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그걸 어떻게 말로 다해요. 소설을 써도 몇 권은 될 텐데요.”성미숙 에코트로닉스 사장(38)은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쾌활한 웃음으로 대꾸했다. 하긴 그렇다. 대학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에서 15년 만에 사장자리에 오른 비결을 무슨 수로 ‘간단하게’ 요약한단 말인가. 그것도 보수적인 일본계 기업에서 ‘여자’라는 핸디캡을 이기고 올라온 과정인 것이다.“주인의식이었던 같아요. 처음부터 내 회사라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내가 실력을 발휘해 회사에 주는 것보다 회사가 나에게 주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습니다.”마음가짐이 이러니 일에 전력투구한 것은 당연지사. 맡은 부서의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국어를 익히는 데도 힘을 다했다. 외국계 회사인 만큼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가 필수였던 것. 3년간 학원을 다니면서 입사 당시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일본어를 마스터했다. 지금은 물론 수준급의 일본어를 구사한다.“일본 본사 회장이 가끔 들러 안면을 텄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성미숙이 장차 에코트로닉스를 이끌 게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답니다. 당시에는 일본어를 못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나 봐요.”노력에는 반드시 열매가 따르는 법. 성사장은 남보다 빠르게 승진을 했다. 하지만 옛말이 그르지 않아 성사장에게도 ‘호사다마’가 벌어졌다. 성사장과 승진경쟁에서 뒤처진 한 직원이 영업비밀을 고의로 흘리고 다녀 거래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성사장은 눈물로 읍소해 거래를 이어가야 했다. 이 사건은 에코트로닉스가 상사 기반에서 제조 기반으로 체질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됐다.무역만 하던 상사가 제조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어려움이 적잖았다. 우선 기술이 문제였다. 게다가 어군탐지기는 ‘초음파’라는 첨단기술을 응용한 제품이어서 기술력 부재는 결정적인 장애였다. 하지만 궁즉통이라고 했던가. 마침 아웃소싱을 주던 업체가 공장을 이전하면서 기술진 몇 명이 따라가지 않고 남아있었다. 당시 이사였던 성사장은 이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 합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기술이 안정궤도에 오르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이 과정에서 일본측 거래업체가 사정을 많이 봐줬습니다. 한번 실망을 한 후에도 ‘한번 신뢰를 주면 끝까지 같이 간다’는 게 그쪽 방침이었거든요. 에코트로닉스가 기술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더군요.”일반적으로 여성 경영자들은 안정지향적이어서 변화나 개혁에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최소한 성사장은 그렇지 않다. 최초 일본기업의 한국사무소에서 독립적인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법인이 전환했을 때도, 상사에서 제조업으로 변신할 때도 성사장은 최일선에 있었다. 그리고 성사장은 지금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카메라폰 모듈을 비롯한 첨단영상사업에 진출한 것이다.신규사업을 위해 지난해 9월에는 일본 가와사키시의 ‘아시아 기업촌’에 입주했다. 일본의 선진기술을 배워 시장진출을 앞당기겠다는 전략이다. 또 올 봄에는 기존의 공장을 증설하고 새로운 국제환경규정에 대응하기 위해 납을 사용하지 않는 시설도 도입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적잖은 비용이 들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를 주저할 수는 없다는 게 성사장의 소신이다.말단직원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직원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사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거의 ‘모성애’를 느낀다는 것. 공장의 생산과 관리직 직원에게 일주일 1~2회씩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을 정도다. 외부강사를 고용해도 되지만 직원들과 함께하기 위해 직접 챙긴다는 설명이다.“2005년은 에코트로닉스가 다시 태어나는 해가 될 겁니다. OEM업체에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진 첨단기술업체로 거듭나는 원년으로 기록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약력1967년생. 81년 경기대 응용통계학과 졸업. 94년 숙명여대 경영대학원 졸업. 2003년 서울대 최고산업전략과정 수료. 89년 EWIG 한국사무소(에코트로닉스 전신) 입사. 98년 에코트로닉스 이사. 2003년 에코트로닉스 대표이사 사장(현). 2004년 한국여성기업인협회(KIBWA) 부회장(현), 한국IT중소벤처기업인협회(PICCA) 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