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가 세계경영을 추진하는 방식, 즉 해외사업장을 확대해 가는방식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하나 있다. 창업보다는 현지기업 인수가많다는 점이다. 약 2백50개에 달하는 현지법인중 주요 기업들은 거의가 다 인수한 기업들이다. 폴란드의 FSO FSL, 루마니아의 로대,체코의 아비아 등 자동차 생산법인은 물론이고 영국의 워딩연구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덩치 큰 기업말고도 수단의 방직공장처럼규모가 작은 기업도 창업이 아니라 인수한 기업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면 대우는 왜 이처럼 창업보다 인수에 의존하는 것일까.그 해답은 간단하다. 「시간을 사는 전략」인 것이다. 즉 새로 공장을 창업하는데 드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창업보다는 인수쪽을선택하는 것이다. 대우의 이같은 선택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세계경영」의 출범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우가 세계경영을 선언한 것은 93년이지만 김우중 회장의 머리 속에 그 구상이떠오른 것은 이보다 좀더 앞선 92년 가을께였다.당시 세계경제상황은 EU통합과 NAFTA출범 등으로 블록화가 급속히진전되고 있었다. 또 대우로서는 GM과의 결별로 자동차사업에서 홀로서기에 나서야 했던 시점이었다. 이같은 경영환경의 변화를 헤쳐나가기 위해 김회장이 찾아낸 해법이 「지구적 규모의 생산-판매거점 확보」라고 하는 세계경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 ‘코리아 홍보’ 부수적 효과까지자동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독일이나 미국 일본 등 선진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경쟁하려면 최소한 연간 2백만대 생산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대우의 생산능력은 연산 30만대에불과했다. 신규설비투자로 이 갭을 메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기존업체를 인수하는 길밖에 없었다는게 대우자동차의 폴란드 현지판매법인인 센트룸대우 최정호사장의 설명이다.때마침 동구권에서 공산체제가 무너진 직후라 대우로서는 더없이좋은 호기를 만나게 된다. 공산체제하에서 국영기업이었던 회사들이 민영화대상이 돼 매물로 나오기 시작한 것. 물론 현지기업을 인수하는데는 위험부담도 적지 않다. 매물로 나온 현지기업들은 대부분 부실기업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구권의 국영기업들은 사회주의적 계획생산체제하에서 누적된 비효율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그러나 김우중 회장이 누구인가. 국내에서도 「부실기업 정상화의귀재」로 정평이 난 김회장이다. 대우의 주력 계열사들만 봐도 (주)대우 외에는 거의가 부실기업을 인수해 정상화시킨 업체들이다.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경남기업 등이 모두 마찬가지다. 이렇게 쌓아온 부실기업 정상화의 노하우를 대우는 해외기업인수에서 다시 한번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대우가 기업을 인수한 후 제일 먼저 착수하는 작업은 경영진단이다. 최근에 인수한 체코 아비아사의 경우를 보자. 아비아 인수팀이 약 1개월의 경영진단 끝에 찾아낸 이 회사의 경영상 문제점은 크게 4가지. 첫째는 마케팅능력이었다. 아비아는 3.5t트럭을 연간 1만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서도 94년 판매실적은4천대에 불과할 정도였다. 회사에 처음 도착해 수출담당자회의를소집해보니 모두 9명이 모였는데 그중 5명은 단순히 서류작업만 하는 직원이고 실제 영업담당은 1명뿐 (아비아사 정길수 부사장)인상황이니 당연한 결과였다.두번째 문제는 원가부담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었다. 이 공장의월평균 임금은 3백달러 수준인데도 전체원가는 부평공장과 거의 맞먹는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 원인을 추적해보니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는 자재비가 턱없이 비싼게 가장 큰 이유였다. 비용개념이 희박한 사회주의체제의 관행이 남아 「누이좋고 매부좋은」식으로 납품가를 높게 지불해온 것이다.세번째 문제점은 신제품 개발을 안해 지난 20여년동안 한 모델만생산해 온 점이었다. 특히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트럭은 엔진실이있는 캐빈이 차체에 고정돼 있어 정비에 애를 먹는 단점이 있음에도 이를 고칠 생각을 않고 있었다. 네번째는 다른 동구권 기업과마찬가지로 종업원들의 의식구조가 아직도 사회주의의 껍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문제점이 파악됐으니 해결책은 간단했다. 대우는 우선 조직을 개편해 마케팅분야를 보완하는 한편 캐빈을 들어올릴 수 있는 신모델을생산하기 시작했다. 자재비문제는 협력업체들에 납품가를 낮춰주도록 요청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존 거래를 중단하고 다른 거래선을 찾겠다고 통보했다.가장 어려운 일은 종업원들의 의식구조를 바꾸는 일로 대우는 이를위해 현지근로자들을 국내에 연수보내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요즘 이 공장은 대우가 처음 인수했을 때보다 자재비부담이 20% 가량 낮아지는 등 눈에 띄게 변모하고 있다.대우가 동구권 기업들을 인수하는데 대해서는 동구권의 소득수준이낮은 점을 들어 제품을 내다 팔 시장이 있겠느냐고 보는 회의적인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대우측은 다르게 보고 있다.동구권의 소득수준이 낮다는 것은 공식통계상으로만 그럴 뿐이다.동구권은 대부분 지하경제규모가 50% 정도에 달하므로 체코나 헝가리 폴란드 같은 경우 실제 소득수준은 한국과 거의 맞먹는다(고주영(주)대우 프라하지사장)는 설명이다. 더구나 이들 동구권국가들은 멀잖아 EU에 편입될 것이 확실하므로 EU시장 진출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한편 해외기업을 인수하다보니 당초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부수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엄청난 홍보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폴란드나 루마니아 같은 곳에서는 코리아는 몰라도 서울올림픽은 알고 서울올림픽을 모르는 사람도 대우는 안다(대우 아비아 김승천이사)고한다. 최근 프랑스에서 핫이슈가 되고 있는 톰슨멀티미디어 인수건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프랑스 국민중 대우를 아는 사람이 10%도안됐겠지만 톰슨인수가 현안이 된 후에는 웬만한 식자층은 대우를알게 됐다. 대우가 해외기업인수에 열성적으로 뛰어들고 있는데에는 이처럼 나름대로의 수지타산이 있는 것이다.◆ 외국기업도 꺼리는 부실기업 흔쾌히 안아그렇다면 대우는 해외기업들을 인수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어디에서 조달하는가. (주)대우 해외관리본부장 이상훈 상무의설명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언론에 발표되는 투자액은 해당 프로젝트에 들어갈 총투자액이고 실제 사업초기에 들어가는 자금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가령 폴란드 FSO의 경우만 해도 총투자액 11억달러중 순전히 대우가 자기자금으로 조달할 금액은 4천4백만달러라는 설명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계산이 가능할까. 이상무의 설명은이어진다. 해외법인의 재무구조는 대개 자기자본과 차입금이4대6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FSO가 갖추어야 할 자기자본은 총투자액의 40%인 4억4천만달러다. 이중 폴란드측 지분 50%를 빼면 2억2천만달러가 대우몫이다.그런데 해외법인의 자본금에 대해서는 수출입은행에서 80%까지 빌려주므로 대우가 자체적으로 마련할 돈은 4천4백만달러인 셈이다.그나마 이 4천4백만달러도 당장 들어가는 돈이 아니다. 총투자액11억달러라는게 7년간의 투자규모를 말하는 것이므로 대우가 자기자금으로 조달해야 할 4천4백만달러도 7년에 걸쳐 투자하면 된다.따라서 실제 1년에 들어가는 돈은 연평균 6백30만달러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차입금 6억6천만달러를 끌어들이는 것도 대우에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외투자법인의 차입금은 출자자인 대우 이름으로빌리는 게 아니고 해당법인이 차주가 된다.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 법인의 차입금에 대해서는 현지정부가 보증을 선다. 대우는 대출해줄 은행을 물색해 소개만 해주면 된다.돈줄을 찾는 일은 대우가 자랑하는 노하우중 하나다. 대우에는 금융계에서 관록을 쌓은 전문경영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주)대우의 서형석회장 이상훈상무 대우조선 신영균사장 대우전자 양재열사장이 한은출신, (주)대우 강병호사장 대우자동차 김태구회장이 산은출신, 대우증권 허 준회장이 외환은행 출신이다.이들은 대부분 런던 뉴욕 홍콩 도쿄 등 국제금융의 심장부에서 활동한 경력을 지닌 파이낸싱의 귀재들이다. 강사장의 경우 해외에서열리는 국제금융세미나에 종종 연사로 초청될 정도다. 이런 인적자원을 활용해 일찍부터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온 대우는세계 2백여개 금융기관들과 거래하고 있다.대우가 해외투자자금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데에는 또 다른 요인도 있다. 투자의 대부분은 공장설비들이다. 이들 설비를 대우중공업 등 계열사에서 공급하면 그룹 전체적인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투자가, 다른 한편으로는 수출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신규설비가아니라 국내설비를 뜯어 반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고설비의경우 이미 감가상각비를 회수했으므로 새로운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출하면서 연불수출금융을 받을 수 있다(이상무).속된 표현으로 대우의 해외투자는 「꿩먹고 알먹고 둥지털어 불까지 때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대우는 해외법인이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기 전에 소요되는 초기운영자금도 현지에서자체적으로 해결한다. 현지 정부를 설득하거나 관세법을 절묘하게활용해 한국에서 무관세로 승용차를 들여와 판매한 후 그 판매대금을 운영자금으로 쓰는 것이다. 루마니아에서는 이런 식으로 작년한해에만 7천대를 팔았다고 한다.대우가 막대한 규모의 해외투자를 서슴없이 밀어붙이는 데에는 바로 이런 금융과 비즈니스상의 노하우가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대우의 세계경영에 대해 또하나 궁금한 점은 외국정부가 왜 하필이면 대우를 선택하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동구권의 경우 상당한 특혜까지 주어가며 대우에 호의적이다. 폴란드 FSO만해도 세계 최대의 다국적 기업인 GM이 대우와 경합을 벌였지만 결과는 대우의 완승이었다. 루마니아의 망갈리아 조선소 인수와 관련해서는 현지 국회에서 대우에 지나친 특혜를 줬다며 문제삼은 적도 있다.◆ 대우의 ‘신속한 의사결정’ 높이 산다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는 대우가 의사결정이 신속하다는 점이다. 서방기업들의 경우 인수협상에 실무자가 나서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늦어진다. 대우는 김우중회장이 직접 뛴다. 종합적인 조망이 가능하고 의사결정도 빠를 수밖에 없다.왕영남 대우자동차부사장의 설명이다. 또 하나는 대우가 갖고 있는 경제개발의 경험을 동구권이나 개도국 정부 지도자들이 높이 사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개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이들 국가로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그중에도 불과 30년만에 거대한기업군을 일으킨 대우에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실례로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이나 베트남의 도무오이 서기장은대우를 배우고 싶어하는 대표적인 정상이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지난해 김우중회장이 방문했을 때 리마 쉐라톤 호텔 9층 전체를 숙소로 잡아주는 배려를 보여줬고 도무오이 서기장은 한국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기업인으로 김회장을 꼽는다고 한다. 이밖에 폴란드의 그다니예프스키대통령, 루마니아의 일리에스쿠 전대통령, 캄보디아의 훈센총리, 미얀마의 탄세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의장, 엘살바도르의 솔대통령, 프랑스의 시라크대통령,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대통령 등도 김회장과 친숙한 정상들이다.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대우가 환영받는 이유는 대우 특유의 「리스크 러버」적 경영태도다. 다른 기업들이 위험부담 때문에 꺼리는인수조건도 대우는 기꺼이 받아 들인다는 것이다. 지난 84년 인수한 벨기에의 유니버설 정유공장의 경우 영국 독일 미국 일본 등 유수한 회사들이 인수협상에 나섰다가 모두 적자투성이인 재정상태에겁을 먹고 중도에 물러섰다. 그러나 대우는 주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선뜻 인수했고 불과 1년만에 이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얼마전 준공식을 가진 우즈베키스탄 자동차공장도 좋지 않은 투자여건을 대우 특유의 성장 노하우를 믿고 인수해 성공한 예다. 대우는 특히 다른 기업들이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는 사실을 알고 파격적인 조건을 얻어냈다. 현지정부는 판매 및 수익보장의 옵션에다 차입금의 지불보증까지 서주었다. FSO인수의 경우 폴란드 정부가 대우의 손을 들어준 가장 큰 이유는 해고를 않는다는조건이었다. 인수후에도 해고를 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에 GM은 난색을 표했지만 대우는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고용안정을 중시하는동구권기업들에 이 이상 가는 조건은 없다.그러면 대우는 어떻게 종업원을 다 끌어안는다는 것일까. 이에 대해 왕영남 부사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은 인력이 남아도는게사실이다. 그러나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시설확장을 하게 되고그때가서는 인력이 오히려 부족해질 것이다. 한국만 해도 벌써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한마디로 매사에 긍정적인 시각으로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보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대우의 이같은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야말로 「세계경영」의 본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