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초 퍼시스의 안성공장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허먼밀러의 아시아지역 마케팅책임자인 야마구치씨와 민인터내셔널의민영백사장이 그들. 허먼밀러는 세계 사무용가구시장에서 스틸케이스와 더불어 양대업체로 꼽히는 미국업체. 민인터내셔널은 국내 최고수준의 인테리어업체이면서 동시에 허먼밀러제품의 수입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이들이 퍼시스를 찾은데는 까닭이 있다. 허먼밀러는 자사제품이 전세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하는데 왜 한국시장에서만잘 팔리지 않는지 궁금했다. 민인터내셔널은 말로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직접 한국업체로 안내한 것이다. 야마구치씨는퍼시스를 방문한뒤 더이상 민인터내셔널을 닦달하지 않기로 했다.한국제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봤기 때문. 퍼시스의 품질수준은 세계 최고수준으로 자부해온 자사제품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반면 가격은 훨씬 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시장에서 격돌하는 자체가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퍼시스는 지난해 1천7백만달러어치의 사무용가구를 수출했다. 국내사무용가구 총수출의 46%에 이르는 것이다. 지역은 동남아 중동러시아 중남미등 약 30개국. 이들 제품은 전부 고유브랜드인 퍼시스로 나간다. 올들어선 숙원이던 선진국시장 진출에도 성공했다.일본 아다루사와 일본내 독점 판매계약을 체결했고 오스트리아에도수출을 시작했다. 선진시장 진출은 큰 의미를 갖는다. 퍼시스는 선진국시장에 함부로 진출하지 않고 때가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나섰다. 그 시기는 가격과 품질에서 스틸케이스와 허먼밀러를 압도할수 있는 때를 의미한다. 강태공이 하염없이 때를 기다리듯 창업후15년동안 기다려온 것이다.그동안 후진국시장을 공략한 결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케냐의 시티뱅크 납품건을 비롯, 지구촌 곳곳에서 이들업체와 경합을 벌이면서 수주하는 물량이 늘고 있어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퍼시스는 1국1바이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나라별로 전속수입권자를 선정, 시장을 관리한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광고나 판촉물등을지원하는 것도 없다. 스스로 한국브랜드인 퍼시스를 광고하고 판촉활동을 벌여 돈을 벌라는 전략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퍼시스제품을취급한다. 팔면 팔수록 수지맞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올해 수출은당초 2천2백만달러로 예상했으나 최근 수출추이를 감안할때 이를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퍼시스 창업주인 손동창 회장(50)은 경기공전을 졸업한 기술자출신의 경영인. 한샘에서 근무하다 83년 퍼시스를 창업했다. 그는최고경영자가 돼서도 쟁이출신답게 품질에 관한 것은 직접 챙긴다.지금도 자금 인사 투자와 경영전반은 전문경영인인 사장에게 맡기지만 제품개발과 품질에 관한 업무는 관장한다. 퍼시스가 국내 최대 사무용가구업체이면서 최대 가구수출업체로 자리잡은 원동력이기도 하다.그가 얼마나 품질을 꼼꼼히 챙기는지 말해주는 일화는 많다. 중동으로 사무용가구를 수출하던 80년대 후반 퍼시스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바이어의 클레임이 제기됐다. 일부제품의 모서리 접착부분이약간 떨어져 나간 것. 그는 바이어에게 사과하고 철저한 품질검사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를이행했다. 그런데 또다시 선적한 분에서 똑같은 문제가 생겼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일부 직원들 사이엔 바이어가 가격을 깎기위해 일부러 장난치는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한분야만 전념하는 일등정신 고수손회장은 생산라인을 처음부터 마지막 검품과정까지 샅샅이 훑었지만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며칠동안 퇴근도 안한채 직원들과 구수회의를 가졌다. 「혹시 운반중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컨테이너속에 특수온도계를 넣어 운반 전과정의 온도변화를 점검했다. 가구를 실은 컨테이너 속은 적도를 지나면서 섭씨 1백20도까지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접착제가 녹는 것을 발견했다. 그뒤 접착제를 내열성이 강한 것으로 모두 교체했다. 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추적해 해결한다는 집념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해준 것이다.그는 또 바이어와의 신뢰관계를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손해를 보더라도 바이어와 맺은 신의는 철저히 지킨다는게 철학이다.90년초 쿠웨이트로부터 주문을 받은 퍼시스는 대금을 먼저 받고 사무용가구를 선적했다. 배가 쿠웨이트로 향하던중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운송을 계속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 전쟁상태여서 굳이 바이어에게 제때 물품을 전달해주지 않아도 면책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손회장은 그 배를 제3국으로회항시킨 뒤 하역, 바이어에게 전달토록 했다. 이 과정에서 생긴창고비까지 퍼시스가 부담했다. 해당 바이어는 눈물어린 감사를 했고 그 후 대규모 주문으로 보은을 했다.퍼시스는 사무용가구를 처음 개발, 수출한 이래로 자기상표이외로는 내보내지 않았다. 세계 제일의 상표로 만들겠다는 의욕이 가득한 것이다.퍼시스의 성장은 탄탄한 재무구조와 과감한 연구개발투자에 의해밑받침되고 있다. 퍼시스는 92년이후 기업신용평가에서 6년연속 최고인 A1등급을 받았다. 또 낮은 부채비율(40%)과 금융비용부담률(0. 6%)로 지난해 능률협회의 상장기업분석에선 최우량기업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손회장 경영철학이 능력있는만큼만투자하고 오로지 사무가구 외길만 전념한다는 전략때문에 가능했다.『사업다각화에 대한 유혹도 많았지요. 하지만 한가지 분야에서 세계 일등을 하기도 힘든데 두가지를 할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가 말하는 전문화는 가구 한가지 품목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가구중에서도 사무용가구라는 더좁은 울타리에서의 전문화를 뜻한다.그런 측면에서 퍼시스의 성장은 종합가구업체들의 잇단 도산과 비교된다.또 손회장은 89년 가구연구소를 개설, 인체공학적 사무가구연구에노하우를 축적했다. 특히 홈오피스 모빌오피스등 새로운 사무환경변화를 미리 예측, 대비해 새로운 개념에 맞는 디자인과 소재 개발에 앞서 나갔다. 작년에는 신제품 「퍼즐」로 한국산업디자인 대상을 받기도 했다.지난해 사무가구 단일품목으로 사상 처음으로 1천억원의 매출을 돌파한 퍼시스는 올해는 재도약의 해로 다지고 있다. 안성에 대규모자동화라인을 준공, 올해는 여기서 나오는 첨단제품으로 해외시장공략에 더욱 적극 나설수 있을 것을 예상해서다. 이를 위해 수출부서를 확대 개편하는 한편 올들어 두차례에 걸쳐 신입사원을 뽑는등IMF로 위축된 타사와는 달리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다.(02)443-9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