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전문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프로는 전문성에다 상업성이 가미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랄 수 있다. 그만큼 프로는 전문가에 비해 참신성이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는 공격력과 적극성을 갖고 있어 기회가 주어지면 사업화시키는 대담성을보인다. 프로는 전문가에 비해 떨어지기 쉬운 참신성을 제도적으로보완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프로는 기업가와 일맥 상통한다.헤어디자이너. 이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를 든다면 「박준」을 드는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헤어디자이너라는 전문가이면서도 헤어디자인과 관련된 사업을 다각적으로 펼치는 기업인이기도 하다. 헤어살롱 3개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자신의 이름을 딴박준미용실의 프랜차이즈사업을 적극 벌이고 있다. 이들 점포에자신의 브랜드를 단 두발용품과 기기들을 공급하는 등 헤어스타일관련 제품의 제조판매사업에도 손대고 있다. 이외에도 헤어스타일교육사업도 펼치고 있다. 한마디로 헤어디자이너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관련사업을 적극 펼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헤어디자이너 박준은 전문가라기보다는 프로라 일컬을 만하다.박준씨가 미용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72년. 그는 종로에 있는 YMCA회관에 들렀다가 거기에 있는 미용실을 보고 이거다 싶어미용업계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만해도 미용사는 여성들의 고유업종으로 여겨지던 시절로 취직하기도 힘들었다. 전통적으로 천대를 받아왔고 여자의 고유영역으로 여기던 이 분야에 진출해서도 그는 적잖은 주위의 눈총을 받기도 해 심리적 갈등도 크게 겪었다. 그러나 남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선구자적 길을걸을 수 있는 날이 올것으로 그는 확신했다.◆ 영화 비디오 속에서도 머리스타일 찾아그가 맨먼저 취직한 곳은 당시 국내최대의 미용실이었던 YMCA 미용실이었다. 처음 맡은 일은 손님들의 머리를 감기는 잡일과 청소였다. 미용사로서 임무가 주어진 것은 만 1년뒤. 미용이란 일이 주어진 이후에도 손님들이 거부하는 등 남자미용사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오는 갈등도 상당기간 지속됐다. 그는 그후 유행의 1번지인 명동의 조희미용실에서 3년, 마샬미용실에서 3년을 보냈다. 미용계에발을 내디딘지 10년째 되던 해인 82년에 그는 드디어 자신의 미용실을 차릴 수 있었다.그가 국내 일류 헤어디자이너로 미용실을 직접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정상을 향한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됐다. 그는 헤어디자이너로견문을 넓히기 위해 79년부터 외국에 나가기 시작했다. 미용업체라면 어느 곳이든지 방문했다. 많은 곳을 보는 과정에서 안목도 키우고 유행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유행의 흐름은 거의 비슷하지만 유럽은 과감한 스타일의 머리가 유행하고 미국은 평범한 스타일이 많이 유행한다는 것도 깨달았다.외국에 나가 미용사가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도 이렇게 존경받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미용계의 대부이자 YMCA원장인 김옥진 회장도 전문가로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다.그는 헤어디자이너로서의 자질을 정신력에서 찾는다. 선천적으로는무엇인가 만지기를 좋아해야 하지만 후천적으로는 자신의 노력이절대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엇인가 하겠다는 결의와 실천력은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후배양성시 3~4년간 엄격한 훈련을 요구하는 것도 정신력을 배양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이직업은 오래 서있고 근무시간이 길어 육제적으로 어려운데다 초창기에는 경제적 어려움도 감수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현장 중요시 … 1주일에 3번은 매장 나가이런 면에서 그는 남자가 정신력과 육체적으로 강인한 만큼 남자헤어디자이너가 오히려 유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남자는 사업적인 감각도 뛰어나며 결혼하더라도 임신 등으로 인해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손꼽는다. 외국에서는 헤어디자이너 중남자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이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이 직업에 뛰어드는 사람 중 3분의 1이 남자라고 귀띔해준다.헤어디자이너의 과정이 힘든 만큼 노력에 대한 대가는 큰 분야라고강조한다. 돈이란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예술가로서점차 그 지위가 향상되고 있다고 밝힌다. 사회가 점점 학벌보다는실력을 위주로 한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점도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여행이나 미용쇼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 영화나 비디오 등많은 작품속에서도 머리스타일의 유행의 흐름을 간파하기도 한다.개인발표회를 자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도 늘 관심을 갖는다. 국내외 가릴 것없이 머리미용에 관한 쇼가 연일 열리는 만큼관심도가 아이디어의 발굴과 비례한다고 믿고있다.그는 헤어디자이너란 직업을 그의 적성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여긴다. 그는 헤어디자이너를 『나에게는 너무나 어울리는 일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감을 대신한다. 작업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결혼·생일 파티 등경사 때나 새로운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를 손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 헤어디자이너라는 것이다. 헤어디자이너가 되려면 서비스 정신 뿐 아니라 손님에 대한 매너에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한다.그는 현장을 중요시한다. 1주일에 3번은 직접 매장에 나가 손님의머리를 손질하는 것도 현장중시 때문이다. 그밖의 시간은 교육이나세미나, 전문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그는 고객에게 헤어스타일을권할 때 몇가지 점을 감안한다.얼굴형 체형 나이를 보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권한다.동양인은 키가 작고 얼굴과 머리가 크기 때문에 세계적인 유행을고려하면서도 동양인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연구하는 편이다.그는 자신의 작품을 사진을 찍어 알리거나 세미나 형태의 교육을통해서도 자신의 머리스타일을 유행시키고 있다.그가 정상에 이르기 까지에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초창기 남자미용사에 대한 인식도가 부족해 인정을 못받았을 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또한 경영노하우가 없어 경영자로서 직원들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도 개인적으로 갈등이 컸다고 덧붙인다.하지만 자신이 1세대 남자 헤어디자이너로 활동한 것을 자랑스럽게여긴다. 미용계에 남성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이제 그는 두발제품을 생산하는 사장으로서 프랜차이즈를 펼치는기업인으로 활발한 경영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프랜차이즈업체수는 전국에 30여개로 앞으로 1백 점포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또한 샴퓨 린스 젤 등 두발제품을 만들어 이들 점포에 보급하고 있다. 화장품회사에 의뢰해 만든 제품을 자신의 브랜드인 P&J를 붙여판매하고 있다. 또한 헤어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위한 미용학원도 개설, 교육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올해초 그는 「박준 아트 인스티튜트」란 헤어스타일 학원을 개설하고 6개월과정의 교육을 실시하고있는데 앞으로 헤어스타일 전문대학을 세우는 것이 그의 최대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