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국방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군수산업계에서는 지금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공산권과의 냉전종식으로 대규모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국지전이나 게릴라전쟁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요즘, 미국 군수업계는 테러단체들을 소탕하고 ‘소규모 지역전쟁’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맞춤형 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군수산업의 트렌드’란 제목의 기사에서 “현대의 신개념 전쟁은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을 교란시키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며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전쟁 등을 치르면서 미 군수업계는 오래된 무기 재고를 대부분 정리해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고 보도했다.신문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발언을 인용, “현대전은 정보수집 능력이 뛰어난 소규모 특수부대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보분야에 투자를 많이 해야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9ㆍ11테러와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군수업체들에도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사전정보만 얻을 수 있었다면 9ㆍ11테러는 물론 이라크전쟁에서도 많은 사상자 없이 사고를 예방하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미 군수업체들의 반성이다.조지 W 부시 행정부도 지난해 12월부터 15개 정보기관을 하나로 통합하는 ‘국가정보국(NID) 개편법안’을 강력히 밀어붙이는 등 정보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또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에 대한 정보수집을 위해서는 아랍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정보요원을 키우기 위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미국 정부는 올해 국방부 교육예산에서 3억6,200만달러를 추가로 증액, 병사들의 외국어 교육에 투입할 계획이다.미국 정부는 육ㆍ해ㆍ공군이 서로 기술을 제휴하고 상호간 무기체계도 네트워크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는 각군이 개별적으로 조달업무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자원낭비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통합’(Jointness)이라고 이름 붙여진 각군의 시스템 통합 노력은 무기체계를 넘어 수송이나 부상자치료 등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군수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부시 행정부는 ‘전투의 전산화’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미 국방부는 전투지역과 후방의 작전본부가 인공위성과 안전한 인터넷망으로 연결돼 수시로 교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트북 컴퓨터나 개인휴대용 단말기(PDA)를 활용,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작전명령도 24시간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이라크전에서 큰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인공위성으로 적의 매복지역이나 포탄의 낙하 목표를 정확하게 찾아냄으로써 전투의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다.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미 군수업체들도 무척 바빠졌다. 전통적인 군사용 무기를 제작, 판매해 온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정보수집 및 통신망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군사 정보통신 분야는 기술력만 갖춘다면 마진율이 높은 무기를 국방부에 납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군수업체들 사이에서는 요즘 기술력이 뛰어난 인재를 모시려는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실정이다.실제로 최근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전쟁은 ‘리모컨’(Remote Control)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동화돼 있다. 미군 병력이 작전지역에 투입되기 전 이른바 ‘무인항공기’(UAV)로 지형을 미리 파악하고, 적들을 사전에 무력화시키는 신개념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보다 많은 무인항공기를 생산해 내기 위해 매년 20억달러 이상을 쏟아붓고 있으며, 오는 2010년까지 무인항공기를 2,800대까지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보잉, 노스롭 등 군수업체들은 리모컨으로 원격조종되는 폭탄을 개발, 미군에 납품하고 있다. 레이시온은 적지 상공에서 하루 종일 비행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사진을 전송해주는 무인비행물체를 제작 중이다. 이에 뒤질세라 전투기생산업체 록히드마틴도 손쉽게 작동시킬 수 있는 무인항공기를 생산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미 군수업체들이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신형무기를 개발할 때 될 수 있으면 ‘작고 보이지 않게’ 디자인한다는 점이다. 인공위성, 로켓 등 비교적 부피가 큰 군수장비에도 초소형 부품을 장착, 이동이 간편하고 적군의 레이더망에도 잡히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미 공군이 개발 중인 전술용 인공위성 TacSat-1은 가로 40인치(1인치=2.54㎝), 세로 20인치의 초소형. 제작비용도 수십억달러가 들어가는 기존의 인공위성보다 훨씬 저렴한 1,500만달러에 불과하다. 만약 TacSat-1 개발이 성공을 거둔다면 적군의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군사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적군의 레이더를 피해 이동하는 이른바 ‘스텔스’ 전폭기 제작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군수업체 노스롭이 개발 중인 DDX 폭격기는 길이가 100m가 훨씬 넘지만 적군의 레이더에는 포착되지 않는다. 미 국방부는 스텔스 전폭기에 사용되는 기술을 해상의 전투함선에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군수산업의 또 다른 트렌드 중 하나는 ‘치명적이지 않은’(Non-Lethal) 무기를 개발해내는 일이다. 이라크전처럼 소규모 전쟁에서는 민간인의 대량살상을 최소화할 필요성이 생겼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군 병사들이 치안유지 등 경찰활동을 대행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죽이는 무기는 사실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적을 사살하지 않고 제압하는 무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엄청난 굉음으로 적의 청각을 마비시키거나 전자파를 쏘아 전투지역의 모든 에너지원을 무력화하는 무기도 개발돼 있다. 아메리칸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장거리 청각마비 장치’는 반경 450m 안에 있는 적들의 청각을 마비시켜 두통이나 멀미가 나게 만든다. 이밖에 도로를 미끄럽게 만들어 적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화학물질이나 피부표면에만 상처를 나게 하는 신형무기도 나와 있다.이처럼 신형무기와 군수장비가 속속 개발되면서 군수산업에 투입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어나 있다. 신형무기가 개발될 때마다 실험을 실시한다면 낭비되는 자원과 시간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최근 미 군수업계에서는 사전실험을 거치지 않고 제품을 실전 배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라크전쟁 이후 중동지역 국가들의 무기 수입이 확대되면서 신형무기들은 ‘실전 경험 없이’ 전투지역에 보내지는 것이다.미 군수산업 컨설팅 전문업체인 사이언스 어플리케이션스 인터내셔널의 단 자니니 대표는 “소규모 전쟁은 군수업체들이 새롭게 개발한 무기를 실험해보고 매출도 늘리는 훌륭한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현재 미국의 군수업체들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 국가에는 무기수출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각국간 군수산업의 협력체제 확대는 새로운 트렌드 중 하나다. 미국 정부는 효율성만 입증된다면 외국산 군수물자라도 환영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이 때문에 미국의 군수업체들은 전세계를 돌며 시장을 개척하고, 저렴한 가격에 신형무기도 수입해 들여오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유럽은 물론 브라질의 군수업체들과도 파트너십을 맺어 F-35 전투기 등 신형무기를 개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외국기업들과 함께 장갑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에 뒤질세라 보잉 등 다른 군수업체들도 BAE시스템스(영국), 에어버스(유럽) 등 외국의 협력 파트너를 물색 중이다.<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곳곳에서 소규모 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남에 따라 미국 군수업체들의 올해 전망도 매우 밝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