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의 신흥 개발도상국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잇달아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탄탄한 것으로 여겨졌던 아시아의신흥 경제국들이 하루 아침에 아주 두려운 지경으로 떨어지는 것이전 세계적인 관점에서는 처음에 별로 큰 일처럼 보이진 않았다.GDP가 1천8백억달러 정도되는 태국과 9백억달러의 말레이시아, 8백억달러 정도인 필리핀의 통화가치 하락과 증시 폭락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 시기에 별로 이익도 보지 못하면서 이곳에다 투자한 외국인들이 전부였다. 그들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한참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느긋한 입장에서 바라봤다.일부 관찰자들 중에는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아주 고소하다는 듯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제발전 과정에 있어서도 「아시아적」 가치에다 더 우월성을 부여하고 이를 서양인들에게 강변하던 말레이시아의 모하메드 마하티르 총리를 비롯, 이 지역의나머지 지도자들이 결국은 나라 경제를 그 꼴로 만든 것은 서양의경제발전 모델을 그대로 따르지 않은 데 대한 자업자득의 결과라고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러나 지난 두달여동안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위기는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심각한 문제가돼 버렸다. 급기야 지난 10월말 홍콩에서 벌어진 증시폭락은 전세계적인 연쇄 폭락의 전조로 여겨졌다.◆ 실수 인정않고 발뺌하는 나라 많아마침 비슷한 시기에 GDP 2천2백억달러에다 2억명에 가까운 인구를가진 인도네시아가 금융위기에 빠지자 세계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 이전 태국의 경제위기를 구원하기 위해 1백7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원조한 국제통화기금(IMF)과 다른 원조기관들은 인도네시아에 모두 합쳐 4백억달러의 긴급자금을 원조했다.그 직후에도 IMF에 구조요청 신호를 보낸 나라가 나왔다.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IMF에 손을 벌린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은 GDP 4천9백억달러라는 아주 큰 경제규모를 갖고 있으며 서구를 상대로 활발한무역을 하고 있는 주요한 국가로 꼽힌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도와준 IMF가 한국에 대해서만은 유독 노라고 할 수 있었을까.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지원은 하되 구제금융 지출을 몇단계 늦출 수도 있다. IMF가 세계 각 국가들에 구제금융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구제를 요청하는 나라들의 부탁을 거절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사실 이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IMF는 원래 지난 40년대에많은 목적 중에서도 파산위험에 직면한 나라들에 최후의 도피처로금융지원을 해 주는 것을 주로 하는 기관으로 설립됐기 때문이다.IMF는 지난 80년대 제 3세계의 외채위기를 막는 데 큰 기여를 했고3년전에는 멕시코의 국가신인도를 회복시켜 줬다. 멕시코에 대한개입은 비록 미국 재무성과 그 시기에 대한 약간의 의견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긴급융자가 적절하게 쓰여졌다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멕시코 재정문제로 발생한 「전염병」이 중남미 지역의 나머지 국가들에도 연쇄적 감염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불식된 셈이다.이제 아시아에서도 당장 각 나라들이 차례로 비슷한 고통에 시달리다 무너지는 「전염병」의 위험이 닥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경제위기가 국경 밖으로부터 들어온 전염성 「질환」이라고 관찰되는 데 비해 한국의 현 문제는 명백하게 오랜기간동안 내부적으로 곪아온 것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한국의 은행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위험상태는 한국정부가 그 어느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동안에도 거의 일년간이나 뚜렷이나타나고 있었다. 결국 지난 주 한국정부는 뒤늦게 「금융구조개편」이라는 처방을 내리려 했지만 이번에는 국회가 이것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한국은 줄곧 자신들은 IMF로부터의 자금지원이나 경제운용에 관한 어드바이스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해 왔다.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뺌하는 국가는 사실 한국만이 아니다. 그리고 IMF가 특정 국가의 부실한 경제를 진단할 때 『이 나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가 『또 어떤 나라는 쓸만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의적인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제도상으로심각한 위기에 빠졌다는 객관적 근거가 있을 때에만 IMF의 지원이있어야 한다.그러나 파산지경에 이른 국가의 경제를 구원하기 위해 개입할 때마다 IMF는 여신업자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특유의 딜레마에 빠지게된다. 구제가 너무 쉽게 이뤄진다면 어떤 나라든 통화의 가치가 하락하면 곧바로 구제금융쪽으로 손을 벌리게 될 것이다.IMF의 원조를 받아내기가 너무 쉽다면 정책담당자들은 방만하고 안일한 경제정책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고 경제의 각 부문들도 체질개선을 위해 별로 힘쓰지 않을 것이다.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단련을 통해 합리적인 정책을 유도해 낼수 있는 능력을 정부와 시장으로부터 빼앗는 것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는 또다시 우려할 만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그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도록 한국이 구조요청을 하는 전화를 걸어대더라도 일단은 벨이 계속 울리도록 그냥 두는 것도 괜찮다. 이것도 한국경제를 단련시키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