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안에 들어서면 용광로가 벌겋게 단 쇳물을 쉴새없이 토해낸다.화산폭발후 흘러내리는 용암의 물결같다. 이 쇳물은 구리와 아연이녹은 것. 섭씨 1천도가 넘을 정도로 뜨거워 열기가 후꾼 다가온다.쇳물은 냉각된뒤 롤러를 통해 납작하게 가공된다. 몇차례를 거듭하면 마치 종잇장처럼 얇고 평평한 황동코일이 만들어진다. 직육면체의 뭉툭한 동괴가 마침내 미끈한 몸매를 드러낸다.황동코일은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에 쓰이는 각종 커넥터를 비롯, 주전자 냄비 프라이팬 등 주방기기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금도금 은도금 등 각종 도금을 통해 얼굴을 화장한뒤 소비자를 만난다. 표면에 미세한 긁힘자국이라도 있거나 기포가 있으면 퇴짜를 맞는 것은말할 나위도 없다. 코일을 생산할 때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는 까닭이다.반월공단에 있는 이구산업(대표 손인국·50). 이 회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종업원 1백9명의 중소기업인데다 생산제품이 황동코일 동코일 등 산업용 소재여서 알려질 기회가 별로 없다. 하지만동종업계에선 꽤 유명하다. 동남아나 미주 유럽에서도 이 회사를모르는 기업이 별로 없다.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황동코일 제품의 표면 오차를 한국공업규격은 1백분의 1mm로 관리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는 1천분의 3mm 이하로 유지한다.그만큼 표면이 매끄럽다. 도금을 한뒤 멋진 작품이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전자부품 등 정밀성을 요구하는 부품을 만들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뿐만 아니라 첨단 광택기를 사용, 생산제품을 가공하기 쉽도록 광을 낸뒤 출하하고 있다.고품질 제품은 IMF 체제에 들어선뒤 위력을 나타냈다. 외환위기전만 해도 내수 주문이 몰려 수출에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내수시장이 침체되자 해외에서 활로를 뚫을 수밖에 없었다. 내수형업체가 수출에 나서려면 바이어 물색하랴 시장조사단 파견하랴정신없다. 그러나 이 회사는 황동코일을 다루는 몇몇 수입업체에연락을 하자 금세 주문이 몰려왔다. 지난해 6백10만달러를 실어냈다.IMF한파 속에서 단 한명의 직원도 줄이지 않고 매출 4백20억원에1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도 품질력이 밑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다.손사장이 품질에 유달리 신경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구산업은 부친인 손정환 회장(76)이 서울 화양동에서 창업한 업체. 초창기엔 수작업으로 황동판을 만들어 시계부품인 톱니바퀴 제조용으로 납품했다. 용산고와 경희대를 나와 무역업체에서 일하던 손사장은 74년 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는 생산제품의 20%에서 불량이 발생, 클레임 해결이 주된 일과이다시피 했다. 표면에 기포가있거나 압연작업중 롤러가 잘못 눌러 코일이 부분적으로 터진 것도생겼다. 수요업체들은 국산품의 품질을 믿지 못하겠다며 비싼 일본제품을 사다 썼다.그는 품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시장개척에 한계가 있을것으로 보고 과감하게 설비와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 기계 스스로 공차를 관리해 작업을 해나가는 AGC시스템을비롯해 독일과 일본에서 첨단설비를 대거 들여왔다. 우수인재를 뽑아 금속과학연구소를 설립, 물성과 품질연구를 시켰다. 80년대 초반에는 반월로 공장을 이전하고 설비를 과다하게 투자하면서 회사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자신의 아파트 등 재산을 처분, 회사에투입해 안정을 찾았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불량률이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품질이 안정된 것은 물론이다.83년 사장으로 취임한 뒤엔 그동안 경험을 살려 단단한 경영에 초점을 맞췄다. 창업이후 지속해온 소재산업에만 주력, 전문업체로키웠다. 지금은 황동코일 등 이 분야에 종사하는 10여개 업체중 풍산금속에 이어 2위를 달리는 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풍산이어 황동코일 업계 2위 지켜손사장의 내실경영은 무차입경영으로 이어진다. 운전자금은 은행차입없이 번 돈으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유동부채에 대한유동자산비율인 유동비율이 2백50%에 달할 정도로 단기부채보다현금 예금 등 유동성이 훨씬 풍부하다. 부채비율이 80% 이하일 정도로 재무구조가 안정적인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95년 상장후 회사로 들어온 자금 80억원을 전액 은행에 예금해 놓을 정도로 알뜰경영을 하고 있다. 당시 부동산투자나 신규사업 진출에 대한 유혹이 많았으나 손사장은 한우물경영을 내세우며 이를 뿌리쳤다.대신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등 연구개발로 승부를 걸고 있다. 반도체용 리드프레임 소재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한 것도 이런 노력에힘입은 것. 리드프레임은 반도체에 전기를 공급하는 도선(lead)역할과 반도체를 지탱해주는 골격(frame)역할을 수행한다. 전도율이 좋으면 강도가 떨어지고 강도를 높이면 전도율이 하락한다.이같은 모순을 6가지 금속을 섞은 6원합금으로 해결한 것. 전도율과 강도가 모두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한 것. 이 제품은 자체 금속과학연구소와 고려대 및 아주대와 산학협동에 의해 일궈낸성과. 기존의 리드프레임은 3원이나 4원합금이다. 이제 남은 일은반도체 바이어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내는 일. 바이어들은 반도체를주문하면서 리드프레임의 생산자를 지정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어 7원 합금계 리드프레임과 초고강도 황동판 개발에도 나서고있다. 7원합금계 리드프레임은 6원합금제품보다도 한발 앞선 것.초고강도 황동판은 스위치 커넥터 자동차부품 등에 사용되는 제품이다. 신제품 생산기술연구원이나 한국생산성본부와 협약을 맺어공동 개발하고 있다. 이밖에 아연용재의 재처리 및 재활용공정 건축소비재인 인공녹청의 개발작업도 진행중이다.이구산업은 IMF이후 훈풍을 맞고 있다. 원화 환율이 달러당 1천1백원만 돼도 수출경쟁력이 있다. 요즘 환율이 많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게다가 주요 원자재인 전기동값이 급속히 하락한 것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t당 2천3백달러에서 1천4백달러로40%나 하락했다.『한눈 팔지 않고 내실경영에 힘써 굴지의 신동업체를 만드는게 꿈입니다.』손사장은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동제품 수요가 늘고 특히 고급제품을 찾는 발길이 잦아진다고 소개한다. 고급품 수요를 충족시키는것은 물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전문 기업으로 다져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또 외형보다는 알짜배기 기업을 만드는데 정성을 쏟겠다고 다짐한다. (02)869-2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