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도원의 타락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타락한 수도원들을 오늘날의 수도원과 곧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아마도 거리가 한참있을 것이다. 또 모든 수도원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란 것은 항상 특별한 일들을 캐내는데 이력이 난 것이므로 필자가 말하는 사례들 역시 보통의 경우라기 보다는 특이한 경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하느님을 찬양하며 검소 질박하게 힘든 노동을 감내하며 살아가는오늘날의 수도원들에 대해 더이상 무슨 가타부타 말을 걸어보기라도 할 것인가. 그러나 10세기를 넘기면서 수도원들은 철저히 세속화되고 타락해 갔다. 아니 수도원이야말로 타락한 자들이 스며들기좋은 곳으로 변해갔다.이런 점들은 정치의 타락과도 같고 견제 없는 독재가 빚어내는 타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정신을 구제하는 규율들이 타락하게 되었을경우 어떤 육체의 타락이 오는지에 대해서는 더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점차 사제들이 축첩을 하게 되고 더욱 뻔뻔스러워져갔다.동성애가 기승을 부리고 어느 시기에는 교황이 사제들로부터 아예축첩세를 거뒀다. 그편이 관리하기에도 좋았고 돈을 긁어 모으기에도 좋았다. 수녀원은 그 자체로 은밀한 밀회의 장소가 되기도 했고아마 그때마다 수도사들은 돈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타락한 절간이나 다를 바 없었다. 많은 수도원들이 탈선을 조장하고 탈선을 중개하는 그런 장소로 변해갔고 스스로도 타락해 갔다. 어떤 수도원들은 남자와 여자들이 바글거렸고 이 숫자가 항상 균형을 맞춘 것도 아니었다.시골에서는 수도원이 사교의 장이 되기도 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고백성사를 할 때 반드시 촛불을 켜도록 하는 이상한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사제에게 지은 죄를 고백하는데 무슨 촛불을 켠다는 말인가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든 그랬다. 익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성적 타락과 방종을 교회교리에 결부시켜 조롱하곤했다.일탈이었다. 사람들은 남색을 수도원병이라고 불렀다. 결국 가열찬개혁을 부르고 말았지만 중세말기의 타락이란 것은 대개 종교라는허울을 쓴채 더욱 노골적으로 치러졌다. 이런 비난은 우리나라의불교와 절이 역사의 어느 한때 비난받았던 것과 비슷했다.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하고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 과연 누구냐는 식의 짓궂은 질문들은 항상 절간의 주변에 나도는 익살이기도 했다.절대적인 것을 기어이 타락시키고 마는 것은 사람들의 오랜 습관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순례행렬에는 종교를 가리지 않고 매춘부들이 동행했고 종교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교회 주변은 항상 유곽들이 들어찼다. 이런 상황들을 생각한다면 20세기는 놀라울 정도로도덕적인 세기가 된다. 우리 시대의 타락에 대해 너무 우울해 할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