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를 하는데는 「머리」만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후각 미각 청각 등 오감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산업현장에서 뛰고있는 오감도사들이 바로 그런류의 인생군이다. 태평양화학 향료연구팀 한상용(44)씨는 오감중 개를 빰치는 후각으로 인해 조향사라는 이색직업인 길로 접어든 케이스.한씨가 「향내음의 마술사」 즉 조향사라는 직업의 길에 뛰어든 것은 지난 79년. 서울시립대 화공과를 졸업한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릴수 있는 업종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끝에 그해 연말 화장품업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던 태평양화학에 지원서를 냈다. 처음부터 조향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면접관의 다소 엉뚱한 질문이 그를조향사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당시의 면접시험이 다 그렇듯 성장과정 가족관계 등 도식적인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시험장을 나서려고 할 때 한 면접관이 불러세웠다.느닷없이 『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 제품개발연구소 김창규소장이었다.◆ ‘향내음 천재’가 되기위한 남다른 노력순간적으로 당황하기도 했으나 그는 거침없이 「개코」라고 답변했다. 그도 그럴것이 별명은 다름아닌 개코였기 때문이었다. 강원도원주가 고향인 그는 어릴적 동네에서 다른 동갑내기들보다 개를 뺨치는 후각기능을 발휘한탓에 이런 별명을 일찌감치 얻었다.『다른 집에서 나는 냄새만 맡고서도 무슨 음식인지를 척척 알아맞혔더니 친구들이 개코라고 놀리더군요. 이것이 자연스럽게 별명이돼 버렸습니다.』이런 우연찮은 인연으로 그는 별명에 걸맞는 조향사라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었다.입사하자마자 곧바로 김소장이 책임을 맡고 있는 제품개발연구소향료연구팀에 배치돼 수련과정을 밟았다. 매일 10여개의 자연향을맡은 뒤 다시 이를 알아맞히는 「족집게」샘플시험이 계속됐는데그의 코는 단연 탁월한 성능을 발휘, 거의 백발백중의 적중률을 보였다.3년여 동안의 수련조향사 생활을 마친 그는 회사측의 배려로 향수의 선진국인 프랑스 단기유학길에 나섰다. 본격적인 제품개발에 나서기 위해서는 향수선진국들의 기술등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인과정이어서 였다. 샤라보사에 3개월동안 머물며 조향기술 향조합등을 배운 뒤 귀국,제품개발에 뛰어들었다.첫손을 댄 제품은 원액함유도가 비교적 낮은 「샤워코롱류」향수였다. 이 향수는 향원액이 3~5%가량인 제품으로 향이 독하지 않은 것이 특징. 외국향수의 경우 원액함유도가 높아 독성이 강한데다 우리나라와 화장품문화가 비슷한 일본에서 샤워코롱류향수가 인기를끌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라이트한 향수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먹혀들어가 그의 1호개발제품 「아모레 샤워코롱」은 히트를 쳤다. 회사전체 향수판매고중 「아모레 샤워코롱」이 40%를 차지하고있고 아직까지 롱런하고 있다.이런 와중에서 「향내음의 천재」가 되기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않았다. 85년 세계적 조향사교육기관인 영국 PEC(PerfumeryEducation Center) 통신과정에 등록,1년 6개월여만에 자격증을 따냈다. PEC 자격증은 그가 국내에서 4번째로 취득했다.『향수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나이 직업 거주지별로 취향이 다르고 국가에 따라서도 선호하는 향이 서로 다릅니다. 조향사는 이런 미묘한 향의 선호도를 찾아내 제품화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죠.』우리나라의 경우 10대는 심플한 과일향을, 20대와 30대는 꽃향기를, 30대와 40대는 꽃향기와 오리엔탈계통의 향기를 선호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자신과의 외로운 ‘향기전쟁’ 치러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향은 무어라 해도머스크향(사향)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조선말 명성황후는 러시아공사부인으로부터 사향을 기증받아 향낭에 차고 다닐정도로 우리와는친숙한 향이라는 것. 이같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머스크향은그의 코끝을 거쳐 86년 「夜 머스크」향수로 어김없이 제품화됐다.그가 우리나라 사람의 향취향에 대해 나름대로 경지에 오르기까지에는 애로도 많았다. 82년 버스를 타고 신대방동연구소(현물류센터)로 출근할 때 당한 봉변을 아직 잊지 못한다. 샴푸가 출시된지얼마되지 않은 때라 어느 향을 좋아하는지 알겸 20대여성에게 다가가 코를 끙끙거렸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프로의식을 발휘했던 것.아니나 다를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느냐』는 따가운 시선이 쏠렸고 순간 그의 얼굴은 홍당무로 변했다. 따귀를 맞지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새로운 향을 찾기 위한 그의 탐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즘도주말이면 20대 여성들이 즐겨찾는 서울압구정동 카페거리를 기웃거리며 자신과의 외로운 「향기전쟁」을 치르고 있다.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향을 개발, 산업용이나 가정용으로널리 보급하는 것이 그의 최대 목표이다. 이런 그의 목표는 점차가시화되고 있다. 설악산 깊은 산 속의 향을 채집,이를 원액으로해기업공조의 방향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가 「설악산향기」로 명명한 방향제는 현재 호텔신라와 애경백화점에 납품돼사용되고 있다.『봄날 바람결에 언뜻 코끝을 스치는 꽃향기는 사람들에게 살맛을느끼게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향은 특정부류가 애용하는 사치품이아닌 기업의 능률향상등 기능적인 면에서도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하루에도 수십종의 향을 맡다보면 싫증도 날법한데 전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는 그는 코가 생명인 만큼 코 건강관리에 남다른신경을 쓰고 있다. 소금세척법과 담배를 피우는 것이 그것이다. 퇴근하기 직전 소금물을 코로 들여마셔 뱉어내는 것을 매일 반복하고있으며 골초는 아니지만 가끔 담배를 입에 물곤 한다 . 담배는 진한 향을 제거하는 기능이 있어 하루 반갑정도 태운다.『영원한 직업인으로 죽을 때가지 조향사의 길을 걸을 겁니다.』그는 과연 어떤 향으로 또 우리들을 유혹하고 나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