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대한 은행권의 협조융자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협조융자에대한 「비협조적인」 발언은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지난 3월18일 박태준 자민련총재는 협조융자를 구시대의 관치금융이라고 규정하고 더이상의 협조융자가 없도록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이에앞서 15일엔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도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협조융자가 금지돼야 한다고 못박았다.비단 정치권과 일부 관료들 만이 아니다. 은행원 자신들도 협조융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결국은 부실화될 기업에 잠시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조치라는 얘기다. 은행실무자들은 협조융자로 인해 은행마저 동반 부실화될까 우려한다. 실제로 그같은 사례도 생겼었다. 해태 뉴코아 등은 협조융자를 받은후 몇달도 지나지 않아부도를 냈었다.그런 한편 일각에서는 협조융자야말로 선진금융의 기법이라고 맞선다. 협조융자는 서구식 용어로 신디케이트론이다. 금융이 발달한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선 상당히 활성화돼있다. 리스크(위험)를 분산할 수 있을 뿐더러 사업타당성 검토를 공동으로 할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다. 사실 원화 협조융자야 최근에 본격화된 것이지만 외화 협조융자는 다반사로 있었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조달한 자금은모조리 협조융자(신디케이트론)를 통했다고 보면 된다. 국내은행들도 외환위기 전에 해외에 나가 협조융자를 수시로 취급했다. 어떤 면에서 협조융자는 권장할만한 금융관행이다.그런데도 국내에선 요즘 협조융자에 대한 마녀사냥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협조융자의 절차가 비정상적인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의 「협조」융자는 말그대로 은행단독의 결정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협조융자의 초기단계에서 정부부처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아니 당국과정치권은 협조융자여부를 판단하는 주체이자 연출자다. 은행장들은다만 배우역할에 그칠 뿐이다.◆ 리스크 분산 장점도 있어물론 관계당국도 할말은 있을 것이다. 당국은 IMF(국제통화기금)체제이후 상당한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 기업들의 부실을 방치할 경우 산업계는 물론 금융계도 붕괴한다는 것. 외채협상을 진행하는 마당에 대외적인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 때문에 협조융자가 땜질방식 처방이라는 비난을 사면서도끊이질 않았다.그러다보니 협조융자는 부실징후 기업만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우량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정상적인 협조융자의 뿌리는 싹틀 여지조차 없었다. 결과는 온통 부작용 투성이로 나타났다.협조융자를 받은 기업들은 덤핑 수출과 수주로 국제시장에서 국내의 경쟁상대를 농락했다. 같은 업계의 정상기업은 협조융자 기업으로 인해 예상치않은 경쟁력 저하를 감수해야 했다. 은행들은 특히현금흐름 위주로만 협조융자 여부를 판단했기 때문에 자금사정이「적당히 나쁜」 기업들은 돈구경도 하지 못하는 이상현상도 생겨났다.은행의 여신결정 과정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협조융자를 받은 대기업중엔 은행 심사역들이 자산실사를 거쳐 법정관리를 권고한 업체도 있었다. 은행장들은 아랑곳않고 협조융자를 결의했다. 여신심사라는 은행 고유의 기능이 무력화된 셈이다. 일부 은행장은 여신권한이 없는데도 협조융자에 사인했다. 이에 자금을 받지 못하는우량 중소기업들은 불만과 불평을 쏟아냈다. 대기업에 대준 수천억원의 돈을 중소기업에 풀었더라면 수백개는 살릴 것이란 계산도 내놨다. 이른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현상)현상도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 떠올랐다. 일부기업은 지난해 12월 협조융자를 받은후지난 2월 또 은행권의 자금지원에 기댔다. 또 기업들은 한꺼번에대규모의 자금을 확보할 목적으로 무턱대고 수천억원 단위의 자금을 내달라고 신청했다.한편 붕괴된 금융중개기능을 협조융자에서 기대해보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은행의 기업여신 담당자들은 이런 제안을 한다. 「사업전망이 유망한 우량기업마저 부도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적극적으로 협조융자를 해주자. 그러나 은행만의 독자적인 여신판단이 전제해야한다. 정치권의 협조없는 협조융자를 실시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