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타이라이들은 지식과 가무를 겸비한 여자들로 알려져 있다. 그녀들은 아마도 신전의 신녀에 신분의 뿌리를 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생각하는 역사학자들이 많다. 바빌로니아 이래로 신녀들은 대부분이 몸을 바치는 여인들이었고 몸은 신에게 뿐만 아니라 신을 찾는남자들에게도 동시에 공양되었다. 이같은 사정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기녀들은 원래 절에서 기거하던 신녀들로 알려져 있다.아마도 다산의 기원 같은 것에 근원을 두고 있을지 모르지만 신녀들이 점차 남자들의 애인이 돼 갔던 것은 분명한 것같다. 어떤 때는 신전에서 남성들을 상대하는 것이 일정한 연령에 이른 여인들의공통된 의무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신녀들이과연 몸을 파는 창녀와 동일시될 수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성경에도 잘 묘사되어 있듯, 신전은 대개 시장과 다를 바 없는 장소였고, 따라서 이러한 신전에 다종다양한 인간들을 대상으로 몸을파는 직업여성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실제로일본에서 사창가가 가장 먼저 발달한 곳은 바로 절로 들어서는 양쪽 길거리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그리스에서는 예를 들어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천 명이 넘는 고급창녀들이 득실거렸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들은 신앙심 깊은 부자들이 신전에 바친 여인들이었다. 부자들은 여인들을 사들여 신전에기부했는데 여인들은 이를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자랑스럽게 여겼다. 남자들이 1등시민이요 그들의 아내가 등외시민이었다면 고급창녀들 즉 헤타이라이들은 2등시민은 됐다.사창가는 실로 남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면 어디서건 번성했다. 그리스 사창가의 기원은 기원전 6세기에 솔론이 아테네에 세운 공창(公娼)이다. 아테네는 물론 수도라는 특성이 있었지만 항구도시로서무역을 주업으로 하는 그리스의 교역창구였다. 인구 10만여의 아테네가 자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식민지와 교역국가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상인들과 수도에의 여행객들을 위해 사창가를 세운 것임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교통이 번잡한 지역에서는 특히 사창업이 잘 됐다. 로마에 국제적인 창녀들이 총집합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리스에서도 사창가는 항구들과 교역의 중심지들에서 우후죽순처럼 문을 열었다.두개의 항구를 갖고 해운과 교역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냈던 코린트는 특히 창녀들의 근거지였다.창녀들에게도 위계질서가 있어 고급창녀인 헤타이라이가 있었다면길거리 가창도 또 소위 갈보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공인된 사창가에서 일정한 소속감과 신분적 예속하에서 영업을 하는 주력군이 있었다. 코린트에서의 창녀집단은 아마도 일정한 정해진 구역에서 손님을 불러들이는 창가를 형성하고 있었을 테지만,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가창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암스테르담이건 도쿄이건 항구를 끼고 있는 곳은 모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여인들이 많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