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과 관련된 단어는 항상 부정적인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파산까지 가면 사회적 낙인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그러했지만 현재도 이러한 인식엔 변화가 없다.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보면 빚을 갚지 못하여 감옥에 가는 장면이자주 등장한다. debtor’s prison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을보면 아예 부채 상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하는 교도소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그 앞에 붙은 더러운 이라는형용사로 미루어 시설도 형편없고 처우도 가혹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햄릿에서 폴로니우스가 래테스에게 돈을 빌리지도 빌려 주지도 말라고 충고하는 장면은 인구에 널리 회자된다.◆ 아이젠하워, 재정적자는 자손재산 훔치는 일정치가들이 정부 부채를 비난하는 것도 빚을 지는 개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막대한 부채를 다음 정권에 넘긴 영국 총리 소 피트도 사실은 정부 부채를 갚기 위한 감채 기금을 구상했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정부 부채는 후손에 빚을 물려 주는 것이라며 재정 적자를 자손의 재산을 훔치는 행위라고까지 비난했다. 80년대 말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도 심각한 불황으로 포기하긴 했지만 정부 부채를일소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요사이에 와서 정부 부채는 또 다시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지난 20년간 선진국 대부분의 정부 부채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주요 원인은 경기 침체와 공공 지출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공공지출의 확대는 주로 후생 복지 부문에서 발생했다. 여하튼 거의 모든 나라가 재정 적자의 고삐를 죄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미국에서는 의회와 대통령이 연방 예산을 둘러싸고 대치 상태에 있다. 그러나 최소한 2002년부터는 균형 예산을 편성하여야 한다는점에서는 양측의 의견이 일치한다. 유럽 연합 회원국들은 마스트리히트 협정에 따라 정부 부채를 국내 총생산의 60% 이내로 낮추려고진땀을 흘리고 있다. 연간 재정 적자도 국내 총생산의 3%를 넘으면안된다.재정 적자를 감축하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재정 적자는 경제에 과중한 부담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그렇다고 해서 정부부채가 국내 총생산의 50%인 경제를 물려 받는후손이 정부 부채가 국내 총생산의 100%인 경제를 이어 받는 후손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반대인 경우도 있을수 있다. 국가 부채와 개인 부채를 같은 논리로 접근하려는 데에서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전문적인 표현을 쓰면 현금과 실질 자원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데에서 혼란이 야기된다. 개인에게는 이 차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개인이 현금을 차입, 이를 오늘 사용한다면 현 시점에서의 그의 가용 자원은 늘어나 있는 것이다. 내일 상환한다면 그 시점에서의 그의 가용 자원은 감소된다. 따라서 그는 내일의 가용 자원을오늘 빌리고 있는 셈이다.국가 전체로 보면 현금과 실질 자원의 차이는 엄청나다. 개인의 차입이란 차입 시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의 가용 자원이 감소하는 대신 차입자의 자원이 증가하는 과정이다. 자원의 이전이 발생하는것이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공공지출은 오늘 생산된 자원을 사용한다. 내일 생산될 자원을 사용할수는 없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의 한 국가의 자원총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즉 정부는 내일의 자원을 오늘 빌릴 수 없는것이다(정부 부채란 정부가 국민 또는 해외에 대하여 지고 있는 빚을 말한다. 이 글은 정부 부채를 정부가 자국민에 대하여 안고 있는 부채에 국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해외 부채는 자원의 이전을수반하므로 명백히 후손에 부담을 안겨 준다. 현실적으로 정부 부채에서 해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있다. 30%에 달하는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직 내국 채무의 비율이 훨씬 큰 점을 감안하면 이 글의 분석은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정부 부채가 증가하더라도 미래에서 현재로의 자원 이전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원의 이전 그 자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현 세대내에서 자원은 이전한다. 차입에 따른 이자를 지급하여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납세자로부터 정부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게로 자원이 이동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자. 어느 나라의 연간 총 국민 소득은1억달러이다. 1년차에 정부는 4천만달러를 쓴다. 전액 세금으로 충당한다. 나머지 6천만달러는 개인 소비이다. 2년차에 정부는 역시4천만달러를 소비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1천만달러는 국채를 발행,조달한다. 정부 채무가 발생한 것이다. 개인 소비는 6천만달러에서변함이 없다.◆ 정부부채 증가해도 현재로의 자원이전 없어3년차에 정부 차입은 없다. 경상 지출은 여전히 4천만달러이다. 그러나 특별 지출 1백만달러가 추가된다. 차입금 1천만달러에 대해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이율은 10%로 가정한다.) 따라서세금은 4천1백만달러로 증가한다. 이중 1백만달러는 2년차에 정부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게 간다. 정부부채는 세대간의 자원 이전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차 세대의 자원이 현 세대로 오는 것이 아니다. 동일 세대내에서 움직인다. 납세자 전체로부터 국채 매입자에게 이자의 형태로 이전하는 것이다.그러면 정부는 어떠한 규모의 부채를 일으켜도 관계가 없단 말인가하는 의문이 남게된다. 그리고 미래에 정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가. 관계가 있다. 미래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미래의 자원을 당겨서 사용함으로써 발생한 것과는 다른 성격의 영향이다.첫째로 공공 차입은 현재의 경제에 영향을 끼친다. 차입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경제 상황은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차 세대가 상속받을 경제의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에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차입이 많은 정부는 인플레이션정책을 펼 개연성이 높다. 빚이 많은 개인의 심리와 마찬가지로정부도 부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인플레이션에 대하여 너그럽기쉽다.차후에 물가를 바로 잡으려면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둘째로 세금이 높아진다. 정부 부채를 상환하려면 세금을 더거둘 수밖에 없다.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에왜곡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왜곡이 발생하면 경제에 역기능이 나타난다. 소득과 부가 감소한다.셋째로 정부 차입은 민간 투자를 감소시킨다. 투자가 감소하면 차세대가 물려 받을 지분의 양이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정부 차입이없을 때와 비교해서 차 세대의 생활 수준이 낮아진다.앞의 두 가지 사유는 가능성의 문제이다. 현 정부의 정책여하에 따라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것 뿐이다. 따라서 정부 부채가 후손에 부담이 된다고주장하는 사람들은 세번째 논리를 내세운다. 이 논리를 검증하기위해 앞에 든 예에 대입시켜 보기로 하자. 단 이번에는 우리의 예를 조금 바꿔 국민 소득의 일부가 저축·투자된다고 가정한다.저축을 통해 연간 1천만달러씩 공장 건설에 민간 투자가 이루어 진다고 하면 개인 소비는 5천만달러가 된다. 전에는 6천만달러였다.새로운 공장은 1년에 1백만달러씩 국민 소득을 추가로 발생시킨다고 본다. 1년차에 정부 지출이 전액 조세로 국채를 통해 1천만달러를 조달한다. 민간 투자는 없게 된다. 공장 건설에 투자될 1천만달러가 국채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국민 소득은 1억 2백만달러가 되지 못하고 1억1백만달러에 머물고 만다. 차 세대가 그만큼 손실을입게 된다.위의 예에서 손실 규모는 1백만달러이다. 과연 그만한 손실이 발생할까. 아니 손실이 발생한다는 주장 자체가 얼마나 핍진성이 있는가. 이 문제를 파고 드는 것이 바로 정부 부채가 후손에 부담을 지우는가 여부를 둘러싼 논의의 핵심에 다가서는 것이다.손실이 발생한다는 주장의 저변에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려있다. 그하나는 모든 정부 지출은 비생산적이라는 가정이다. 또 하나는 정부 차입은 저축될 돈을 흡수함으로써 투자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이 말을 뒤집으면 과세는 소비에만 영향을 준다고 말할 수도 있다.과연 그러할까.◆ 정부 부채 후손부담 여부, 부채규모와는 무관해공공 지출이 항상 소모적인 것 만은 아니다. 공무원 급여는 소모성지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사회 간접 자본에 대한공공 투자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측 가능한 수익성 사업이다.민간 투자보다 수익성이 높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정부 채무로 민간 투자가 감소한 것이 국가 경제에 더 큰 이익이 된다. 영국에서는 80년대 말에 도버 해협 터널공사로 막대한 규모의 민간 자금이 투입되었다. 이 돈을 정부 차입의 형태로 재정 부문에서 흡수, M25 고속도로 확장 사업에 전용했다면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는더 좋았을 것이다.정부 지출이 계수화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익을 낳는 경우도 많다. 교육과 의료에 대한 당기의 지출은 차기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인다. 국방은 더욱 그러하다. 과거 나폴레옹 전쟁에 이기기위하여 피트 총리가 쏟아 부은 막대한 「투자」의 수익성은 계산이불가능하다. 2차 대전에서의 처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선조들이 정부 부채가 후손에 끼칠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전쟁에졌다고 하면 지금 우리들은 고마워할 것인가.두번째 전제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즉 공공 차입은 저축에 흘러 들어갈 돈을 가로 막아 민간 투자를 줄일 지도 모른다.그러나 소비를 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역으로 증세가 소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세금을 높이면 저축과 투자도 줄어들 수있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과세보다는 공공 차입이 투자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정도의 문제이다. 「완전히」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리카도의 균형설에 입각하여 정반대의 이론을 주창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과세나 차입이나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이 이론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소비 계획을 장기적으로 수립한다.정부가 채무를 일으키면 소비자들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하여 미래에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미리 저축을 늘린다. 결과적으로 정부 부채와 동일한 규모의 저축이 추가적으로 형성된다. 피부에 와닿는 이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1980년대 초 미국의 재정 적자가 엄청난 규모로 늘어났을 때 민간 저축은 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벨기에 같은 나라의경우는 이 이론대로 저축이 늘어났다.정부 부채가 후손에 부담을 줄 것인지 여부는 부채 규모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중요한 것은 (1)부채로 조달된 자금의 사용처 (2)희생된 사용처, 즉 정부 부채가 없었을 경우 그 자금이 투입되었을 용도이다. 민간 투자를 희생시키고 복지 부문에 투입되었다면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반면에 새로운 도로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또는 전쟁에 이기는 데 사용되었다면 후손에 커다란 혜택이될 것이다.설혹 정부 부채로 인하여 경제 성장이 덜 되고 자본 축적이 차선의상태에 머물렀다고 하자. 그리하여 후손에 불이익을 주었다고 하자. 어찌 이것을 부담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경제학의 문제가 아닌 언어의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 발전 과정을 보거나 경제 흐름을 볼 때 우리의 후손은 현재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릴 것은 거의 분명하다. 어떤 면에서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의 세대인 것이다. 다음 세대에 넉넉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소비를 억제하고 생산적 자본에 투자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 않은가.빅토리아시대의 해군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굶주린 생활에 짓눌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영국국민이 이용하고 있는교량과 철로의 상당 부분을 건설한 것이 바로 그들이 아닌가. 19세기초에 막대한 정부 부채를 남겨 놓았다고 하여 영국인에게 부담을주었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일이 공정하겠는가.정부 부채로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생산적 자본이 줄어들었다고 하여도 부담이라는 표현은 온당치 못하다. 엄청난 규모의유산의 한 귀퉁이가 쏠려나갔을 뿐이라는 표현이 보다 공정할 것이다. 누가 이것을 부담이라고 부르겠는가.「The burdensome national debt」 Feb,10,1996.?The Economist,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