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어느 조직이 갑자기 막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예상을못한 상태에서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환율이 크게 변동한다.의외의 상품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독점하며 시장을 장악한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아니 벌어지는 일들이다. 또 이런 의문들도 수없이 우리들에게 대답을 요구한다. 「수십억개의 뇌세포 활동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사고와 감정, 그리고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물의 종이 영고성쇠를 반복해온 생명진화의비밀은 무엇일까.」우리의 주변에는 기존 과학으로는 풀수 없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이 널려 있다. 제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물론 이는 학자가 능력이 없어서는 아니다. 기존 학문의 틀이 그렇게 잡혀왔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문제를 풀려다보니 안된다는 편이옳다. 그동안 경제학을 포함한 과학은 연구대상, 다시 말해 물질경제 기업 등을 각각의 요소로 분해해 분석한 다음 전체의 원리를그려냈다. 예를 들면 경제부처가 내놓는 경기동향지수라는 것이 있다. 이는 30여종의 통계치를 모은 후 이를 분석해 대체적인 지수를만들어낸다. 각 기관이나 연구소, 또는 경제학자들이 발표하는 단기경제예측도 마찬가지다. 경제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모아 이를 하나하나 분석해 예측자료를 내놓는다.여기에는 또 전제가 하나 따라붙는다. 경제라는 시스템은 언젠가는반드시 균형으로 돌아간다는 전제다. 불황의 바닥에 떨어져 있다면반드시 반전해 이전의 균형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상승국면은 분명히 정점에 갔다가는 다시 하강한다는뜻이다. 경기만이 아니다. 주가 환율 금리 등도 마찬가지 성질을갖고 있다고 전제하고 예측을 한다. 기업의 수익구조도 그렇다. 어떤 물건을 생산하는 경우 노동시간을 점점 늘려 투입하면 어느 시점에서 노동 1단위당 수익증가분(한계수익)은 체감한다고 단정한다. 여기에는 원래로 돌아간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이를 영어로는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라고 한다. 이러한 원리를경제학에서는 시스템의 안정성에 의한 균형, 물리학 용어로는 평형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시스템의 안정성을 전제로 하고모든 현상을 예측하고 생산한다.◆ 기존 안정과 균형의 원리에 근본적 결함 있어하지만 앞서 언급했지만 이런 원리로는 풀 수 없는 현상이 한둘이아니다. 여러가지 미스터리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안정된 것으로 여겼던 시스템이 예측불능의 상태가 되고 마침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생물의 진화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얘기되지만 현실의 사회에서 우리들이 자주 경험하는 문제다. 이는우리가 그동안 믿어온 안정과 균형의 원리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또 복잡계 연구가 하나의 학문적인 흐름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굳게 믿어온 시스템에 근본적인문제점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원리를 찾기 위해 복잡계과학이 시작된 것이다.복잡계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연구대상을 둘러싼 요소들을 따로 나누지 않는다. 기존처럼 각 요소를 따로따로 분석하지 않는 것이다.대신 통합의 개념을 적용한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화학자생물학자 경제학자들 모두 마찬가지다. 기상현상을 예로 들어보자.기존의 이론대로 하면 기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분리해 수치를 구한다. 그런 다음 이들 요소들을 분석해 하나의 예측을 내놓는다. 높은 곳에서 숲을 보기보다 지상에서 각각의 나무를 보고 예측을 하는 셈이다.그러나 복잡계과학에서는 각 요소들을 나누지 않고 전체를 하나로본다. 결론도 전체의 모습에서 끌어낸다. 물리학 화학 경제학 등각 학문분야 사이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다. 전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어느 현상이든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난다고보는 까닭이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지향하는 목표도 하나다.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를 찾는 것이다. 단지 어느 한 분야에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복잡계의 연구대상이 아니다.현실적 필요에 의해 탄생한 복잡계에 대한 관심은 분야를 가리지않는다. 또 이를 실제로 이용하는 기관이나 단체도 크게 느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얼마전 일본금융연구소에서 한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한 일이 있다. 연구제목은 <신경네트워크 접근에 의한경제분석 designtimesp=4859>으로 중앙은행에 대한 정책비판에 응용하기 위해서였다.여기서 한가지 특징적인 점은 기존의 원리 대신 복잡계 방식을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복잡계 이론을 과감히 활용했다.사실 보통의 연구에서는 중앙은행이 거시경제의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고, 또 금융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명하게 예측할 수있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중앙은행은 제한된 정보처리능력과 시간의 제약 아래에서 탐색적으로 정책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일부합리적, 비선형적이라는 전제 속에서 중앙은행의 행동을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이 연구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이런저런 요인에 의해서 파괴되고 갑자기 이상한 상태로 변하는 사태 등을 예측해 정책판단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보편성·실용성 충분히 갖추지 못한 연구단계복잡계에 대한 연구는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 없이 여전히 활발하기만 하다. 복잡계 연구의중심지인 미국 산타페연구소에 모여드는 학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개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이 곳을 찾는 학자들은 잠깐씩 머무르며 연구를 계속한다. 요즘 이들이 한창 관심을 갖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분야는 하이테크산업의 발전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을새로운 수법으로 분석, 미국의 정책에 반영되도록 부단히 노력하고있다. 또 일본의 대표적인 복잡계 학자인 니시야마 교수 등은 소비자의 기호나 유행현상의 설명에 복잡계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또 가네자와대학의 시미즈 교수는 조직론과 환경문제 등도복잡계 과학의 대상이 될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그는 그러면서 공직자들 사이에 뇌물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원인을예로 들어 설명한다. 『젊은 사무관 시절부터 차관 후보로 꼽혀온유능한 정부 관료가 독직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이는 명백한 공직자 부정사건으로 사회 전체를 부패의 먹이사슬 구조로 몰아가곤 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이는 관료 조직이 단선형의질서지향적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구조 자체를 바꾸면 비리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복잡계 학자들은 생물사회가 잇달아 신종을 만들어내고 다이내믹한창조성이 넘치는 것은 복잡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구소련의 붕괴도그렇지만 조직이 다이내믹한 복잡계가 아닐 때 자기조직화할 수 있는 힘, 다시 말해 조직을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자정능력도 잃는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선진국의 과학자 뿐만 아니라 경영자나 비즈니스맨들이 우리에게는 생소한 복잡계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고 할수 있다.지금 시점에서 복잡계과학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다. 또복잡계가 모든 의문점들에 대해 속시원히 풀어줄 수 있는 상황도아니다. 아직도 연구가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론으로서의보편성과 수법으로서의 실용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도 따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의 이치를 밝힐 새로운 원리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삼라만상을 풀어줄 열쇠로서의역할을 다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