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하반기. 캐피털업계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대한민국’을 열탕 속에 몰아넣었던 벤처붐이 순식간에 무너진데다 코스닥시장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진퇴양난에 빠진 업체들은 주머니에 집어넣은 손을 꺼낼 줄 몰랐다.특히 IT기업에 대한 투자는 말도 꺼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KTB네트워크에서는 한 IT업체에 대한 거액(200억원)의 투자건을 놓고 연일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아니, 지금 IT기업이 무슨 전망이 있다고….’ ‘성장성이 충분하다면 과감하게…’ 등의 의견은 엇갈렸지만 결국 이 회사 투자심의위원회는 ‘연간 1,000만대 이상 생산능력이 있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팬택)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투자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불과 2년 만에 1,000억~2,000억원의 투자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이때 투자한 회사가 바로 최근 증권가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상장한 팬택앤큐리텔이다.당시 투자를 이끈 주인공은 구본용 KTB네트워크 기업투자 본부장(상무ㆍ44). “(팬택앤큐리텔) 직원들이 노력을 많이 한 거지요. 어려운 상황에서 좋은 회사가 됐기 때문에 다행스럽습니다.” “요즘 기분이 어떤가”라는 물음에 억양의 고조 없이 ‘별일 아닌 것’이라는 듯이 담담하게 말한다. 하긴 구본부장은 벤처업계와 CRC업계를 두루 거친 베테랑이다. 지난 17년간 KTB네트워크에서 산전수전을 겪었다. 당연히 성적표도 화려하다. KTF, 두루넷, 세원텔레콤 등에 투자해 1,000억원이 넘는 투자이익을 냈다. 또 10개의 구조조정 펀드를 결성, 4,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했고, 연 평균 32%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회사측은 전했다.그래도 수십개의 기업투자를 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지 않을까. 꽤 아팠나보다.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이 튀어나왔다. 그는 반도체 웨이퍼 재생가공기술을 갖고 있는 세일세미콘이라는 회사를 들었다. 97년 성장 가능성에 확신을 갖고 컨소시엄을 구성, 투자에 들어갔지만 불행히도 곧 IMF가 닥치고 말았다. 갑자기 컨소시엄 투자자들이 자금줄을 끊어버린 탓에 결국 부도가 난 것이다.그는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아니, 그래야만 살아남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투자자, 기업이) 윈윈 게임이 돼야지요. 그리고 법적 범위 내에서 딜을 해야 합니다. 또 단기 머니게임보다는 2~3년 후의 밸류를 봐야 되고요. 따라서 ‘끈기’를 가져야 합니다.”그는 후배들에게 ‘끈기’를 유난히 강조한다. 그의 취미도 마라톤이다. 올 들어 풀코스를 두번 뛰었다. 기록은 3시간55분. 일주일에 10km는 꼬박 뛴다. 물론 회사일로도 뛴다. 특히 요즘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10~11시에야 퇴근한다. 정보통신부 IT M&A 펀드 조성건 때문이다.마지막으로 그의 꿈을 물었다. 조금은 건조한 답변이다. “바이아웃(Buy-Outㆍ정상기업까지 범위를 확대한 투자기법)에 주력, KTB를 세계적인 투자사 반열에 올려놓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조금은 살냄새 나는 답변을 원했다. “오는 2006년 안에 보스톤마라톤에서 한번 뛰어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