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밤거리가 조용해지고 있다. 주말의 밤이 다가와도 주택가에서는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예전 같으면 테킬라 술(용설란으로만든 술)을 한 병 사놓고 친지와 혹은 이웃과 함께 벌이는 파티가경쾌한 라틴 음악속에 그 극에 달해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조용하다. 음악이 들려오지 않는다. 근 일년 전부터 시작된 이 새로운 현상은 1932년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멕시코의 현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다.한 달 반전에 멕시코 재무부가 공식 발표한 1995년도 인플레이션이51.97%이며, 금년 4월 전반에만 생필품 가격이 2.14% 상승했고,4월중에만 인플레이션이 약 3.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사실 멕시코에서의 경제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제로 채택하고 있는 멕시코에서는대통령이 한 번 바뀔 때마다 보통 달러파동이 뒤를 이었고, 서민들의 생활은 항시 만성적인 경제적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사실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의 경제위기는 만성적인 궁핍문제에 익숙한 서민들의생활구조와 의식수준을 뛰어넘는 위험한 수위였고 정치적으로는 치아파스(Chiapaz) 주의 인디언 농민폭동과 맞물려 국가위기로까지비화했었다.◆ 고질적 인플레, 위기의식 상류층까지 파급그런 가운데 지금까지 멕시코 국민들은 극 단적으로 이중 구조화한멕시코 특유의 경제구조속에서 나름대로 싼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루트를 확보하면서 내핍생활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해 오고있다.따라서 집집마다 생활비를 절감하기 위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여러가지 삶의 묘안을 짜내고 있다. 과거에는 대형마켓에서 사던여러 생필품들을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씩, 주로 주말에 길을 막아놓고 생기는 「임시재래시장」에서 거의 절반 가격에 구입하고 있다. 비록 이 물건들이 조악하고 질이 떨어지지만 생활비를 줄이는데는 적격이어서 수 많은 서민들이 즐겨 찾고 있다.얼마전까지만 해도 잘사는 백인이 이 재래시장을 찾는 것은 일종의수치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는데 근자에 들어와서는 상류층에 속하는 백인들이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을 시장 곳곳에서 볼 수 있어현재의 경제 위기가 멕시코 상류층까지도 파급된 것을 느끼게 해준다.한 예로 사무실 밀집지역에서는 샐러리맨들이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점심시간에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불과 얼마전만해도 사무실 주변의 식당들을 전전하며 비교적 적은 돈으로 은근히식도락을 즐기던데 비하면 변해도 엄청나게 변한 것이다.물론 역작용으로 사무실 주변의 식당업계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손님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그나마 비싼 고급 음식보다는 저렴한음식이 주로 팔려 매출액이 약 40~70%정도로 급격감했다고 요식업계는 울상이다.비교적 잘사는 동네에서는 근자에 들어와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오전 무렵이면 파출부등의 일자리를 찾아 집집의 초인종을 눌러대는 여인들의 행렬이 그것이다. 남편이 실직을 해서 혹은 가계에 보탬을 주기 위해 생활 전선에 나선 이들은 하루종일 허드렛일을 하고 50~60페소(약 5천~6천원)를 받는 데 그나마 일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실직한 남자들의 경우는 한 푼이라도 벌어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불법 택시영업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거리의 불법 노점상으로 행상을 나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또 이들은 시간이 나는대로 노동조합에서 주도하는 집회에도 참가해 실업대책을 마련하라며 구호도 외쳐보지만 공허한 외침만 거리에 메아리칠 뿐이다.그나마 도시에서는 이런 방안이라도 있지만 시골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인디언 원주민들은 극도의 가난속에서 생존 자체를 위해 어려운 투쟁을 하고 있다. 시내 곳곳에는지방에서 무작정 올라온 인디언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직접 만든 여러 토산품을 거리에 진열해 놓고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먹고 자는 것을 거리 한 구석에서 다 해결하다보니 주위가 지저분하고 그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일자리를 찾아, 조금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과 접경지역인 멕시코 북부 산업지역으로 이주해가는 사람들이늘어나고 있다. 이 지역에는 노동임금과 관세혜택의 이점으로 인해본국에서 원자재를 가져와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으로 조립·생산하는 외국인 업체가 많아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대부분이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이에 종사하는 멕시코인 노동자가약 60만~7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어서 편중된 지역에서나마 민생고안정에는 어느정도의 도움은 주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현실개혁 어렵다이 지역은 또 미국으로 불법이주를 하기위해 멕시코 각 지역에서,더 나아가 전 중남미·아시아 국가(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에서 온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때를 노리고 있다.물론, 이런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브로커들이 한사람당 5백달러씩받고 안전하게(?)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겨다 준다. 이 때문에 수많은 멕시코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미국으로 돈 벌러 떠나는데 주로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극빈자들이다.근자에 들어와 경제적 문제로 혹은 더 나은 비전을 위해 멕시코를등지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서 멕시코 국경 수비대조차도 월경을 하는 사람수가 얼마인지 정확히 모를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번 기회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국내산업을 육성하고경제를 활성화하여 자립 경제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시도는 엄두조차 못내고 있는 상황이다.사실 멕시코 정부와 재계는 경기회복을 거의 전적으로 외국인 투자의 활성화에 기대하고 있다. 그만큼 무대책, 무능력 상태에 있는것이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를 자극하기 위해 정부가 취하는 정책들은 국내산업의 존립을 위협할만한 수준이어서 의식있는 사람들의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나마 외국인 투자도 금융계통의 단기이익을 노린 투자로 일관되고 있어서 제조업이나 생산부문에서의경기부양은 불가능한 형편이다.직업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노동자들은 미국의 인스턴트 식품 체인업체가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배회하며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이것이 북미자유무역협정이라는 환상의 거품이 사라지면서 멕시코인이 겪는 현주소다. 더 많은,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보니 더 많은 외국기업체가 더욱 더 실생활까지 접근해 왔음을 느꼈을 뿐이다.그러나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해도 멕시코인의 의식구조나 삶의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같다. 멕시코인 특유의 「여유」와 「농담」 속에는 현정부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삶에 대한불만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사회조직의 구조적모순으로 인해 현실 개혁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는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은 위기의식을절실히 느끼는 것 같지도 않다.현재의 국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때 멕시코 경제위기의 단기적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1996년 한해 내내 멕시코 경제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사회각계에서터져 나오는 임금 인상투쟁을 막느라 소진할 것이다. 1997년 이후부터나 멕시코 경제의 안정에 힘입어 대미 수출을 겨냥한 외국인투자가 늘어날 전망이고 이것이 멕시코의 전반적인 경제 활성화에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달러파동 이전의 1994년 경제수준을 회복하려면 3년 정도장기적 회복을 나타낸 이후라야만 가능할 것으로 경제인들은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