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종합상사 이토추에서 31년간 건자재 관련 일을 하다 2002년 말 퇴직한 이와이 료지씨(58)는 지난해 11월 한 통의 e메일을 받았을 때의 감격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10월에 개설한 자신의 통신판매 사이트에 첫 주문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일류기업을 다니며 건자재 분야에서는 프로세일즈맨의 찬사를 수없이 들어봤지만 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물건을 팔게 된 것은 그 당시가 난생 처음이었다. 더구나 남의 회사가 아닌, 자신이 차린 회사의 첫 고객을 맞게 됐으니 감격은 샐러리맨 때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그가 쌀겨로 발효식품을 만드는 주식회사 사이와이발효식품을 차린 것은 지난해 3월. 퇴직금 등으로 마련한 700만엔을 종자돈으로 털어넣어 설립했다. 일본의 상법상 주식회사와 유한회사 설립자본금은 최저 1,000만엔과 300만엔. 상법을 있는 그대로 적용한다면 사이와이발효식품은 주식회사라는 명칭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이와이씨는 처음부터 주식회사의 간판을 내걸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고 믿고 있다. 무명의 신설법인이 단기간에 판로를 개척하고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데는 법인 형태를 주식회사로 하는 것 이외에 더 좋은 길이 없음을 실감해서다.상법 규정에 크게 모자라는 700만엔의 돈으로도 이와이씨가 주식회사 간판을 내걸 수 있었던 것은 때마침 경제산업성의 주도로 도입된 최저자본금 규제 특례제도가 2월부터 정식 시행된 덕택이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예비기업인들의 창업 의욕을 북돋우고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목적의 하나로 중소기업도전지원법을 제정, 신설법인의 자본금 최저한도 조항을 면제해주도록 했다. 시행기간은 2003년 2월부터 5년간. 한시적 조치이긴 하지만 빈껍데기나 다름없는 자본금 1엔짜리 기업도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도록 한 파격적인 제도였다. 물론 경제산업성은 사업내용과 목적 등을 사전에 심사, 엉터리 회사의 마구잡이식 난립을 사전에 막았다. 특례제도를 활용해 설립된 회사에 대해서는 매년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등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으며, 설립 후 5년 내에 자본금을 1,000만엔으로 늘리지 않으면 법인을 청산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아이디어와 의지는 있어도 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창업 문턱을 대폭 낮춰 주기는 하되 사후감사와 규제의 고삐는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하지만 시행 후 만 1년을 맞은 이 제도가 일본 열도에 뿌린 창업의 씨앗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특례제도를 이용해 생겨난 신설법인은 지난 1월16일까지만 해도 무려 8,138개사에 달했으며, 특히 자본금 단돈 1엔짜리의 벤처기업도 300개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언론은 이와 관련, 특례제도가 탈(脫)샐러리맨을 노리는 직장인들의 창업 러시에 불을 댕긴 것으로 평가한 후 학생, 주부들도 창업 전선에 뛰어들게 하는 등 일본의 기업가 저변 확대에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샐러리맨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사업가로 변신한 사이와이발효식품의 이와이 사장은 창업 반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회사를 안정적 성장 궤도에 올려놓은 인물이라며 특례제도의 성공 모델로 꼽고 있다. 사업 시작 후 수개월 만에 정부계 금융기관으로부터 550만엔의 융자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 그는 지난해 4월 생산라인을 정비해 냄새가 나지 않고 먹기 편한 쌀겨 발효식품의 본격적인 양산 체제를 구축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특례제도를 발판으로 대박의 꿈을 키워 가고 있는 새내기 기업가의 사례는 이와이 사장 한 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웹사이트 개발과 리스회사를 대상으로 한 금융시스템 구축을 주 업무로 지난해 2월 법인 설립신고를 마친 유한회사 ‘오픈톤’의 사토 다이스케 사장은 첫해부터 괄목할 만한 성적을 올린 실력파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한회사인 오픈톤의 설립 자본금은 100만엔. 이 자본금마저도 예전 직장동료들과 자신의 호주머니 돈을 털어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은행 등 금융기관용 정보시스템의 개발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실력을 밑천으로 갖고 있는데다 경제산업성의 지원을 받은 특례기업인이라는 점이 공신력으로 이어지면서 순탄한 궤도를 달렸다. 거의 맨주먹으로 세운 회사이긴 했어도 외부에서 빌린 돈이 없었으니 이자 때문에 허덕이지 않아도 돼 무엇보다 좋았다. 곧 결산 작업에 들어갈 오픈톤의 첫해 매출은 약 4,000만엔. 법인 설립등기를 마치면서 목표로 삼았던 2,000만엔의 곱절이나 되는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된데다 초기부터 흑자를 내게 돼 사토 사장은 특례제도에 진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경제산업성이 특례제도 적용을 신청한 창업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창업 전 직업은 샐러리맨이 74.6%로 가장 많았으며 주부가 6%, 무직이 3.8%순이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33.9%로 1위를 차지했으며 50대가 그 뒤를 이었다. 30대 중반 샐러리맨의 상당수가 인생 항로 전환을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사결과는 역시 특례제도가 샐러리맨의 입맛에 가장 근접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물론 1엔 기업 전성시대의 개막을 뒷받침한 특례제도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본 뉴비즈니스협의회의 시타 쓰토무 회장은 “특례제도 시행 후 벤처기업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벤처, 신생 기업에 대한 사회적 불신만 조장할 수 있다”고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특례제도를 이용해 간판을 올리긴 했지만 경험 부족과 주위의 편견 등의 이유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새내기 기업도 적지 않다. 간병, 노약자 개호서비스 등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는 마드리드사의 경우가 그 본보기다. 자본금 10만엔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자금 조달을 위해 정부계 금융기관에 200만엔의 융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회사측은 “정부가 특례로 인정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회사의 장래성을 재는 잣대로 자본금 등 금고 사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하지만 시행 후 1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놓고 본다면 경제산업성의 결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가 우세한 게 사실이다. 도쿄상공회의소의 이노우에 유스케 부회장은 “창업의 길을 대폭 넓히고 학생, 주부 등 일반인에게 기업 마인드와 도전 의지를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특례제도는 칭찬받아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사이와이발효식품의 이와이 사장은 “벤처기업의 성공 조건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스피드에 있다”며 “특례제도는 회사 설립과 자금 조달에 들어가는 시간 단축에 절대적 힘을 발휘했다”고 감사를 아끼지 않았다. 손쉽게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데다 돈을 끌어대느라 여기저기 다리품을 팔고 다니지 않아도 된 덕에 그만큼 스피드를 훨씬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경제산업성은 특례제도에 대한 재계와 국민들의 평가가 우호적으로 나타나자 아예 회사 설립시의 최저자본금 제도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오는 2005년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이 법안에서 경제산업성은 자본금 규제를 완전 철폐한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굳히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현재 시행 중인 특례제도가 앞으로 도입될 최저자본금 규제 철폐에 대비한 사전 실험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일본 경제는 90년대 이후의 초창기 불황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와 관료들의 일반적 평가다. 하지만 샐러리맨과 서민들은 봄이 왔다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한 채 구멍난 지갑을 메우기 위해 부업과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백방으로 뛰고 있다. 경제산업성의 특례제도와 최저자본금 규제 철폐가 몰고 올 비즈니스 전선의 대변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