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상업중심지 두바이의 시티센터. 호화로운 이 건물은 달러를물쓰듯하는 부호들이 즐겨찾는 쇼핑센터다. 건물에 걸맞게 이곳엔고급시계들이 즐비하다. 시계의 명품이라는 롤렉스 오메가 론진 라도 등. 이곳에 진열된 시계중에 「엘베」와 「튤립」도 눈에 띈다.엘베는 1천5백달러, 튤립은 8백달러에 이른다. 오메가 라도 론진에 버금가는 가격이다.손이 크기로 이름난 중동의 부자들은 엘베와 튤립을 불티나게 사간다. 금 다이아몬드 텅스텐 세라믹을 가공해 만들어 보석에 가까운데다 예술성도 뛰어나기 때문. 시계의 본고장 스위스 취리히의 시계전문 상점에도 엘베와 튤립이 전시돼 있다. 모스크바 크레믈린광장의 굼백화점과 미국의 시계·보석체인점인 해밀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이들 시계는 한국의 (주)로만손이 만드는 제품이다. 로만손은 국내보다 해외에 더 잘 알려진 시계업체다. 작년 수출액이 1천8백만달러, 올핸 2천5백만달러를 계획하고 있다. 수출지역은 60개국에 이른다. 내수판매를 포함한 매출은 작년 2백98억원, 올해목표는 4백억원.국내 시계업체들이 경쟁력을 잃고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창업한지불과 10년밖에 안된 로만손이 이같이 급성장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로만손을 창업한 김기문사장(43)은 충북대 축산학과를 중퇴한 뒤솔로몬시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시계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된다. 영업이사를 끝으로 퇴사한 그는 88년 6명의 직원으로 서울송파에서 로만손을 창업했다. 로만손은 스위스에 있는 작은 도시이름. 어차피 시계분야에 뛰어 들었으면 스위스제품과 같은 세계적인명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집념이 배어있는 이름이다.부푼 꿈을 갖고 창업했지만 처음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타사와마찬가지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타깃은 일본시장. 하지만 일본 바이어들은 채산성을 이유로 수입선을 대만 중국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생산된 제품은 재고로 쌓였다. 몇달동안 자금난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는 굳은결심을 하게 된다. 생산자가 주문자에 이끌려 다녀선 결국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문제는 어떻게 브랜드를 알리고 시장을 뚫느냐 하는 것. 중소기업이 자기브랜드로 수출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5달러에서 1백달러까지 ‘스텝바이스텝’김사장에겐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고려무역이 주관하는 두바이 한국물산전에 참가할 기회를 얻은 것. 첫 일주일간의 전시기간중 바이어를 안내하고 정성껏 상담을 벌였지만 한건의 계약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바이어들은 도대체 한국에서도 시계를 만드느냐면서 의아심을 나타내는 정도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동안 국내업체들이 주문자상표로 선진국에 얼굴없는 수출을 하다보니 중동바이어로선 한국이 시계생산국인지 알수 없었던 것. 낙담한채 귀국한 그에게 한달 뒤 중동바이어 한명이 찾아왔다. 원래 그 바이어는 한국과전자제품을 거래하는 사람이었는데 두바이물산전을 참관한 시계바이어를 통해 카탈로그를 얻었던 것. 상담끝에 개당 15달러 수준의저가품 3만달러어치의 주문를 받았다. 이게 자기상표로 내보낸 첫수출품이었다. 바이어는 중동지역에서 반응이 괜찮다면서 두달 후후속주문을 냈다. 이후 자기와 공동으로 중동인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하자고 제의했다. 이후 30달러짜리 중급품을 거쳐 40달러, 50달러, 1백달러짜리도 주문했다. 스텝바이스텝으로 품질과 디자인을 고급화했고 이 전략이 맞아떨어졌다.광고는 국가별 특성을 감안, 전문지 기내지 등 돈이 많이 안들면서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매체를 선정, 집중 투자했다. 예컨대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중동은 비행기가 주된 교통수단이다. 따라서 기내지가 가장 광고효과가 컸다. 이곳의 아랍에미리트항공등의 기내지에 광고를 통해 상류층을 사로잡았다. 시계는 디자인이생명이라고 판단, 디자인 개발에도 과감히 투자했다. 미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 8명과 스위스의 객원디자이너 1명을 확보, 중점적으로 디자인을 개발했다. 1년에 2백여개의 새로운 모델을내놓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브랜드인 로만손은 부르기쉽고 친근감이 있어 주문을 따내는데 한몫을 했다.해외전시회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파한김사장은 1년에 서너차례 전시회에 출품했다. 스스로 1년중 3분의2를 해외출장으로 보내며 주문확보에 직접 나섰다.로만손이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것은 세계 최초로 커팅글라스 기술을개발하면서부터. 귀금속 보석에만 적용되던 커팅글라스 기술을 손목시계에 응용했다. 시계유리 표면을 각이 지게 깎는 기술이다. 이기술로 만든 시계는 중동 유럽 미국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보석처럼 영롱한 빛깔에 매료된 바이어들의 주문이 끊이질않았다. 일부 바이어들은 한국을 방문, 호텔방을 잡아놓고 며칠씩김사장과의 면담을 기다리기도 했다.◆ 커팅글라스 기술 응용, 도약 계기 마련하지만 호황은 오래 가질 못했다. 1년 뒤 홍콩 대만에서 유사품이쏟아져 나왔던 것. 김사장은 제품을 개발해 수출하는데 정신이 없었지 의장등록과 같은 지적소유권 관리에는 미처 신경을 쓸 틈이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신제품개발땐 반드시 의장등록을 실시했고상표도 1백여개국에 등록했다. 아울러 새로운 디자인의 후속제품을잇따라 내놓아야 앞서갈 수 있다고 판단,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순금코인을 이용한 코인다이얼 시계가 한 예다. 이 제품은 스위스제품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들었다.제품이 좋으면 누구보다 바이어들이 먼저 알아보는 법. 수출이 92년 5백만달러에서 96년 1천만달러로 느는 등 해마다 증가했다. 해외시장 개척에 자신감을 느낀 김사장은 본격적인 세계화에 나선다.전략은 1국1바이어체제. 전시회에 출품해 첫거래를 한 바이어를 해당국의 에이전트로 선정, 판매독점권을 주는 방식이다. 판매를 지원하기 위해 광고와 홍보를 도와주며 그들이 해당국가에서 충분히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대신 판매목표를 설정, 이를 달성하면 수출단가 인하와 광고판촉비 인하 등 각종 혜택을 주지만 달성하지 못할 때에는 미련없이 바이어를 교체했다. 우량 바이어 중심으로 영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또 현지 바이어를 통해 고객의 요구사항과 불만사항을 빠짐없이 수집, 디자인과 품질 가격에 반영했다. 세계시장 동향과 유수 시계업체들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등 정보망으로도 활용했다.우량 바이어는 매년 9월 열리는 홍콩전시회에 초청, 바이어 스스로세계 디자인의 변화를 체험토록 하고 있다. 이같은 전략이 적중, 바이어들은 한가족처럼 발벗고 시장개척에 나서고 있다. 김사장의 꿈은 로만손을 롤렉스 오메가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육성하는 것. 이 꿈이 멀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