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교민사회를 보면 특유의 주업종이있게 마련이다. 뉴욕에서는 야채청과시장의 상당부분을 한국 교민들이 운영하고 있으며 남미 브라질에 가면 우리 교민들이 옷판매의상권을 휘어 잡아 서울의 평화시장과 같은 상가가 줄지어 있다.호주에서는 교민의 주업종이 청소업으로 한창 때는 10명중 7명까지나 그 일에 매달렸던 적이 있다. 이처럼 교민사회를 선도하는 업종이 뚜렷하다 보니 한국이민자의 상당수가 뉴욕에 가면 야채 배달하는 일부터, 상파울루에 가면 가방에 티셔츠 청바지 등을 담고 지방으로 팔러 다니는 보따리 장사로부터, 시드니에 가면 승용차 트렁크에 청소용품을 싣고 다니는 일부터 비즈니스를 익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중에서 교민사회에서 부러움을 살만한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탄생했다.뉴질랜드에서도 교민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훨씬 전인 20년쯤전부터 현지인들이 쓰레기로 버리는 녹용에 관심을 갖고 큰 사업을일으킨 선견지명의 교민기업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이민역사가 3년여에 불과한 현 시점에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만한 간판업종이 나타나지 않았다.물론 사업규모면에서는 몇몇 대형여행사와 녹용판매점 등 관광산업이, 직업인으로서는 여행가이드가 1백50명정도로 가장 많은 숫자를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관광객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특정 사업인 점을 감안한다면 교민비즈니스를 대표한다고 하기에는무리다. 이런 가운데 최근 농장업에 진출하는 교민들이 급격히 늘면서 현재 오클랜드주변지역에만 70여 가구 정도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단일업종으로는 교민사회의 최대 인기분야로 떠오르고있다.◆ 부부함께 일해 가족사업으로 제격오클랜드시티에서 남서쪽으로 50km지점, 차로 30분 남짓 달리면 뉴질랜드에서 땅이 가장 비옥하다는 푸케코헤지역을 만난다. 1백여년전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점령군인 영국군 간에 이 땅을 차지하기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 지역은 뉴질랜드의 최대 상업도시인 오클랜드주변에서 소요되는 채소류의 75%를 공급하는 이 나라최대의 근교농업지대이다.특히 이 곳은 채소 뿐만 아니라 대단위 꽃 재배지, 닭 염소 사슴토끼 등의 사육지와 말 경매장이 있는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이런지역 특성을 감안해 인근 공단지역에는 많은 뉴질랜드 식품가공회사들이 몰려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의 종합식품업체인 오뚜기식품이한국식품업체로는 최초로 식품가공공장을 세우기 위해 모든 준비를마치고 현재 공장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처럼 도시근교농업의 최적지로 손꼽히는 이 곳에 최근 한국이민자들이 농장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속속 모여들고 있다. 불과2년전만 하더라도 열 손가락에도 못 미치던 교민농장들이 지금은40여 곳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흔히 다른 나라 교민사회에서도 볼 수 있듯 이민자들이 가장 손쉽게 사업을 벌일 수 있어 과열경쟁을 빚기 쉬운 한국식품점이 오클랜드 주변에 20여 곳, 한식식당이 한국여행객을 상대하는 관광식당을 포함해 30곳에 지나지 않는 것과 비교할 때 교민농장업은 뉴질랜드 교민사회의 간판업종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특히 뉴질랜드에 이민와서 무슨 일을 해야할지 막막했던 교민들이주위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사례들을 지켜보고 이에 따른 작물재배법과 시장동향 등의 정보를 손쉽게 주고 받는 일이 잦아짐에 따라농장경영에 동참하려는 경우도 계속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지난 60년대초 농업이민 자격으로 브라질을 찾았던 한국이민자들이농사를 외면한 채 대부분 봉제사업으로 돌아섰던데 비해 한국의 전형적인 화이트칼러층의 이민이라고 알려진 뉴질랜드교민사회에서농장경영에 나서는 교민들이 이처럼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그러면 교민들이 뉴질랜드라는 신천지에 와서 새로운 직업을 갖기위해 이것저것 모색하는 가운데 다른 일보다도 농장경영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교민농장주들의 나이를 보면 40대와50대들로 한국에서 의사 엔지니어 교수 약사 외교관 예비역군인 회사원 은행원 등을 역임한 전형적인 전문인력들이다. 다시 말하면남의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기에는 나이가 들었고 장사를 하기에는영어의 부담을 느끼고 그렇다고 생활비에 쪼들릴 만큼 여유가 없는것도 아닌 3박자가 맞기 때문이라고 한 농장주가 풀이했다.교민들이 구입한 농장은 평균 30만달러에서50만달러(1억6천만∼2억7천만원정도)로 거의가 3베드룸의 주택과유리 온실이 딸린 곳이다.농장이라고 해도 한국식의 초라한 농가 주택이나 기계화 영농을 하는 대규모 농장이 아니라 과학영농법인 수경재배로 키우는 오이와토마토가 주생산품이고 일부에서는 노지에서 배추 무 고추 등 한국채소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토마토재배와 함께 식품수출회사로부터 닭을 넘겨 받아 위탁관리하고 계란만 생산해 공급하는양계사업까지 병행하는 농장과 동양인 고객을 겨냥해 오골계사육을시도해 보는 농장까지 등장했다.교민들이 운용하는 유리온실 규모는 평균 4백평 전후로 이 정도가부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적정규모다. 이보다 크면 다른 사람을고용해야 되므로 경제성이 떨어지고 이보다 적으면 생산량이 적정수준에 미치지 못해 중간판매상이 매입을 기피함으로써 상품성이뒤진다는 것이다.농장경영에 교민들이 몰리는 또다른 이유는 판매에 별로 신경을 안써도 된다는 점이다. 수확만 해 놓으면 포장회사에서 물건을 전량수거해 가고 시세에 따라 자동적으로 대금을 통장에 입금시켜주기때문에 재배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것이다.또 한국처럼 양파파동이니 배추파동이니 하며 물량이 넘쳐 애써 수확한 상품을 썩여 버리는 일이 이 곳에서는 거의 없는 것도 안정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바탕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사업상의 장점에 힘입어 교민농장들의 연간 소득은 적어도 수만달러 정도로 다른 업종에 비해 높은 편으로 알려졌다.다시 말하면 집을 포함한 사업체를 40만달러(2억2천만원)정도로 구입해 생활비 이상을 벌고 만일 경영에 실패해도 투자액을 전부 날릴 우려가 없을 뿐아니라 부부가 함께 일 할 수 있어가족사업(Family Business)으로 제격이라는 것이 한 농장주의 설명이다. 또다른 이유로 농장에 진출하는 사례도 있다.S그룹에서 부장을 역임하다가 지난 94년초에 이민 온 성모씨(44)는자신이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2억원에 불과해 시내에서 집을 사고세간을 장만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을 것 같아 한적한 교외지역에정착키로 하고 대지 5천평에 3베드룸이 달린 전원주택을 25만달러에 구입했다.◆ 교민 농장주 늘어 좌담회로 정보교환도이 나라는 교육비가 거의 들지않고 쌀 값도 1kg에 1달러(5백30원)정도로 저렴해 한국야채를 길러 먹으면 생활비가 크게 줄어 들 것이라는 생각에서 초지를 갈고 밭농사를 시작했다.한국에 있는 친지들에게 부탁해 무와 배추 고추씨 등을 공급받아씨를 뿌렸다. 농사경험이 전혀 없었으나 이 곳은 토지와 기후가 좋아서인지 한국에서는 평균 1kg에 지나지 않는 무들이 4∼5kg까지자라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다. 때마침 지난 2년간 한국교민들의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한국채소 등의 소비도 늘어 자급자족을 위해 출발한 밭농사가 본격적인 비즈니스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교민들이 다른 업종보다 농장진출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중 하나는교민들간의 과당경쟁이라는 피해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교민을 상대하는 한국야채를 제외하고 대부분 키위토마토 오이 등 현지인이즐겨 찾는 야채와 과일을 생산하다 보니 같은 교민 농장주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일손이 달릴 때는 서로 도와 주는 등 친밀감을 더해가고 있다.농장을 신규로 조성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운영하고있는 농장을 인수받아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인만 한국교민으로 바뀌었을 뿐 공급 물량에는 하등 변동이 없기 때문에 교민간 과당경쟁이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한국교민들이농장운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한국인의 저력을 발휘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현재 농장을 교민들에게 파는 경우는 대부분 나이가 많이 들어 직접 운영하기가 힘든 현지인들로 농장을 넘긴 후 토마토나 오이 재배경험이 없는 교민들에게 때때로 기술자문을 해주거나 일을 거들어 주는 경우도 있어 매우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물론 농장경영에는 이런 희망적인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지역에서 일찌감치 농장을 시작한 김모씨는 이 곳의 유리온실들이 수십년씩 된 것이 대부분으로 농장을 구입한 다음에는 시설의 개수나보수가 필요한데 교민들이 사업 경험이 없다 보니 시설투자에 인색한 경우들이 있다고 지적한다.그러다 보니 과학적으로 재배해야 되는 유리온실농사가 제대로 안되는 일이 발생, 토마토나 오이의 모양이 이상해 상품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수확량이 줄기도 한다는 것이다.또 다른 농장주는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우리 속담처럼 농사는 끊임없는 애정과 보살핌으로 키워야 한다며농사경험이 없는 교민들이 의욕만 가지고 덤볐다가는 실패확률이높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농산물, 포장회사서 전량 수거 판매 신경안써그동안 초기에 농장에 뛰어들었던 교민들 중에는 애써 가꾼 농작물이 서리가 내려 단번에 수확을 못하고 버린 경우나 토마토에 물주기를 잠시 소홀히 한 대가로 상품을 폐기처분한 사례도 있다.이런 것들은 한마디로 정보부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교민 농장주들이 늘다 보니 서로 모여 사랑방좌담회를 자주갖고 있어 이런 정보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가 점차 줄어 들고 있는 추세다.또 한여름 한증막같은 온실에서 작업을 해야되는 것은 힘든 육체노동을 별로 해보지 않았던 교민가족들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기도하다.이밖에 이민와서 바로 농장에 뛰어든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오클랜드시내 가까운 곳에서 터를 잡고 아이들을 학교도 보내고 교민들과어울렸던 생활을 즐겼던 사람들이므로 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작해야 된다는 것도 새로운 결단이 필요하게 된다.그러나 이 곳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교민들은 오히려 그런 점들이강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곳도 시골이라 오클랜드와 달리 동네주민들이 인정이 많고 자상하다. 학교교육도 보다 자율성이 강조되어 더욱 좋은 것 같다』고 오이농장을 경영하며 스스로 이민에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손모씨(50)는 말했다.한국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과열된 교육풍토가 싫어 이민왔는데시내중심지 부근에서 비슷한 일을 겪으며 사는 것보다 전원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본래 자신의 이민 의도와 맞아 떨어진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민의 성공요소중 하나가 자신의 성향과 맞아야 하듯 농장도 자신의 취향에 맞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사업초기에는 대부분 농장일이 힘들 것이라는 우려 속에 다소 주저하고 있었지만 막상 일을 벌이고 나니 과학영농이 그렇게 어려운것이 아닐뿐더러 수익도 기대이상이라고 대부분 교민들이 만족해하고 있는 편이다.농축산국가인 뉴질랜드와 한국인 농장주. 대풍년(보난자,Bonanza)의 꿈을 키우며 저변을 계속 늘려 나가는 그들은 21세기를치닫는 한국의 저력이며 세계화의 첨병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