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모델인 포니1 승용차가 시판된 것은 75년.그해에 고교 2년생이었던 유숭만 소년은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카스타일리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자동차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없었으므로 외국 유학을 가야만 했다. 어찌나 다급했던지 고교때부터 토플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한양대)에 진학해서도 엔지니어링과 경영학을 함께 전공할 수 있는산업공학을 택했다. 디자인 회사의 경영까지 염두에 두는 장기 포석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흘러 유 소년은 「일가를 이뤘다」는평을 들으며 자동차 디자인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요즘 유행하는 표현에 따르면 유씨는 「준비된 카 스타일리스트」인 셈이다.올해 만 39세의 젊은 나이지만 그는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 관한 한1세대로 꼽힌다. 자기 의지를 갖고 자기가 돈을 조달해 혈혈단신외국에 나가 자동차 스타일리스트가 된 인물로는 유씨가 최초나 다름없기 때문이다.유씨는 대학 졸업 이듬해인 85년초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IAAD에입학, 정식으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게 된다. IAAD를 졸업한 뒤에는 익스테리아 외에 인테리어 분야(실내기관 디자인)도배우고 개인적 관심분야도 연구할 겸 해서 밀라노의 ISAD 요트 디자인학과로 옮긴다. 그리고 88년 말 귀국, 쌍용자동차에 스카웃돼무쏘 자동차를 개발하고는 90년 6월 마노(MANO)라는 이름의 자동차디자인 및 컨설팅 회사를 차려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마노는 대기업 디자인실이 아닌 독립 스튜디오로는 국내 제1호로통한다. 디자인 스튜디오라고하면 디자인 수행능력은 물론이거니와2차원 형상을 공업용 찰흙이나(클레이 모델) 수지류(하드모델) 등을 이용해 실제물로 만드는 모델링 기능도 갖춰야한다. 더 나아가구상된 모델이 실제 움직이는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엔지니어링 기술도 확보하고 있어야한다.◆ 초기 아이디어부터 완성차개발까지 담당상식적인 얘기지만 자동차는 조립 엔지니어링이다. 수많은 사람의아이디어와 수천장에 이르는 설계 도면, 수만개가 넘는 각종 부품들이 절묘하게 아귀가 맞아야만 완벽한 구동장치로서 탄생한다. 유숭만 사장이 하는 일은 초기 스케치 디자인에서부터 양산 직전에이르기까지 전과정 개발, 혹은 그중의 일부 과정을 맡아 최종 완성차 개발에 기여하는 것이다.지금까지의 주요 실적을 보면 기아의 크레도스 왜건과 슈마, 대우의 슈퍼 트랙터, 파워 윙바디 등 트럭류, 버스 2000 등을 디자인및 개발했고, 대우의 프로젝트명인 T-100과 A-100, 삼성중공업의 35t, 45t 굴삭기 등은 하드모델을 제작했다. 특히 대우의 DACC-1과시라츠의 리노베이션도 맡아 완벽히 수행하는 기술적 저력을 과시했다. 또 자체 컨셉트카인 S카 개발, 무운전자 궤도차량인 PRT 및FRT, 2인승 전기차인 치타(CITTA) 디자인 및 시작차(試作車·프로토타입)개발 등 수많은 컨셉트카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밖에 제1회파리-모스크바-베이징 국제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는 서울 랠리&레이스팀의 갤로퍼 외관 튜닝도 성공리에 완수하는 등 각종 튜닝이나부분 모델 개발·제작 사례는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다.자동차의 경우 스타일이 구매심리에 끼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다. 그러나 자동차 디자인은 단순히 멋진 스케치만으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디자이너 본인이 마음에 드는 걸작이라고해도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실패다. 또 시대를 너무 앞서가도, 너무 뒤처져도 안된다. 3,4년 뒤 제품이 나왔을때의 시대적 취향과 소비자 정서에 정확하게부합하는 트랜드 예측력이 필요하다.◆ 창작품에 대한 온당한 대가 인정돼야이런 점에서 카 디자이너는 때론 고통스런 직업일 수밖에 없다고유사장은 말한다. 그가 디자이너의 덕목으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뜻밖에 「체력」이다. 몸이 건강해야 생각이 건전하고 건강한사고에서 굿 디자인이 나오기 때문이란다. 디자이너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서있는 상태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 모델링 작업을 하다보면 하루에 15시간 이상 서있을 경우도 적지 않다. 96년같은 경우 유사장은 겨우 6일 쉰 것으로 기억할 정도다.재료나 제조공법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야하고 전자 전기에 대한 지식 또한 가벼워서는 안된다. 금속은 늘어나고 휘어지고 갈라지는등의 특성이 있다. 이를 몰라서는 금속제 완성차의 부품이 삐걱거리는 등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다. 자동차는 직각이 아니라 수없이많은 굴곡으로 이뤄져있다. 따라서 차의 부분간 길이를 설계도면에맞춰 정확하게 뽑아내려면 수치제어 지식도 갖춰야한다.겉에서 보면 화려하기 그지 없을 것같지만 실로 다방면의 지식과체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 직업이 바로 자동차 스타일리스트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 디자이너는 자기가 「미쳐서」 해야 한다는 게 유사장의 지론이다.『오직 열정으로 일을 합니다. 그리고 거의 전쟁을 치른다는 기분으로 삽니다. 프로는 연습이 없지 않습니까. 다음부터 잘해야지하는 마음가짐으로는 프로로서의 자격도 없고 버텨나갈 수도 없습니다.』유사장이 또 하나 금과옥조처럼 새기고 있는 게 있다. 「새로운 정신의 끊임없는 수혈」, 즉 리프레싱(refreshing)이다. 수입은 얼마안되지만 대학 강의를 부지런히 나가는 이유중의 하나도 『그곳에서는 때때로 학생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는 독립 스튜디오의 생명도 매너리즘의 탈피, 프레시한 감각의제시 등에 있다고 믿고 있다. 컨셉트카를 개발하는 데는 그래서 대기업보다 독립 스튜디오가 낫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창작물에 대한 대가 인정에 인색한 대기업들의 풍토. 그는 「디자인 피(fee)」를 인정하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만큼 질 높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연관 산업의 기술진보도 긴요하다. 예컨대 디자인상으로는 곡률(曲率)이 심한 유리를 필요로하는데 유리회사에서 그만한 곡률의 유리를 만들지 못하고 와이퍼업체에서도 뒷받침을 못하면 디자인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이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역시 내가 만든 차를 길에서 볼 때입니다. 사람들한테 「그건 내가 만든 겁니다」하고 얘기해주고픈 충동을 갖게 됩니다. 반면에 「나같으면 저런 모습으로는안만들겠다」는 평을 들으면 뜨끔해지기도 하죠. 그러나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고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