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전업계가 10여년동안 목이 빠지게 기다려온 꿈의 신제품이마침내 백화점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때가 온 것 같다. DVD(디지털비디오 디스크)가 바로 그것이다.아직도 DVD로인해 더 심각해질 불법복제 문제가 풀어야할 과제로남아 있지만 아시아와 유럽의 10여개 가전업체들은 올 크리스마스시장에서 기필코 DVD플레이어를 선보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DVD는 CD(콤팩트 디스크)와 모양이 같은 은빛 판이다. 모양은 CD이지만 데이터저장능력은 엄청나다. 한면에 4.7기가바이트에 상당하는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영화 한편을 저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같은 선명한 화질과 스테레오사운드로 영화를 담아 놓고 생각나면 볼 수 있다는 말이다.또 DVD를 통해 영화 감상을 하면 단번에 보고 싶은 장면을 찾아 볼수 있도록 순간적인 리와인드와 패스트-포워드가 가능하다.영화광들은 각 가정의 VTR가 DVD로 빠르게 대체될 것으로 예상하고있다. 레이저디스크와 오디오 CD및 컴퓨터의 CD롬도 DVD에 밀려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일본의 가전업체들은 DVD가 지난 70년대의 VTR 출시이후 최대의 히트 제품이 될 것이라며 흥분하고 있다. 일본전자업계는 지난70년대 VTR 출시에 힘입어 미국 및 유럽의 경쟁업체들을 따돌리고세계 가전시장을 제패했었다. 70년대 당시 VTR가 일본가전업계 매출의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또 당기순이익중 3분2이상이 VTR매출에서 나왔다.일본업체들은 신제품으로 화려한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DVD에 큰기대를 거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도시바의 경우 앞으로 5년안에 플레이어와 디스크 등 을 포함한DVD제품의 시장규모가 연간 1천1백20억달러(12조엔)에 이를 것으로추정하고 있다. 투자은행인 SBC와버거의 도쿄지사는 일본기업들은오는 2000년까지 모두 2천5백만대의 DVD플레이어와 7천5백만대의컴퓨터용 DVD드라이브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그러면 일본 전자업계의 기대처럼 DVD가 과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인지를 세밀하게 따져볼 필요는 있다.◆ DVD, 레코드 기능 없으나 비디오CD등과 호환 가능DVD플레이어와 DVD드라이브의 최대 약점은 녹화를 비롯한 레코드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업계에서는 불법복제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와 몇가지 기술문제만 해결되면 레코딩도 가능한 DVD램이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빠르면 DVD 첫모델이 선보인후 1년안에 DVD램이 상용화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또 레코딩기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수한 재생기능 등으로 수요는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레코딩기능이 없는 오디오CD가 히트를 친 것이 업계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사실 DVD는 VTR와 비교해 두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는 기술규격이표준화됐고 다른 하나는 오디오CD나 CD롬 등도 사용할 수 있다는등 우수한 호환성이다.VTR에서는 소니와 마쓰시타의 기술규격(포맷)이 각각 달라 여러 문제가 야기됐으나 DVD에서는 관련업체들이 규격 표준화에 합의해VTR의 전철을 밟지 않아도 된다. 작년 9월 일본 및 미국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업체들은 도시바의 기술규격에 소니 및 필립스사의 것이 혼합된 통일규격에 합의했다.또 DVD드라이버를 산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는 CD롬을 버릴 필요가없도록 과거제품과의 호환성이 보장됨으로써 엄청난 시장이 형성될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이처럼 지구촌에 일대 DVD붐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신제품을 선도할 두 기업으로 일본의 마쓰시타와 소니가 손꼽히고있다.마쓰시타는 내셔널 파나소닉등 국제적인 브랜드와 2만3천개의 직영대리점망을 거느리고 있는 세계최대의 가전업체로 덩치에 걸맞는엄청난 DVD매출을 꿈꾸고 있다. 오사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가전왕국은 2000년안에 세계 DVD플레이어시장중 3분의 1을 자사몫으로 가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따라 플레이어등 DVD제품판매로한해 95억달러(1조엔)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DVD사업, 마쓰시타와 소니 선도소니는 마쓰시타를 바짝 추격할 것으로 보인다. 마쓰시타가 할리우드의 엔터테인먼트인 MCA를 캐나다의 주류회사인 시그램에 매각했기 때문에 아시아에선 소니가 유일하게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와 플레이어(하드웨어)를 동시에 생산할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서있다. 현실적으로 마케팅에서 얼마나 먹혀들지가 미지수이지만 소니는 자사 DVD제품을 보다 많이 팔아먹기위해 영화 TV프로 음악 등의 방대한 저작권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소니는 DVD플레이어 생산에서 6개의 핵심 부품을 취급할 것이다.마쓰시타의 경우 디스크기록을 해독하는 광픽업(일종의변환장치)만 빼고 나머지 주요 부품을 모두 자체 생산할 계획이다.이에반해 일본의 다른 전자업체들은 마쓰시타나 소니와 달리 DVD사업에 회사의 미래를 완전히 맡길 것 같지는 않다.실례로 도시바는 DVD 생산기술 가운데 많은 부분을 개발해 놓았지만 사업초기엔 부호기와 디스크드라이브만 생산하는 다소 소극적인시장접근을 시도할 방침이다. 파이오니어 역시 DVD부품의 상당부분을 다른 회사에서 사오는 외부조달에 의존할 계획이다. 대신 기술및 마케팅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디스크생산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이 파이오니어의 전략이다.산요의 경우엔 DVD플레이어용 광픽업이라는 부품공급에서 시장을지배한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DVD가 정말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면 왜 이렇게 DVD사업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기업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의문을 완전히 풀어줄 해답을 찾기는 힘들지만 DVD사업은 아주 정교하며 개발비용도 엄청난 고급기술이 필요하며 마케팅 비용도 대단히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고려해야한다. DVD플레이어용 전자부품 및 마이크로칩의 설계는 대기업그룹도 선뜻 달려들 수 없는 실로 대단한 사업이다. 마쓰시타나 소니처럼 경쟁기업보다 몇배의 매출을 올리는 초대형 기업만이 규모의 경제를 노리고 달려들 수 있는 사업이라는 뜻이다.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전기 등 발전소에서 마이크로칩에 이르기까지 사업영역이 다양한 돈 많은 대기업들도 DVD사업에선 마쓰시타와소니가 주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정도다.한편 자금력이 약간 달리는 기업들은 DVD에서도 특정 사업부문을특화하는 전략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아이와 JVC 파이오니어산요 등이 DVD사업에서 이른바 특화전략을 펴는 기업이다.산요는 최근까지만해도 가전제품과 함께 오디오-비디오제품에서도일류를 지향하는 팽창경영을 구사해왔다. 이 전자사는 그러나 경기침체국면 속에서 감원과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을 단행하는 감량경영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대적으로핵심부품사업은 오히려 강화되는 「행운」을 얻었다.산요는 아직도 TV와 비디오게임기를 생산하고는 있지만 현재 매출의 절반 이상은 공기정화기, 메모리칩, CD플레이어용 레이저다이오드, 이동전화기용 리튬전지 등 비가전제품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요의 경우 산업용 전자제품사업에서 얻는 판매마진이 가전제품보다 배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DVD부문에서도 산요는 이같은 독특한 전략(샤프사도 이미 시도한전략)을 구사해 짭짭하게 재미를 볼 것으로 보인다. 산요의 특화제품가운데 한 가지가 CD기에서 디스크를 읽어내는 광픽업이다. 이액정픽업은 CD기와 새 DVD기 양쪽 제품에 다 쓰일 수 있도록 개발된 것으로 다른 경쟁사 제품보다 부품수도 적은 것이 장점이다. 따라서 산요가 픽업부품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이에반해 파이오니어의 위치는 약간 불리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파이오니어는 레이저디스크 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레이저디스크 부문에서 상당한 기술로열티수입을 올리고 있는회사다.그러나 DVD의 출현으로 이 회사의 주력사업이 적잖은 타격을 입을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5인치DVD가 12인치 레이저디스크의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아니라 앞으로1~2년이 지나면 레이저디스크가 더 저렴한 가격의 5인치 DVD로 대체되면서 3만개에 달하는 레이저디스크 영상목록은 DVD의 목록으로바뀌게 될게 거의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파이오니어의 자구책은5인치 및 12인치 디스크를 병행 사용할 수 있는 DVD기를 생산할 예정이지만 이런 종합 DVD기는 비싼게 단점이다.◆ 일 기업, 1.5% 로열티로 한국에 관련기술 제공키로결과적으로 일본 전자업계에선 DVD시장을 놓고 마쓰시타와 소니에정면으로 대결할 업체는 없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자신들의 주특기를 십분 활용하는 특화전략으로 DVD시장에서 작지만 실속있는 수지를 맛보겠다는 현실적인 처방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마쓰시타와 소니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도전을 받을 것이틀림없다. 미국의 전자업계가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으나 아직도 컴퓨터나 인터넷 등에 주력하고 있어 위협적인 적수가 못된다.오히려 DVD 개발초기부터 이 부문에 관심을 가져온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프랑스의 톰슨이 유럽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DVD에서 필립스는 소니와 동맹을 맺고 있고 톰슨은 도시바와 제휴를 하고 있다. 톰슨은 또한 미국에서 RCA와 GE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강자다.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일본업체의 최대 위협은 같은 아시아에있는 경쟁기업들로 특히 한국의 「재벌」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들 한국의 대기업그룹들은 사업의욕과 투자재원이 대단하며 일본보다 제조비용이 싸다는 장점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은 일본기업들이 한때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했던 범용제품에서 일본을 추월하는 능력을 발휘했다.일본기업들은 DVD에서도 한국기업이 입장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일본기업들은 DVD의 저변확대를 위해 1.5%정도의 로열티로 한국업체에 DVD관련 기술을 제공하는데 동의했다. 지난번 라스베이가스 가전쇼에서 DVD플레이어를 출품했던 몇 안되는 기업속에 하필한국의 LG 전자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일본기업에 대한 불길한 징조로 풀이한다면 너무 성급한 예언일까.「Carving out a new Future」 June 1, 1996?The Economist,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