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은 로마인들에게는 가혹한 내핍을 강조했다. 한니발이 카르타고를 지휘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역사가들은이때 후대사람들이 로마인들의 기질이라고 보는 것이 형성되었다고말하고 있다.술판을 벌이는 것이 금지됐고 여자들에게는 향수를 바르는 것조차엄격하게 통제되었다. 나중에 부인들이 군중집회까지 열어 이의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게 되었지만 한니발과의 전쟁기간동안로마인들은 오랜 초긴축의 시절을 살았다. IMF체제에 사는 우리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니까. 더욱이 당시는 전쟁중이었다.고결하고도 강한 스파르타식 정신이 로마인들을 지배했다. 이들이나중에 어떻게 그런 극단적 방종에 흔들리게 되었는지가 궁금할 정도다. 한니발이 로마의 도시들을 쓸고 들어오면 로마여인들은 피의순결을 지키기 위해 로마인이라면 어떤 남자이든 그를 받아들였다.로마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이런 행위는 사실 로마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도 임진란 때 그랬다. 우리나라는임진란에서 끝내 승리를 얻어내기는 했지만 많은 희생을 치렀다.여인들이 당하는 성적 폭행은 어디에서건 다반사였다. 병자호란 때의 악행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들은 짐승처럼 한강변에 부녀들을 몰아넣고 추행을 했다. 칠거지악으로 지탱되던 조선이라 한들 이런 상황아래서는 별수 없었다. 조정에선 전란중에당한 일을 남자와 남편들이 그의 아내와 딸들에게 치죄하지 못하도록 임금이 특별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이를 이유로 아내를 버리지못한다는 왕의 명령이 전국방방곡곡에 내려졌다.전란 때가 되면 처녀들은 옥수수대로 아랫도리를 남자의 그것처럼불룩하게 내밀고 다녔고 얼굴은 추해 보이도록 회칠을 하고 다녔다. 누가 다가와 보더라도 남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음은 물론이다. 답답한 일이지만 남자들은 장애인이 되거나 죽는 일이 다반사요 여인들은 그대신 생명과도 같은 정조를 내어주어야 했던 것이다.로마의 여인들은 아예 이방인들의 씨앗을 가지지 않기 위해 적의병사들이 성문을 밀고 들어오기 전에 다른 로마인들을 받아들였다.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로마여인들의 저항이요 민족 감정의발로였던 셈이다.그러나 이 전쟁으로 로마는 더이상 언덕위의 한무리 집단 로마가아니게 되었다. 로마는 한니발 즉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통해 그리스 식민지역들과 근동지방을 장악했고 세계제국으로서의 기틀을 잡았다. 이제 승리자의 행진이 있고 승리자가 즐기는 약탈과 착취 방종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은 망각속으로 잠들어갔고 로마인은역사상 유례 없는 성의 환락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들은 그들이 정복한 곳으로부터 성의 자유와 방종과 타락을 끌고 들어왔다. 지금껏 그들을 지탱하던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실로 놀라운 즐거움을 주는 일탈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