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개 체위서술, 설명서보다는 문학작품에 가까워
봄의 관능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노곤하게 만든다. 완전한 정교 후의 신체상태는 아마도 봄이 주는 이미지와 비슷할 것이다. 불행히도 정교를 가진 후 다소는 흐트러져 있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그림은 흔치 않다.그림으로 옮겨내기가 어려워서일까. 이런 풍경화는 나중에 모두 영화로 재연됐다. 영화 속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올리고 담배를 피워무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정교의 진득한 후렴부에 속한다. 사실 정교의 방법론에 대한 자세하고도 정밀한 토론들을 보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정교의 방법론을 그것의 실제 진행과정에 비겨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수 있다.소녀경도 그렇거니와 카마수트라도 모두 64개의 대표적인 정교체위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이 단계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의도적으로 기술을 갈고 닦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종류의 특별한 직업이 있었다. 궁정의 후궁들은 대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고 전문적으로 몸을 팔아 먹고사는 사람이나 예술기녀들이 모두 이런 부류에 속한다.이런 계급은 사실 현대에 와서 거의 모두 사라졌다. 그런면에서 현대는 오히려 성기술의 후퇴가 진행중이다. 전문적으로 갈고 닦아본들 돈이 되지는 않는다. 중산층이라고 불리는 현대의 주류 대중들은 일부일처제의 청교도적 생할의 기본틀을 유지하고 산다. 홍등가와 거리구분도 없을만큼 번져 나간 현대의 도시 뒷골목들은 엄청난 성의 범람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그것은 깊이라기 보다는 양적인 팽창만을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천박한 성일 뿐 그것이 성기술의 세련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독자들이 길고긴 카마수트라의 정밀하기 짝이 없는 정교 방법론을 읽다보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이 방법론들이 현실성이 있는 것인가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체위들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주장들이 중국까지 건너오면 더욱 심각하다. 『기러기가 강가 모래톱에 내려앉는 듯이…』라고 나가면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카마수트라도 어느정도는 이에 가깝다. 그래서 64개 체위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은 기술에 대한 설명서라기 보다는 차라리 문학작품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꽃이 핀듯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는 사설은 남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자가 허리 아래 베개를 받치고 있는 장면을 설명하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완전 삽입이 된다거나 저렇게 하면 만족이 고조된다는 등의 설명은 단순히 지시문을 따른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