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 이런 사람들은 성급하게 승부를걸지 않는다. 인생을 길게 바라본다. 언젠가는 내 차례가 꼭 온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자기 확신만 가지고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는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한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은근과 끈기.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는불길한 생각, 「나에게도 정말 기회가 올까」 하는 불안을 억눌러야 한다. 한민족 특유의 그 끈질김이 없다면 신념이나 훈련까지도모두 필요없게 된다. 프로골퍼 박현순(24·뉴코리아CC·엘로드)에게 올해는 최고의 해다.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예감이 좋다. 올 상반기 상금랭킹에서 여자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열리는 14개 대회 중 상반기에는 6개가 열렸다. 박선수는 2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상반기에 상금으로 벌어들인 돈은 5천3백73만원. 박선수는 『지난 한해동안 벌어들인 돈을 올해에는 상반기에 다 벌었다』며 웃는다.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느낌, 정상에 다가가고 있다는 예감이 든다.그러나 프로로서 「최고의 기분」을 얻기까지는 오랜 기다림의 세월이 필요했다. 5년.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박선수가 프로로 데뷔한 것은 91년. 19세때였다. 프로데뷔 후 첫우승은 지난해 9월에 열린 삼성카드배 한국여자프로골프선수권대회에서였다. 프로데뷔 5년만에 얻은 「영광」이었다. 『5년간 어렵지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고향 떠나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며골프 연습과 시합만을 번갈아가며 하는 생활이 어디 쉬웠겠어요.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무명시절에 박선수를 지탱시킨 것은 『매년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언젠가 정상에 오르겠지 하는 낙천적이되 끈질긴 신념이 있었다.◆ 골프계 「슈퍼소녀」 박세리와 고교 선후배박선수는 지난해에 프로데뷔 첫 우승과 함께 신문 방송 골프기자들의 모임인 한국골프라이터스협회가 선정하는 95년도 여자 최우수선수에도 뽑혔다. 첫 우승 덕분에 지난해에 상금랭킹 3위로 단박에뛰어올랐다. 올해는 팬텀오픈과 매일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박선수는 자신의 연이은 우승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났다」고 말한다고 전한다. 충남 공주의 넉넉하지 않은 가정 출신으로자기 길을 개척해 성공을 일궈낸데 대한 주위의 평이다. 박선수는『제가 우승하니까 부모님들도 기쁘신지 요즘은 농사도 팽개치시고시합때마다 구경오신다』면서 미소를 띠었다. 박선수가 골프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최근 골프 명문으로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는 충남 공주의 금성여고에 다녔던 덕분에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 『학교 골프팀에 들어가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골프가 뭔지도 몰랐거든요. 선생님이 긴 막대기로 작은 공을 치면서 학생 몇몇을 가르치고 있길래친구한테 「저게 뭐하는 운동이니」하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연습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호기심에서 골프를 시작한게 천직이 된 셈이죠.』박선수가 나온 금성여고는 지난해 여자오픈대회 4관왕을 차지했던골프계의 「슈퍼소녀」 박세리선수(19)의 출신고교이기도 하다. 고교 선후배 사이인 박현순, 세리선수는 7월초 매일오픈에서 연장전까지 치르며 접전을 벌였다. 그날 행운의 여신은 박현순의 손을 들어줬다. 정규 라운드에서는 둘다 2백13타 3언더파로 동률이었다.승패는 연장전 마지막 퍼팅에서 갈렸다.박현순은 약 8m, 박세리는 10m짜리 롱버디퍼팅을 남겨둔 상태에서박세리의 퍼팅은 홀컵을 비켜하고 박현순의 퍼팅은 홀컵으로 가라앉은 것. 『세리하고 시합하기는 그 때가 두 번째였어요. 마지막에연장전까지 가서 제가 이기긴 했지만 세리가 정말 잘한다고 느꼈습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대담하게 경기를 펼치는데 세리의 명성이 과장된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박현순선수는 또다른 유명한 박씨와도 돈독한 관계다. 미국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코리아특급」 프로야구선수박찬호(23·LA다저스)의 사촌누나이기 때문. 박선수는 『어릴때는찬호하고 매일 같이 놀았는데 미국 간 이후로 제대로 전화도 못해주고 편지도 못 보내서 미안하다』며 『찬호가 미국에서 활약하는것만큼 나도 국내 골프계에서만이라도 인정받는 선수로 활동하고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느낌과 감으로 치는 골프 중요시골프채를 잡은지 올해로 8년째를 맞는 박선수에게 골프에서 가장중요한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생각」이었다. 『골프는 생각하는 것만큼 늘어요. 골프채를 잡은지 얼마 안돼서도 잘 치는 사람은 골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골프와 연관지어서 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더 잘 치겠구나 하면서 계속 연구를 하죠. 자기가 친 것에 대해 복습하듯 생각하다보면 골프실력도 늘게 됩니다.』박선수가 골프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 것도 생각이 많이 필요한운동이라는 점이다. 1년내내 같은 골프장에서 매일 골프를 쳐도 치다보면 늘 다른 자리에 공이 멎고 새로운 상황을 만나게 된다는것. 잔디가 평평해 보이지만 결코 평평하지 않고 어디에 어떤 복병이 숨어 있을지도 알 수 없고 첫 스윙에서 1㎜가 틀리면 공이 떨어지는 자리는 예상보다 10m 더 어긋나기도 하고 하는 난관들이 골프의 재미라는 설명이다. 박선수는 골프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골프치는 것처럼 공부했으면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에 수석으로 들어갔을 것』이라는 말로 표현한다.박선수는 자기 확신이 강한 선수다. 시합 성적이 어느 정도겠다 하는 것은 시합 나가기 전에 연습장에서 퍼팅을 해 보면 감이 온다고한다. 연습볼이 반듯하게 나가도 오늘은 잘 안되겠다 싶은 날이 있고 볼이 좀 빗나가도 오늘은 이 정도는 커버할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들 때가 있다는 말이다.『몸의 컨디션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골프를 오래 치다 보면 예감이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징크스는 아니고요. 징크스는 만들지 말아야죠.』 박선수는 자신의 느낌과 감으로 치는 골프를 중요시한다.그래서 누가 어떻게 치니까 잘 맞는다고 해도 따라하지 않는다. 외국의 유명 선수들의 스윙 모습을 보고 따라 연습하지도 않는다. 자기 몸에 맞는 스윙으로 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박선수는 프로생활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이기기 위해 낙천적으로살려고 노력한다. 주위에서는 박선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 『너무덜렁대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자신은 긴장을 풀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더 웃고 발랄하게 지내려고 한다고 말한다. 물론지난해 우승을 한 뒤로는 좀 달라졌다.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때문인지 이전보다 덜 긴장되고 작은 실수에 예전처럼많이 동요하지도 않게 됐다고 밝힌다.손창열선수에게 5년째 레슨을 받고 있는 박선수는 『2∼3년쯤 후엔결혼하고 싶다』며 『골프도 좋지만 외곬으로 골프에만 빠지지 않고 다른 일상생활이나 여자로서의 인생도 충분히 즐기고 싶다』고말했다. 박선수의 취미는 요리. 미래 가정주부가 되기 위한 연습이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도마질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설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