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삼킨 새우.’ 이보다 더 적당한 표현이 있을까. 지난 2월5일 영창악기를 인수한 김종섭 스페코 회장(57)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몸집이 서너 배나 큰 기업을 잇달아 인수하다 보니 자연스레 붙은 별칭이다. 실제로 99년 한라중공업 플랜트 부문 인수를 시작으로 전개된 그의 M&A 이력은 ‘화끈’하다. 씨름으로 치면 금강급 선수가 백두급을 단숨에 둘러메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격이 빠르고 정확하다. 공격 뒤 관리능력도 탁월한 편이다.2000년 말에는 스페코보다 자본금 규모가 70배나 큰 한국중공업 인수전에 뛰어들어 비록 실패했지만 국내 굴지의 그룹인 두산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후 다소 주춤하다 싶더니만 어느새 삼익악기와 영창악기를 차례로 인수, 국내 악기시장을 싹쓸이했다. 그의 날카로운 M&A 칼날은 해외기업도 겨냥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피아노업체인 베흐슈타인을 꿀꺽 삼켰다. 이로써 세계적인 악기 메이커인 일본의 야마하와 ‘맞짱’을 뜰 만큼 힘을 키웠다. 야심은 더 크다. 세계 악기시장을 평정하겠다는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는 정확하게 99년 10월까지만 하더라도 매출액 300억원대의 중소기업인 스페코 CEO였다. 국내 재계에서 그를 아는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페코, 삼익악기, 영창악기 등의 총매출액을 합치면 2,500억원을 거뜬히 넘어서는 중견그룹 CEO다. 무엇보다 국내는 물론 세계 악기시장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큰손’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어떤 인물인가박회장은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66학번)를 졸업했다. 79년 2년간의 직장생활(대한항공)을 밑천 삼아 창업의 길로 나서 신생플랜트산업(현 스페코)을 설립한다. 스페코는 건설 및 환경설비가 주력으로 작지만 강한 기업이었다. 특히 그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해외사업에서 강점을 발휘했다. 운도 좋아 80년대 중동건설 특수와 90년대 동남아 개발 붐을 타고 성장가도를 달렸다. 이러다 보니 IMF 시절에도 지속적으로 흑자를 내면서 그의 이름은 조금씩 알려졌다. 무엇보다 알토란 같은 자금 여력이 생겨났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다각화에 적극 나선 것이다. 99년에는 코스닥시장에도 입성했다.그의 잠재돼 있던 M&A 실력은 99년 11월 처음으로 발휘됐다. 한라중공업 플랜트 사업부를 25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고래’를 삼킨 ‘새우’로 세간에 기억됐다. 당시 한라중공업 플랜트사업부는 자산가치만 3,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스페코는 300여억원에 불과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이변’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변’은 계속됐다. 더군다나 인수 뒤 1년 만에 흑자로 반전시켜 ‘중소기업이 부도난 대기업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그는 첫 M&A가 성공으로 마무리되면서 크게 고무됐다고 한다. 2000년 말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전에 뛰어든 것도 여기서 얻은 자신감 때문인 것으로 측근들은 전했다.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출사표에 업계는 화들짝 놀랐다. 총자산 3조6,000억원짜리 거대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니 그럴 만했다.결국 한국중공업의 주인이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는 전문적인 M&A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핸들을 돌렸다. 그가 주목한 기업은 삼익악기였다. 당시 법정관리 상태였던 삼익악기는 마땅한 인수자가 없어 고역을 치르던 시기다. 악기산업이 세계적으로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었기에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던 것. 남들은 머뭇거렸지만 김회장은 과감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당시 김회장이) 우선 땅이 많은데다 큰 부지를 갖고 사업을 영위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땅을 매각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면 충분히 정상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그는 신속하게 움직였고 2002년 6월 삼익악기를 1,250억원에 인수했다. 삼익악기는 일본의 야마하, 영창악기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악기회사로 통할 정도로 전통이 깊은 회사다. 당시 종업원이 약 1,560명, 매출 규모 1,500억원대로 이 또한 새우가 고래를 삼킨 꼴이다.삼익악기를 인수한 김회장은 악기산업으로 세계 재패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전초전으로 2002년 12월 독일의 베흐슈타인을 55억원에 사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최근 영창악기를 110억원에 인수해 국내 악기시장의 천하통일을 이뤘다. 그리고 세계 제패를 위한 강력한 진용을 구축했다.삼익악기 관계자는 “영창악기를 인수함으로써 국내시장의 97%,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시장의 32%를 차지해 명실공히 한국과 미국에서 1위 업체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영창악기는 중국에서 완성품 제조업체를 갖고 있어 고가품은 독일에서, 중가품은 한국에서, 저가품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등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스타일과 전략은김회장은 결단력과 추진력이 강한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이익이냐, 손해냐’를 판단하는 속도가 빠르고, 한 번 결단하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측근들은 전한다. 실제로 그가 인수전에 뛰어든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건설설비업체이자 중소기업인 스페코가 뛰어들 것이라고 예측한 이가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과감했다는 뜻이다.아울러 구조조정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이다. 한라중공업 플랜트 사업부나 삼익악기 등은 인수 뒤 과반수의 인력을 감축했지만, 노사간의 격한 마찰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와 오랫동안 교류해 온 한 측근은 “(김회장은) 기업을 설립하건 인수하건 3개월만 경영해 보면 청산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그가 M&A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2년 서울대 최고경영자 과정 시절의 동창생들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김인주 전 한국종금 사장, 박수남 삼원가든 사장(여자 프로골퍼 박지은 선수 부친) 등을 만났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승렬 전 회장으로부터 살아 있는 실전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김인주 사장이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줬다”고 회고했다.그가 추진한 M&A에는 골든브릿지, 캐피탈라인 등의 전문기업들이 참여했는데 이들 기업에는 본인은 물론 김 전 사장, 박사장 등이 주주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김 전 사장은 훗날 삼익악기 인수 주체로 나섰던 캐피털라인의 사장을 역임했다.그가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세계 1등에 대한 ‘큰뜻’을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형민 스페코 이사는 “(김회장이) 뭐든지 1등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전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기계분야는 원천기술을 선진국이 갖고 있지만 악기산업은 조금만 노력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말하곤 한다는 것. 삼익악기 인수 뒤에는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출하고 있다. 삼익악기 관계자에 따르면 사무실에서 늘 클래식을 들으면서 업무를 볼 정도라고 한다.김회장은 앞으로 삼익악기와 영창악기 경영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가 “스페코 회장을 겸임하고 있지만 공식명칭을 삼익악기 회장으로 해달라”고 주문할 정도다. 그가 국내 악기시장의 석권을 발판 삼아 세계시장의 천하통일도 이뤄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