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다니엘/베인 앤드 컴퍼니 수석부사장 초기 기독교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성문제와의 싸움은 어느 것보다도 심각한 것이었다. 이는 루터 개혁 과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루터는 성직자가 굳이 금욕의 맹세를 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옳은 일이었다. 루터가 보기에는 그런 허무맹랑한 맹세도 없었다. 교회는 온갖 종류의 금기사항들과 이에 부수하는 징벌에 관해복잡한 규정들을 두고 있었지만 인류를 정화하는데 아무런 효험이없었다.오히려 방해가 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일처의 건전한 관계를 장려했다. 사실 모든 것은 스스로가 지배적인 것이 되는 바로그 순간부터 타락한다는 것은 진리에 속했다. 기독교는 스스로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을 때 결국 천국의 것이라기 보다는 지상의 것이 되고 말았다. 성직자 매춘은 중세가 깊어갈수록 더욱 열광적인것이 되어갔다.전유럽의 성직자들이 로마에 모여들어 회의라도 할라치면 전유럽의창녀들이 뽀얗게 로마로 가는 길을 메웠다. 로마의 여관들과 여인숙들은 성직자들을 맞기 위한 매춘부들로 만원사례였다고 기록들은전하고 있다. 고급 창녀들은 아예 주교들과 일정한 기간을 두고 관계를 맺었다. 이런 이야기들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수녀원이야기며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더이상 긴 이야기가 필요도 없다. 일부 수도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수도원은 차라리상업조직이었다.수도원들이 보다 생산적이었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그것은잘 조직된 경쟁력이 있는 생산조직이었다. 무엇보다 수도원은 당시세계 경제질서로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생산단위였고 엄격한 노동규율의 적용을 받는 조직이었다. 초기 수도원을 건설한 성인들은 수도의 한 방법으로 수공업을 권장했다. 그것은 굳이 비교하자면 소림사 무술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수도원들은 점차 생산의 주체가 되었고 부를 축적해 갔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생산활동에 참가해 왔으나 시간이 가면서 노동력이 풍부하게 돼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경제를 형성하게 됐다. 이점이 수도원의 경쟁력을 가속화한 원인이기도 했다. 수도사들은 이제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일에 종사할 여력을 얻었고 수도원이 그토록 높은 철학과 과학의 산실이 되도록 했던 이유다.그러나 역시 여유가 있으면 타락하게 된다. 수도원이 부를 축적한결과 최고위층 수도사들부터 타락의 길로 들어섰고 이는 14세기를넘기면서 극에 달했다. 면죄부는 바로 그 극단의 표현 방법이었다.온갖 종류의 범죄에 대해 돈을 내면 사면이 되듯이 성적 범죄에 대해서도 이제 돈이면 해결됐다. 초기 교단에서 밤에 몽정을 하면 찬송가를 몇번씩 불러대도록 했던 것을 대신해 이제 간음을 하면 얼마, 간통을 하면 얼마하는 식의 면죄부가 팔려 나갔다. 기독교는이제 타락의 길로 들어섰다. 재미있는 것은 교리의 속화가 보여주는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예를들어 교회 가는 여자를 강간한 것보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여자를 강간하면 면죄부의 값이 더욱 비쌌다. 이유는 독자 여러분들이 한번 맞추어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