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등 해외진출도 ‘적극’… 올해 300만달러 수출목표

옴니시스템 직원들은 강재석 사장(47)을 ‘계량기에 미쳐 사는 사람’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계량기를 뜯고 조립할 때면 무엇인가에 홀려 있는 사람 같기 때문이다. 사장실에 들어서면 책상에는 전세계 각국에서 만들어진 계량기가 널브러져 있다. 계량기를 뜯었다 조립했다 할 수 있는 공구도 놓여 있다. 벽에는 계량기의 디자인 도안이 걸려 있다. 한마디로 사장실이 연구실인 셈이다. 강사장은 이곳에서 밤을 새워가며 계량기 개발을 하고 있다. “연구에 매달리면 새벽에 동틀 때까지 계량기와 힘겨운 씨름을 합니다. 그래도 연구실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이런 강사장의 집념이 옴니시스템을 원격검침용 전자식 전력량계 시장의 대표주자로 키워냈다.강사장의 고향은 경남 산청으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7남2녀 중 삼남인 강사장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부친의 강경한 반대를 무릅쓰고 공부를 했다. “땅이나 일구면 되지 무슨 공부냐”며 책을 불태우는 부친과 맞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식투쟁을 할 정도로 공부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어렵게 공부를 해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입학할 수 없는 처지였던 강사장은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당시 동네 사람들이 쌀을 한되씩 거둬 등록금을 마련해줬어요.”영농장학생으로 농고에 들어간 강사장은 대학에 진학해 시골을 뜨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를 눈치챈 부친이 강사장을 고향에 붙잡아두려고 했지만 강사장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강사장은 1974년 겨울에 일을 냈다. 쌀 여섯되를 팔아 마련한 2,700원을 들고 가출하다시피 부산으로 도망쳐 나왔다. “가출 후 3년 동안 단 한번도 집에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부산에서는 중국음식점에서 6개월 동안 ‘철가방’ 생활을 하며 보냈다. 밤에는 공무원 임용시험 준비를 했다.75년 4월 철도청 기능직 임시공무원에 합격하면서 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경야독을 한 강사장은 76년 한양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생이 돼 고향에 내려가니 ‘아들이 대학생이 됐다’며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했던 부모님의 환한 얼굴이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강사장은 대학을 졸업하던 83년 대림산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강사장이 전기설계를 맡았던 천안의 독립기념관이 86년 8월 화재가 난 것. 휴일도 없이 현장에서 지내며 복구의 나날을 보냈다. 6개월쯤 지나자 건설경기가 나빴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재 책임을 물어 퇴사를 해야만 했다. “두달 동안 가족에게 아무런 얘기도 않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와 함께 출근하는 생활을 했어요. 도서관으로 가 신문을 뒤척이며 직장을 찾아다녔습니다. 87년 3월 직장 선배의 소개로 빌딩자동화시스템업체인 나라컨트롤에 입사한 후에야 그간의 사정을 가족에게 털어놓았습니다.”강사장이 사업을 하겠다며 창업전선에 뛰어든 것은 96년 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종자돈 700만원으로 서울 방이동에서 회사 간판을 걸었다.초창기에는 빌딩자동화 수주영업으로 회사를 꾸려나갔지만 98년 원격전력량계를 개발하면서 제조업 기반을 갖췄다.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에 300여대를 납품했다가 제품의 하자로 전량 반품돼 5,000여만원을 날리기도 했다. 99년에는 2년 동안 빚까지 지며 4억원을 들여 개발한 원격 적산전력계를 단 한대도 팔지 못하기도 했다. “제품은 안 팔리고 집은 담보로 잡혀 있는데다 은행빚은 늘어 회사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하지만 IMF 한파가 한풀 꺾이며 일어나기 시작한 벤처붐이 옴니시스템을 살렸다. 강사장은 2000년 초 벤처캐피털을 상대로 기업설명회(IR)를 했다. 처음에는 자료를 제대로 만들 줄 몰라 외면당하기도 했지만 투자심사역이 귀찮아할 정도로 찾아다녔다. “우리 회사 제품이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유망제품디자인 베스트10’에 선정된 것이 투자유치에 성공한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기보캐피탈에서 10억원을 투자받았다. 강사장은 투자받은 자금으로 1년 만에 전력, 수도, 온수, 가스, 난방 등 5가지를 한번에 검침할 수 있는 전자식 원격검침 계량기를 개발했다. 강사장은 현대건설에 영업의 초점을 맞췄다.현대건설의 현장에만 설치되면 다른 현장은 쉽게 뚫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현대건설이 8개월간의 테스트를 거쳐 모델하우스에 원격검침계량기를 설치하고 ‘아파트에 첫 원격검침시스템 도입’이라는 홍보를 대대적으로 했다. 용인 홈타운아파트 422가구에 이 제품이 설치됐다. 그러자 다른 건설업체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2년부터는 삼성, 대림, 포스코 등 대형 건설사들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올 들어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지난 8월 말까지의 수주액만 140억원이 넘었다. “국내 시장에서 원격검침 전력량계 시장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강사장은 요즘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한달에 열흘은 베트남에서 보내고 있다. 지난해 초 베트남 전력청과 계약한 전자식 원격검침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베트남 정부가 향후 10년 동안 전국의 2,500만개 전력량계 중 1,700만개를 전자식 원격검침 전력량계로 교체하기로 했어요.” 이를 위해 베트남 전력청의 요청으로 합작공장을 설립 중이다. 총 40만달러가 투입된 베트남 공장은 시운전이 끝나는 올 연말쯤 본격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카타르, 터키, 우크라이나, 페루 등 10여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특히 중국 상하이에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공장을 두고 있다. 강사장은 “올해 300만달러 수출은 무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베트남 수출이 본격화하는 내년에는 매출이 400억원대로 신장될 것”으로 내다봤다.매출액의 8%를 연구개발비에 투입하는 옴니시스템은 지난 1년간 3억원을 투자해 선불제 계량기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전기와 수도용 계량기로 돈을 낸 만큼만 사용할 수 있다. 회사측은 이 제품을 해외수출용 주력상품으로 내세운다는 전략이다. 강사장은 “한 해외기업과 3억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전자식 계량기 시장을 이끌어가는 리딩컴퍼니로 회사를 키우겠다며 두주먹을 꼭 쥐었다.(031-909-7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