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마음의 표시를 해야 하거나 하고싶을 때가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흔히 그 마음의 표시가 물질적인것으로 나타난다. 그런 마음의 표시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표시가 도를 지나치거나 불순한 동기가 숨어있을 때 문제가되는 것이다.순수한 정의 표시는 받아들이고 과한 것은 물리치는 지혜가 쉬운것은 아니다. 받는 입장도 어렵고 주는 입장도 쉽지 않다. 그리고제일 어려운 것은 「주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1960년대 우리나라 경제개발 초기단계, 일본의 기술을 이전받는1억달러가 넘는 거대한 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의 기술적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잘 되어가던 협상이 막판에 가서 위기를 맞았다.일본에서 계약할 수 없다며 뒤로 물러선 것이다. 우리에게 기술을줄 경우 나중에 한국에 세계시장을 뺏긴다는 일본 내부의 여론 때문이었다. 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그것을 극적으로 뒤집은 역사에는드러나지 않은 일본의 거물이 한사람 있었다.그는 일본에 국민적 숭앙을 받던 인물이었는데 역대 일본 총리들이모두 국사로 모시던 양명학의 거두 Y씨였다. 그가 한국에 기술을이전해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결국 한일간 계약은 체결이되었고 그 프로젝트는 오늘날 한국경제가 일어서는데 견인차가 되었다.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한국의 그 공장이 기대를 훨씬 넘는 성과를 이루고 있을 때 우리측 책임자가 Y씨를 방문했다.한국의 책임자는 깊은 감사의 표시로 미화 1백달러 짜리 만장, 백만달러를 보자기에 싸서 그에게 내놓았다. 보따리를 내려다 보던Y씨, 그는 보자기를 풀더니 그 중 한 다발을 집어 들었다.『내가 이거 안 받으면 당신에 대한 인사가 아니고, 그러나 이것을받으면 내가 대단히 좋지 않은 사람이 돼. 그러니 받긴 받되 이거면 족하니 나머지는 가지고 가시오.』그는 집어든 한 다발에서 백달러짜리 한 장을 뽑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99만9천9백달러는 끝내 받지 않았다.그는 타인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을 더불어 다스릴 줄 아는 거물이었다.Y씨의 양명학에 대한 깊이는 중국에도 널리 떨치었으며 공산주의자나 자유주의자나 심지어 파시스트까지 이데올로기를 초월해서 학문적으로 숭앙했던 인물이었다.왕양명이 주창한 양명학(陽明學)의 기본이념은 「사람마다 양지(良知)를 타고 났으나 물욕에 가리어 흐려지므로 그 장애를 제거하고지행합일(知行合一)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최근 우리를 우울하게 했던 한보사태. 얼마를 주었다 안 받았다,어떤 주장도 변명도 국민들에게는 다 우울한 이야기들이다.부(富)가 부(富)를 부르고 그에 수반하는 부패와 부조리가 지적되고, 현대자본주의에 대해 회의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분명한 건 그런 것들은 자본주의나 자유시장경제가 추구하는 바도 아닐 뿐더러참모습도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을 쓰기 전 거듭거듭 강조한 것이 「윤리」 즉, 사람이 지켜야 할도리였다.이론적으로 완벽한 어떤 사회구조도 윤리가 배제되었을 때 그 참모습을 간직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지금의 사태로 인하여 비관론에 빠지는 것도 앞을 위해서 좋을 것이 없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윤리를 추스르는 일에 정부와 국민 기업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하는 일이 중요할 것같다.지금과 같은 경제체제에서 「양심이 물욕에 가리어 흐려지지 않게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꾀해야 함」은 지금 너나할 것 없이 간직해야 할 우리 사회의 윤리다. 그리고 윤리란 한 쪽에만 필요한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요구되는 덕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