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박세리의 우승의 뒷면을 들여다 봐야한다. 박세리가 지난번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만 해도 미국의 시각은 『어린 선수가참 기특하구나. 그래 우승할 수도 있지. 앞으로도 열심히 쳐 봐라』였다.그러나 이번 US여자오픈(2~5일)부터는 시각의 변화가 생겼다는느낌이다. 한번은 축하해줄 수도 있었지만 세계최고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도 튀니까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최종일 연장전에서 미국 갤러리들은 상대인 추아시리폰(미국)을 열렬히 응원했다. 그들은 아마추어인 추아시리폰이 프로인 박세리를 꺾어주길 원했고 미국인 선수가 한국인 선수를 이겨주길 원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흐름으로 볼수 있다. 관중은 재미를 원하고 약자가 이기길 원하며 미국인은 미국인이 이기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논리를 한국입장에 대입시키면 편향적 시각이 드러난다.박세리 우승후 미국언론들은 다음 사항들을 거론했다.△ 한국교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한 것은 지나친 국수주의 아닌가. △ 우승후 아버지 박준철씨가 그린으로 뛰어 들어간 것은 매너에 어긋난다. △ 박세리는 연장전 18번홀 세컨드샷을 할 때 지나치게 시간을 끌었다. 미국은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준다고 자랑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등한 기회를 준다고 해서 그들의시각도 동등하고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번 남자 US오픈때 콜린 몽고메리는 갤러리들의 야유에 무척이나 시달렸다. 이유는 그가지난해 유럽팀의 라이더컵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파3홀에서 몽고메리에게 『드라이버를 쳤느냐』고 야유할 정도였다.영국선수에게 그런식의 야유를 할 정도라면 아시아계 선수들에 대한 그들의 속마음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우승후의 쟁점에 관해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계방송사는 미국 NBC였다. 따라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 보든 모든TV화면이나 코멘트는 미국시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18홀 연장전이 선수모두의 싸움이 아니라 박과 추아시리폰 두사람만의 경쟁이었다는 점이다. 정규라운드와 단 두 선수만의 연장전은 성격이 아주 다를 수밖에 없다.앞에 거론한 쟁점들은 이상의 두가지 핵심을 전제로 접근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골프는 국가대항 아닌 개인운동인데 태극기를흔든 것은 너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선수가 우승하면 미국인들이 기뻐하고 스웨덴 선수가 우승하면 스웨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 한국인 갤러리들도 모든 갤러리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갤러리들이다. 그들이 태극기를 흔든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그들의 응원방식중 하나일 뿐이다. 몽고메리에 대한 미국갤러리들의 야유 행태를 감안하면 교포들의 태극기 흔들기는 마냥 점잖은응원이고 지극히 자연스런 응원이다.박세리는 연장전 중반까지 아주 고전했다. 그때 열살쯤 되는 교포여자아이 한명은 박세리가 홀을 옮길 때마다 『세리 언니 힘내세요』하며 진정 안타깝게 응원했다. 당시의 그런 장면은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로 동포애를 느끼게 했다. 태극기를 국수주의 운운하며비난하면 우승을 바라는 교포들의 순수함이 너무도 격하된다. 교포들이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한 우승장면에서 태극기를 흔든 것은한국인 시각이 아니라 세계인 시각에서 봐도 진정 자연스런 인간의감정표출이다. 또 당시 현장에서는 미국인들의 추아시리폰의 응원만이 두드러 졌을 뿐인데 태극기를 비난하면 미국인들의 추아시리폰 응원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지적할 수밖에 없다.◆ “매너운운 … 비난할 정도 절대 아니다”아버지의 우승후 행동도 보기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다를 수 있다.매스터즈나 US오픈에서 아마추어 매트 쿠처의 아버지(그는 쿠처의캐디를 한다)는 쿠처가 잘 할 때마다 두 손을 번쩍 드는 등 기쁨의 제스처를 숨기지 않았다. 또 메이저대회 아닌 일반 투어대회에서 아내나 아이들이 그린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박의우승상황에서는 앞팀도 없었고 뒤팀도 없었으며 스코어카드를 제출할 필요도 없었다. 더욱이 그때는 예의나 매너를 따지기 앞서 모든고난이 버디 퍼트하나로 끝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점잖게 상대선수와 악수부터 하는 것이 이제까지 보아 온 관행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한국골프사, 더 나아가서 세계골프사에도 유례가 없는 US여자오픈 우승순간에 아버지가 뛰어 들어간 것을 매너운운하며 비난할정도는 절대 아니다. 순서는 뒤바뀔 수도 있다. 상대선수 및 캐디와의 악수순서와 우승자 가족의 환희 순서가 뒤바뀐 것이 그렇게잘못됐는가. 잘못됐다고 하면 그건 다시 미국 시각에서의 평가일뿐이다. 만약 미국선수가 우승했고 미국선수 아버지가 그같은 감격적 장면을 연출했다면 별말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더욱이 우승후TV인터뷰도 그린 위에서 이뤄진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이밖에 18번홀에서의 「시간」도 두명 뿐인 연장전이라는 사실과그것도 일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US여자오픈 우승을 노렸던 상황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시간을 지나치게 끌었다면 경기위원이 벌타를 매길 수도 있다. 실제 이번대회에 리사 월터스는 슬로플레이로2벌타를 부과받기도 했다. 경기위원도 이해한 「시간」을 제삼자들이 왈가왈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미국 TV와 외신은 그들의 관점이고 쟁점도 「꼬집기」차원에 불과하다. 그들이 한국인 박세리의 메이저 연승을 우리만큼 기뻐할리는없다. 그런데도 그들의 코멘트와 기사를 한국의 일부 언론이나 식자들이 1백% 수용하며 쟁점화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골프가 무척이나 세련되고 매너 위주의 운동인 것 같아도 실은 그 모두가 인간의 상식에서 출발하는 운동이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기쁘거나 슬픈 감정을 가장 솔직하고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기 때문. 박세리 우승후의 여러 장면들도 그같은 상식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한국 언론에 대한 박세리의 태도는 사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기사를 쓰는 것은 큰 진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큰 진실은 생애 가장 어려운 경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고 꿈으로만 여겨졌던 역사적 성취를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좋은건 좋은 것이고 잘한건 잘한 것이다. 발전을 위한 지적이라는 미명하에 외국시각을 빌려 한국에서 박세리를 꼬집을 필요는 절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