태그네이션(Stagnationㆍ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ㆍ물가상승)의 합성어를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물가상승이 겹치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1970년대 초반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세계경기 사이클이 하강국면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국제유가를 전격 인상함으로써 촉발됐다. 세계경기가 침체돼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석유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해 공산품가격이 덩달아 올랐고, 소비자들의 실질구매력은 급격히 위축됐다. 이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은 미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이 처음 겪었던 일이었다. 당시 세계 경제학의 주류였던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거시경제이론은 곤경에 빠졌고, 팽창지향적이었던 선진국 정부들의 재정의존형 거시경제 정책도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반면 2004년 초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원자재가격 급등 현상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30여년 전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는 세계경기가 침체되고 있던 국면이었으나 지금은 세계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로 접어든 상황이다. 철근, 비철금속 등 원자재가격이 최근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30년 전과 비교하면 가격상승폭도 작다.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이 원자재를 싹쓸이하면서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차이점이다.한 마디로 말하면 최근의 원자재가격 상승 현상은 세계경제가 회복기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최근의 달러 약세로 인해 국제원자재의 달러표시가격이 올랐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국제시세가 그다지 오른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문제는 한국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은 경기가 뚜렷하게 회복되고 있으나 한국은 내수소비가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나홀로 스태그플레이션’이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돌이켜보면 세계경기가 침체됐던 2002년에 한국만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으로 ‘나홀로 호황’을 구가했던 후유증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한국만 세계경기 사이클에서 완전히 이탈, 세계경제의 충격을 완충하지 못하는 구조적 위기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유럽은 원자재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금리인상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내수시장이 너무 나빠 금리인상을 단행하기가 무척 어렵다. 정책 선택의 폭이 그만큼 좁다는 얘기다.지난 2월 한국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3% 올랐다. 전월 대비로는 0.4% 상승했기 때문에 큰 충격은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 발생할 일이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이 금리를 인상하고 경기과열을 식히려고 노력하는 마당에 우리만 경기부양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