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서울 역삼역을 지나던 중 북과 장구, 그리고 확성기로 들리는 A카드 노동조합의 시위를 보았다. 잠시 퇴근을 재촉하던 발을 멈추고 이제는 일상의 하나가 돼 버린 시위의 광경을 바라보다가 ‘왜 우리의 파업문화는 이런 방식으로 정착이 돼 버렸는지’ 생각해 보았다.사실 아주 익숙하게 주어진 이런 파업문화는 1980년대 이후 만들어진 시위문화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옛날부터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처럼 기다리기보다 소리치고 외치고 주장해야 뭔가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 돼 버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필자도 이런 문화를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제기됐다. 몇 해 전 공부를 하겠다고 뒤늦게 떠난 영국에서 공교롭게도 몇 번이나 파업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임금 인상과 관련, 버스노동조합이 파업을 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신경 쓰지 않았던 필자는 한없이 버스정거장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정말 파업이었다. 버스는 다니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러려니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시위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철도가 민영화돼 있는 영국에서는 종종 일부 지역에서 파업을 했다.그러면 기차가 구간별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플래카드나 주장과 요구를 뿌리거나 알리는 것도, 그 무엇도 볼 수가 없었고 다만 알림판에서 파업으로 인해 열차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만 전하고 있었다. 물론 파업 도중에 그들이 모여서 어디에서 시위를 한다는 뉴스를 접해 본 적도 없다.또 교원노조에서도 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로 대립했으나 역시 시위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영국 특유의 서로 간섭하지 않고 현장에서의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자발적 노사문화’가 존재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주 일찍이 산업혁명을 이루고 근대화를 이뤄 약 150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노동조합은 일찌감치 자신들의 요구를 의회를 통해 반영하는 것이 가능했고 노사간의 대립으로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았다.1980년대 대처 정부하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극한 대립을 보였던 시절도 있었다. 견학차 방문했던 영국의 광산에서 그때의 모습을 잠시 확인할 수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경찰이 파업노동자를 진압하려는 모습들을 사진전으로 보존하고 있었고, 그 사진을 설명하는 교수도, 지금은 오너의 위치에 있는 광산의 노동자들도 상당히 탄압받았던 시절로 회상하듯이 설명했다.그렇지만 필자에게는 그다지 심각한 모습이 아니었다. 만일 그들이 우리나라의 분신하는 노동자나 파업시위를 보았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영국이 그렇다고 해서 요구조건이 약한 것도 결코 아니다. 그들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30%에 육박한다. 교원들의 월급을 성과급으로 하자는 정부의 발표에 교사들은 상당히 크게 반발했다. 노동조합은 노동당을 압박했고 명백한 반대의사를 전달했으며 차기 선거에 지지하지 않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무엇이 달라서 일까?이유는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역사적인 전통과 사회적인 배경이 다른 것도 하나의 이유이며 조직보다 개인이 중시되며 프라이버시를 중시해 항상 일정한 거리(Arm’s Length)를 유지하는 풍조도 이유가 될 것이다.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문제를 풀어 가는 방식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일단 의심부터 하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단체교섭을 하더라도 일단 속내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무조건 자신의 처지에 기초해서 유리하게만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한다.어디 그뿐인가. 회사 내에서 사훈과 현실은 따로 논다. 사훈은 사원 존중, 신뢰와 열린 경영을 외치지만 회사의 직원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하급 직원은 무조건 상사의 말에 복종해야 하며 하급 직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는 실제로 좁다. 어쩌다 의견을 잘못 제시하여 눈 밖에 날 경우 고과 점수에 당장 반영된다. 상사의 평가와 하급 직원의 평가 기준이 다르고 인사고과의 원칙은 존재하되 현실에서 그 원칙은 무용지물이다. 하급 직원은 하급 직원 대로 매일 회사에서 결코 믿으면 바보라는 사실을 학습하고 상급자는 상급자 대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뢰보다 현실의 이익을 앞세우며 모든 것을 합리화한다. 교육을 열심히 시켜 준 직원도 언젠가는 뒤통수를 치며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직원에 대한 투자가 주판알처럼 계산된다. 이것이 바로 교과서에도 없고 겉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소위 HR적인 측면에서 잘 안될 수밖에 없는 기업의 속내이다.피터 센지(Peter M Senge)는 그의 책에서 노사간에 균형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규율(Self-Regulation)과 자기수정(Self-Correcting) 과정이 체계화된 균형고리(Balancing Loop)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것은 단순히 그간에 존재했던 조직도 아니고 규율도 아니다. 조직이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 노사간의 대화(Communication)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이런 두 가지의 개념은 각 회사의 분위기와 실정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노사간에 자기규율과 자기오류를 수정해 가기 위해 허심탄회한 간담회의 개설도 구상될 수 있다. 간담회가 그동안 없었겠는가. 부서 내 회식도 있고 캔미팅, 사원고충간담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돌아보자. 과연 그 자리에서 센지가 던져 주는 메시지를 위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검토했는가.노사간에 단체협상 과정에서 두 가지 개념이 전제된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외치고 소리쳐야 얻을 수 있다는 의식은 점차 가라앉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KTF의 열린 경영 대토론회는 이런 면에서 성공적인 케이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측의 발의로 시작된 난상토론은 실ㆍ본부 토론회를 거쳐 전사 대토론회로 발전했고, 그야말로 토론 과정에서 자기규율과 자기수정의 단초를 발견하고 대화의 채널이 형성된 것이다. 계림요업은 한때 노사분규로 인해 폐업에 이르기까지 했던 회사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기존 근로자 대부분을 재고용해 사업을 재개하고 강성 노조가 아닌 노사협의회를 통한 진정한 대화와 협력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성숙한 대화의 문화를 형성해 이제는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유한양행에서는 아예 노사가 아니라 노ㆍ노라고 하며 “우리 회사에는 노사가 없다”며 “사장도 말단사원에서 출발한 근로자 출신인데 노사를 따로 가를 수 없다”고 설명한다.결국 중요한 화두는 신뢰형성이다. 어떻게 신뢰를 형성할 것인가라는 것이 중요하며 센지는 이와 관련, 두 가지 개념을 구체화한 균형고리를 만들고 이를 구체화한 대화의 발달 과정을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체계가 불안정한 단계(Instability of the container)라고 한다. 일단 균형고리를 형성하기 위해 노사가 초대되고 대화를 시작하고 주제가 제기되는 것이라 한다.두 번째 단계는 체계 내 불안정성(Instability in the container) 확인 단계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의견이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대립되는 부분을 발견해 토의가 이뤄지기도 하고 때로 대화를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상황(Suspension)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체계 내 검토(Inquiry in the container)가 이루어진다. 이때는 물론 잘되는 경우 정교한 토론이 돼 마침내 체계 안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단계(Creativity in the container)로 발전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파행적으로 나아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형태로 갈 수도 있다.결국 신뢰라고 하는 것은 몇 단계의 대화 발전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관철되야 할 상호간의 자발적인 규율과 수정이라는 철학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은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속단하고 규정하는 것은 아닌가. 신뢰하는 노사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로 노력을 해 왔는가, 회계나 경영전략은 명확하되 인사가 받쳐 주지 않는다는 평가 이전에 인사에 대한 마인드를 먼저 재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말하는 대로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노사문화는 결국 인적자원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21세기에 있어 가장 없애야 할 주요한 기업 내 적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