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은 대부분의 경우 얼굴을 숨기고 신분을 감추고자 하는 목적에서 착용하게 된 것이다. 예술의 영역까지 승화된 가면은 그것 자체로 인간의 정신세계를 적절하게 표현한다. 익명성의 표시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가면들은 라스베이가스의 쇼무대에서도늘 볼수 있는 것이다. 쇼들은 까만 나비 가면을 쓴 팔등신의 여인들이 옷을 차례로 벗어 궁극적으로는 알몸이 되는 과정을 부드러운배경음악을 들으며 즐기게 된다.이때 가면의 역할이라는 것은 여체를 더욱 음탕한 눈으로 감상할수 있도록 시각의 자유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가면은 특별한 경우와 특별한 장소에 한정되어 착용됐지만 때론 대로상에서 일상적으로 착용했던 사례들도 더러 기록되어 있다. 최근들어 펑크 머리를하고 얼굴에 페인팅을 한채 돌아다니는 정신 나간 아이들이 있지만기본적인 심리는 역시 가면과 다를 바 없다.앙시앙 레짐 시대의 베네치아에서는 사육제 뿐만 아니라 1년 내내가면을 쓰고 다녔던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평민들에게는 이것이허용되지 않았고 귀족에게만 허용됐다.귀족계급에게만 특별한 복장이 허용되는 것은 늘 되풀이 되어온 일이지만 가면 역시 일부에서는 귀족계급에 대해서만 허용됐다. 가발이 귀족들의 위신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장식물이 되었듯이 익명이된다는 것 신분을 속인다는 것은 언제나 호색가들에게 가장 좋은방패막이가 되는 것이다.베네치아에서는 곤돌라를 이용한 방법 밖엔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든 어디를 가든 금세 행선지와 신분이 노출되기마련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유독 가면을 일상적으로 썼던 것은이같은 환경하에서였다. 물론 목적은 오입쟁이들이 자신의 행선지를 숨기고자 하는 것이었다.특히 극장에 갈때는 가면을 써야만 외설적인 장면들을 마음놓고 쳐다볼수 있었다. 그래서 정숙을 표방하는 귀족의 부인들도 극장에갈 때는 가면을 썼고 연극을 즐겼다. 대개 그시절의 연극이라는 것은 음탕한 주제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데다 귀족의 특별석은 휘장으로 둘러쳐지고 간이 침대까지 마련되어 있는 일종의 유희장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 침대에서 무엇을 즐겼는지는물론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이런 사정은 파리나 런던도 예외가 아니었다. 궁정의 연극, 서민의대중 극장 가릴 것 없이 당시의 극장에서는 외설적인 것들이어야팔리고 손님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요즘 대학로의 연극들이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는 도덕군자들의 우려가 있지만 언제나 뒷골목에서는 이런 재미가 있어왔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가면은 이때 가장 절실한 복장이었다. 오늘날 가면무도회라는 이름이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은밀한 즐거움을 연상시키는 것과마찬가지로 당시 사람들은 가면뒤에 숨어 실제로 이런 재미를 즐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