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이야기만 나오면 사실 속이 불편합니다. 자꾸 과거이야기를들춰내는 것이 모양새도 좋지않고 내부에 무슨 알력이나 파벌이 남아있는 것처럼 왜곡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국내에서 은행간 합병의 유일한 사례인 서울은행 홍보실 정옥용과장의 말이다. 그만큼 서울은행(전 서울신탁은행)이 가진 「합병이란 과거사」는 다시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합병이란 말만 나오면 말머리를돌리거나 피하는 것이 보편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노조에서 합병을반대하는 조직을 만들었거나 합병반대가 노조위원장선거의 주요공약으로 내걸릴 정도다.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유일한 국내은행간의 합병사례인 서울은행의 경우 합병으로 인사나 조직 등에서 좋지않은 말들이 계속 나왔지 않느냐』며 『합병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유무형의 불이익에직원들이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일로 아직 은행합병에 대한 거부감이클 것』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금융계의 분위기는 금융개혁에 따른은행합병이라는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자신의 은행이 포함되는 것은불안해하거나 반대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분위기다.금융기관합병이 업계 최대의 관심으로 떠올랐지만 국내에서 금융기관의 합병은 사례가 극히 적다. 국내은행합병으로는 서울은행과 한국신탁은행이 지난 76년 8월 서울신탁은행(현 서울은행)으로 합병한 것이 유일한 합병사례다. 합병은 당시 재무부가 시중은행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은 서울은행과 경영상 문제점을 갖고 있던 한국신탁은행의 합병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합병목적에 대해 재무부는 금융국제화에 따른 은행의 대형화, 규모의 이익에 의한 간접비절감등 경영의 효율화, 은행간 과당경쟁의 소지 완화 등을 합병목표로 설명했다. 양 은행에서 5인씩 추진위원을 선임해 설치한합병추진사무국의 첫 회의에는 합병을 주도한 당시 김용환 재무부장관이 참석해 「합병비율을 1대 1로 한다」 「합병절차간소화를위해 서울은행이 한국신탁은행을 흡수합병하는 절차로 한다」 「상호는 신상호로 한다」 등과 같은 세세한 내용들을 지침으로 제시하기도 했으며 나중에 인원·조직에 관한 세부방침을 정해주기도 했다.두 은행의 합병으로 서울신탁은행은 총자본금 2백81억5천만원에1백18개의 국내점포와 2개의 해외점포, 5천5백20명의 종업원을 가진 국내최대은행으로 탈바꿈했으며 80년대 들어 정부보유주식을 전량매각해 민영은행으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은행과 한국신탁은행의합병은 시작부터 끝까지 정부가 주도한 은행합병이었다. 그 이후에은행간 합병은 없었다. 대신 국내은행들이 국내은행간 인수가 불가능한 점을 피해 해외은행을 인수하는 사례가 생겼다.◆ 해외은행 인수, 금융기관 세계화 ‘첩경’국내은행이 해외은행을 인수한 첫사례는 지난해 신한은행이 1천2백만달러에 미국 마린내셔널뱅크를 인수한 것. 마린내셔널뱅크는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시에 본점을 두고 있으며 주로 중산층을 주고객으로 영업을 해온 은행이다. 인수당시 총자산은 1억5백만달러, 자본금은 7백19만달러에 이르는 은행으로 부실채권이 별로 없어 장외시장에 상장돼있을 정도로 견실한 지역은행이다. 신한은행의 나응찬행장은 『OECD가입을 앞두고 수세적인 대응을 벗어나 공격적인해외영업을 위한 거점마련』이라고 인수의미를 설명했다. 하나은행도 해외은행인수를 추진중이다. 하나은행이 진출하려는 곳은 인도네시아로 소비자금융 리스업 팩토링 등을 취급하는 일종의 종합금융회사인 말타이 파이낸스 컴퍼니중 약 1천만달러짜리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국내은행의 해외은행인수는 국내은행간의 인수합병이 금지된 이유도 작용했지만 보다 큰 목적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글로벌경제체제에서 적자생존을 위한 활로개척이다. 대개 해외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과 교민들을 상대로 한 1차적인 영업목표와 함께 현지금융기관화를 통한 세계적인 금융기관으로의 성장이라는 지름길로 해외은행인수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신한은행 종합기획부의 홍성균이사는 『해외은행인수로 미국 멕시코등 NAFTA경제권을 목표로 한 영업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은행과 달리 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권 금융기관들은 비교적 합병이 자주 이뤄지고 있다. 대형화를 통한 경영의 안정성과효율성을 높이고 다른 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인수합병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신용금고의 경우 합병보다는 경영능력과 자금능력이 월등히탄탄한 은행 보험사 등 대형금융기관으로 합병되는 경우가 많다.◆ 증권사간 인수합병 물밑 작업중지난해만도 한일은행이 계열기업의 부도로 경영관리를 받아오던 대전의 국보신금과 제일신금을 인수했으며 광주은행은 광주제일신금을 인수해 광은신용금고로 이름을 바꿨다. 또 제일생명은 한신신금을, 충북은행은 부당거액대출사고를 냈던 흥업신금을, 대한투자금융은 자기자본 55억원 총수신 1천47억원의 중형업체인 풍국상호신용금고를, 신한투금은 서울의 국제상호신용금고를 각각 인수했다.올들어서는 충남신금이 충청은행에 넘어갔으며 부실경영으로 신용관리기금이 관리중인 부산의 조흥상호신용금고에 대해 부산지역27개 상호신용금고가 공동인수를 추진하는 가운데 다른 금융기관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신금업계의 경영난 가중으로 매물로 나와있는 신금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신협도 흡수합병이 활발하다. 지난 94년에는 서울의 호남탱커신협과 대한유조선신협이 합병을 통해 호유해운신협으로, 경기 안산제일신협과 6스타프라자신협이 안산제일신협으로 충남의 합덕대건신협과 합덕신협이 합덕대건신협으로 합병했다. 지난해에는 충남 조치원의 중앙신협과 인근의 서면신협이 중앙신협으로 흡수합병됐으며 전남 장흥의 장흥신협과 장흥교회신협이 장흥신협으로 각각 합병했다.증권업계도 인수합병이 예외는 아니다. 증권업계의 자장 큰 인수합병은 지난 83년 대우그룹계열 동양증권이 당시 업계 1위인 삼보증권을 인수하면서 일약 증권업계의 정상에 등극한 일이다. 인수전인 82년만 해도 삼보증권은 직원 7백50여명 28개 지점에서 연간 주식약정고 2조원을 넘어선 증권업계 선두업체.그러나 과다한 주식약정고 경쟁으로 20억원이 넘는 시재부족문제가발생해 파산위험에 처했었다. 파산에 따른 파장을 고려한 재무부에서 인수자를 물색했다. 증권산업을 성장산업으로 판단한 대우의 김우중회장의 판단에 따라 삼보증권을 합병하면서 동양증권은 자본금1백60억원 총자산 4천1백29억원 순자산 1천6백억원의 대형증권사로발돋움했다. 지점도 50개로 늘었으며 직원도 1천1백92명에 이르는증권군단을 이룩한 것이다. 그후 동양증권은 대우증권으로 이름을바꿔 증권업계의 선두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또 지난 94년 제일은행이 상업증권을 인수해 제일증권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으며지난해에는 대한교육보험이 대한증권의 지분 51%인 4백8만주를 8백73억원에 매입해 교보증권으로 새출발하기도 했다.이밖에 경수종금을 두고 2위 주주인 동서증권과 3위주주인 대유증권이 지분확보에 나서 경수종금인수를 위한 바닥고르기라는 말도있었으며 지난 5월에는 서울증권과 한일증권간의 합병설이 설득력있게 나오기도 해 증권사들의 인수합병도 열기를 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