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가 우승한 것은 국가적으로나 골프업계로서나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박세리의 우승으로 한국의 골프산업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입니다. 국내 경제상황도 안 좋지만 과중한 세금부담이나 사치성 스포츠라는 인식과 고율의 세금 등과 같은 장애물들이 골프산업의 발전을 막는 한 골프산업의 앞날이 낙관적일 수 없습니다.』국내 굴지의 스포츠용품업체에서 골프업무를 총괄하는 한 이사의말이다. 박세리의 LPGA우승 후 골프에 대한 인식의 호전과 더불어국내 골프산업이 한단계 발전할 계기를 잡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르다.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단 기대」로 말을 시작하지만 「그러나」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골프가 커다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대접받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세금을 비롯한 각종 장벽이 높은데다 일반인들의 의식이 전환되지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골프장지난 97년말 국내 회원제 골프장은 모두 92개. 퍼블릭골프장 21개를 포함하면 모두 1백13개에 이른다. 지난해 골프장을 이용한 사람은 모두 9백85만명. 이용횟수를 감안하면 2백50여만명이 골퍼라는게 골프장업계의 말이다. 내장객수만으로는 우리나라 전체인구의21%를 차지하는 인원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96년에비해 15.6%의 성장세를 보였다. 골프가 대중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골프장당(18홀 기준)내장객수는 7만5천∼8만5천여명으로 역시 96년에 비해 4천여명 정도가 늘었다.이러한 골프장내장객의 증가는 바로 부킹난으로 이어졌다. 부킹난은 두가지 현상을 가져왔다. 우선 국내골퍼들의 해외원정을 자극해골프망국론이 다시 거론되는 계기가 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골프를즐기려는 해외골퍼들의 발길을 줄어들게 만들었다.그러나 경기침체와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속에서도 기업들이「(골프장)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던 골프장도 지금 IMF한파에 극심한 위기감에 빠져 있다.『모기업의 부도나 경영위기로 이미 25개의 골프장이 매물로 나와있다』는 것이 한국골프장사업협회 정옥환 홍보과장의 말이다. 신설골프장의 경우에도 건설을 중단한 골프장들이 흉물스럽게 몰골을내비치며 법정준공기간의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회원권도 절반 값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최대의 위기」라는 말이 골프장업계에서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비록 최근 정부에서 골프장내 숙박시설설치 허용, 골프장에 대한여신규제완화, 외국인의 골프장 직접투자 허용, 외국인회원수 제한폐지 등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약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의문을 갖고 있다. 「빛좋은 개살구」라는 것이다. 과도한 세금부담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에서 나오는 분석이다. 골프장사업협회의정과장은 『외국인이 골프장을 취득하는 경우 일반세율에 비해 종토세의 경우 17∼50배, 재산세는 17배, 취득세는 7.5배나 높은데누가 그런 세금을 물고 골프장에 투자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일반세율만 적용해도 골프장이 외자유치는 물론 관련산업에 적잖은파급효과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 정과장의 말이다.●골프클럽현재 자체브랜드로 골프클럽을 생산하는 업체로는 코오롱상사 나이센 코텍 데이비드 랭스필드 반도골프 한국월드스포츠 명광 명성 등이 있다. 이들은 최대 4천억원대로 추정되는 국내골프클럽시장을놓고 외국업체들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국내 클럽제조업체들은 일단 박세리쾌거로 가격과 품질을 앞세워 수요자들의손길을 당길 기회라며 기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나이센의 김완기사장은 『박세리의 우승은 국내골프계에 유무형의 막대한 효과를가져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코오롱상사 골프사업부 백덕현이사도 『골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이러한 기대감은 곧 다양한 제품구성과 판촉전략 등의 발빠른 대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맥켄리골프채로 최근 국내 골퍼사이에 큰 관심을 모은 코텍의 김명식사장은 『국내 최초로 헤드까지 양산하는기술력을 바탕으로 쥬니어골프시장을 겨냥해 이달 중에45만원대(가방 포함)의 주니어클럽세트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코오롱상사의 경우 수요자의 체형과 체력조건을 감한한 오더메이드(주문자요구에 맞춘 생산)로 특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백이사는 『주니어시장의 확대를 겨냥해 기존에 월 1백50세트씩 생산하던주니어세트인 씽씽을 월 3백세트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백이사는또 『지금 US오픈파이널예선을 앞두고 있는 테드 오와 계약을 맺은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엘로드제품을 홍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나이센의 김완기사장은 『이미 국내프로골퍼들의 50% 이상이국산클럽을 사용할 정도로 품질이 인정된만큼 계속 품질 A/S 등 철저한 고객관리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러한 클럽제작업체들과 달리 막상 클럽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들 사이에서는 「아직은」이라며 부정적인 분위기다. 국내 골퍼들의 외국산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 이유다. 품질은문제가 아니고 오직 브랜드와 외국산이라는 두가지만을 중요하게여긴다는 것이다. 그런 소비자의 벽을 넘지못해 국제상사의 경우2년전에 아예 프로메이트상표로 제작·판매하던 골프클럽사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아직도 「남에게 보여주는 골프」를 하려는 골퍼들이 너무 많아 국산클럽을 제작·판매해 수익을 맞추기가 불가능했다』는 것이 프로메이트사업부 용산직영점 홍대길소장의 말이다.삼성플라자 태평로점 베네스트골프숍의 박노준점장은 『국산클럽이샤프트 등에서는 외국산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하지만 1백만원대국산클럽을 고객에게 권하면 화를 내거나 안 산다. 굳이 2백만원대의 외제를 달라고 한다. 이게 바로 국산클럽발전의 장애물』이라고말했다. 수요자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게다가 지나치게 높은 세금부담으로 국산과 외국산의 가격차가 줄어든만큼 국산클럽이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클럽제작업체의 사장은 『클럽가격의 56.2%가 세금』이라며 『지나친 고율의 세금이 결국 블랙마켓 형성과 탈세, 밀수 등의 부작용을 조장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골프클럽에붙는 각종 세금들이 국산채의 경쟁력을 뒤처지게 만든다는 것이다.●골프의류·용품최대 7천억원대로 추정되는 골프의류시장에서도 박세리효과가 클것이라는 것이 골프의류업계에서 나오는 기대다. 국제상사 프로메이트사업팀의 이병철대리는 『7천억원대의 시장을 놓고 골프의류를표방한 제품을 만드는 60여개사가 경쟁중』이라며 『지금 소비심리위축으로 시장이 많이 축소됐지만 골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면 앞으로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의 경우 박세리의 옷과 모자 등에 자사골프브랜드인 아스트라상표를 부착하지못했던 점을 감안해 삼성로고를 붙였던 자리에 아스트라상표를 부착시킨 의류를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골프공 제조업체들의 기대도 크다. 최근「빅야드」라는 상표의 골프공을 생산해 국내외로부터 호평을 받고있는 흥아타이어주식회사 해외영업부 황철헌부장은 『아직 구체적으로 성사된 것은 없지만 지금 많은 수출상담이 오가고 있어 앞으로 많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골프클럽 제조업체 랭스필드지난 18일 새벽 박세리선수가 미국 맥도널드 LPGA대회에서 우승퍼팅을 성공시키는 순간 랭스필드 양정무 사장(39·사진)은 각오를새롭게 다졌다. 나이어린 박선수가 세계여자골프 4대 메이저대회중 하나인 이 대회에서 우승, 한국골프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만큼 이를 한국골프산업중흥으로 이어가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몫이기 때문.『국산 골프채는 외제에 비해 품질이 전혀 뒤떨어지지 않음에도 지명도에 밀려 국내외 골퍼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온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박선수의 우승을 계기로 국산브랜드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겠지요.』양사장은 박선수의 우승를 극대화하는 것은 수출확대밖에 없다며해외마케팅을 보다 강화, 한국 골프산업의 위상을 제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세리 우승효과」를 「랭스필드의 세계화」로 이어가겠다는 복안이다.양사장은 이에대해 자신이 있다. 박세리가 맥도널드 LPGA대회에서우승, 「한국 골프의 살아있음」을 전세계에 과시한데다 랭스필드의 품질 또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양사장은 올해 수출목표를 수정했다. 당초 수출목표는 3백만달러로 잡았으나 박세리선수 우승이후 2백만달러를 늘려 수출목표액을 5백만달러로 책정했다.랭스필드의 수출목표는 과욕이 아니다. 박세리 우승직후인 20일 미국사이판에 거주하는 바이어가 1만6천달러어치를 사갔다. 이 바이어는 현재 양사장에게 백지수표를 맡겨놓고 주문만 하면 언제든지골프클럽을 보내달라고 부탁해놓은 상태다. 이외에 프랑스 중국 미국 등 해외현지법인 및 지사에서 수출상담이 부쩍 늘어 수출목표달성 전망은 밝다.랭스필드의 자랑은 다른 업체와는 달리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이아닌 고유브랜드 수출이라는 점이다. 품질에 자신이 있어 외국바이어가 OEM방식을 요구해도 이를 거절했다. 이 영업방식을 창업이후고수하고 있다. 한때 유럽에 수출되는 골프클럽에 태극 마크를 새겨넣고 회사브랜드를 떼어내지 못하도록 스티커가 아닌 골프클럽샤프트에 인쇄한 것은 랭스필드의 자신감이 어느정도인지를 잘 반영한다.양사장은 박세리우승을 계기로 골프꿈나무 육성도 적극적으로 나설계획이다. 모공중파방송과 공동으로 주니어대회를 오는 9월경 개최한다는 방침 아래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중이다. 국산클럽의 우수성을 어린 선수들에게 알리고 「제2의 박세리」를 조기 발굴, 육성하기 위해서다.『한마디로 박세리는 골프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양사장은 한국골프채의 우수성을 다시한번알리기 위해 오는 6월말경 해외출장에 나선다.◆ 일본인들도 '세리 붐'지난 2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자리잡은 골프매장. 조용하던 매장이 갑자기 들썩거렸다. 여러 사람들이 떼를 지어 골프매장으로 몰렸다. 서로 먼저 사겠다는 통에 작은 소란도 생겼다.모두 일본인들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기획상품으로 내놓은20세트의 레드베터 골프레슨 비디오테이프는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박세리가 LPGA에서 우승한 것을 아는 일본인들이 박세리를지도한 사람의 교육내용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라는 말에 10만원의고가임에도 순식간에 「싹쓸이」했다』는게 매장을 운영하는(주)개런티골프 현윤재과장의 말이다.지난 21일 오후 중구 태평로에 자리잡은 삼성플라자 태평로점의 베네스트골프숍. 박세리의 우승후 골프클럽 특히 아동용 클럽에 대한문의전화가 몰렸다. 그러나 실제로 기대했던만큼의 판매는 생기지않았다. 바로 이웃한 아스트라매장도 『(박세리가 우승했다지만)오히려 평소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강성규점장의 말이다.그러나 의외로 삼성빌딩에 입주한 일본기업의 일본인 직원들로부터많은 관심과 문의가 베네스트골프숍으로 몰렸다. 박세리가 사용한클럽 등을 살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박세리가 LPGA에서 우승하자일본인들 사이에 박세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구매 행위도적극적이다. 전화문의만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박세리 관련상품을 바로 구입하고 정보를 더 얻으려고 묻는 등 열기가 훨씬 뜨거운 것 같다』는 것이 박노준점장의 말이다.한편 일본인들의 이러한 「박세리열기」에 대해 골프의류업체 한이사는 『이미 일본이 미국에 이은 골프강국으로 성장한데다 골프가 대중스포츠로 자리잡은 튼튼한 기반을 갖고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YS정권 5년간 압사직전까지 몰린데다 경제난 등으로 박세리우승을 내놓고 기뻐하기에도 아직 눈치를 볼정도로 위축된 국내 골프업계로서 골프선진국 일본인들의 그런 모습이마냥 부럽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