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투스 너마저….』줄리어스 시저가 그의 심복 부르투스의 칼에 쓰러지면서 한 말이다. 이에 대한 부르투스의 변명은 『내가 시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었다.그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러한 인간관계는 현실세계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다. 두 전직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이 대거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박정희대통령은 믿었던 심복 김재규에 의해 살해됐다. 뒤이은 전두환대통령은 친구이자 후계자인 노태우대통령에 의해 백담사로 유배됐다. 노태우대통령은 자기가 손을 들어준 김영삼대통령에 의해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됐다. 전직대통령 두명이 나란히 법정에 서서한 사람은 사형, 또 한 사람은 무기에 가까운 징역형을 선고받은우리의 헌정사. 그 「일그러진 영웅」들은 과연 법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역사의 필름은 한시대를 호령했던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의 얼굴이오버랩된다. 그만큼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61년5.16군사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정권은 한국을 대표할 만한 대기업인들을 죄인취급한다. 그들은 면죄부를 받고 전경련을 만들어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후 그들은 정부의 보호아래 기업을 키운다. 이런 과정에서 기업인들은 각종 명목으로 헌금을 해왔다. 「떡고물론」이나 어느 재벌 총수의 「헌금관례론」은 이런 정경유착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최고권력층의 괘씸죄에걸리면 그룹을 해체당하는 기업인도 있었다. 바로 국제그룹이다.문민정부에 들어선 어떤가. 현대 삼성 대우 엘지 선경 한화등 수많은 재벌총수들이나 기업인들이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들 기업인들도 어쩌면 시저와 같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한국적인경영현실이자 기업풍토인지도 모른다.◆ 더이상 기업을 정치 희생양 삼지 말아야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자본주의 다음에는 전문경영자의시대가 온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유럽에서는 전문경영자들이최고대우를 받는다. 일본에서조차 회사자본주의라는 말이 유행할만큼 경영자가 대우받는 사회로 진화했다.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말이 좋아서 사업이지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한국적인 풍토아래서는 상당수의 기업인이 전과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이런 넋두리를 늘어 놓는 기업인이 많다.전직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서 고개를 떨궈야 하는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아주 평범한 명언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모든 결정권이 대통령에게 달렸으니 기업인들은 최고권력자와독대하는 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여긴다. 여기에 바로 비자금의 함정이 있다고 재계인사들은 말한다.우리는 흔히 재벌과 그룹 계열을 혼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다르다. 재벌이란 그룹경영권을 대주주의 친인척이 행사하는 것이고계열은 자본참가는 하되 인사권등 경영권은 전문경영자가 잡고있는기업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대기업군을 재벌이라고 말하지만 틀린 말이다. 일본은 맥아더군정시절에 재벌이 해체됐다. 이런이유로 그들은 거의가 독립경영을 하고있다. 사장은 큰 잘못이 없으면 상담역이나 고문 회장으로 추대된다. 사장이 임기중이나 임기가 끝나고 후임사장을 지명할 수 있다. 그룹회장이 계열사 사장을임명하는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있을땐 그룹회장이 책임을 지지않고 해당기업의 사장이 물러나면 그만이다.그러면 다른 나라와는 달리 유독 한국의 기업인들만이 대거 전과자명단에 오르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대통령제와 맥을 같이한다.권력이 총수로부터 나오도록 집중돼 있는 결과다. 대기업총수들이법정에 서게된 것은 권한의 이양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고 경영학자들은 진단한다. 전문경영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여기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으로 정경유착구조를 따질생각은 없다. 단지 글로벌시대에는 권력구조가 달라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대경쟁이니 메가컴피티션이라는 단어들이 이런환경변화를 웅변한다. 정치권은 더 이상 기업을 정치의 희생양으로삼지 말아야 한다. 기업들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에 기댈 생각을 해선 안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를 부끄럽게 한 세기의 재판은정경유착의 사슬을 끊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과거를 다시 한번 체험하도록 벌받게 될 것이다.』유태인 강제수용소 닷하우의 기념관에 새겨진 산타야나의 잠언을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