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끌리오 / 320쪽 / 1만원

올해 들어 「시간」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새천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시간의 철학적 의미는 무엇이고, 다가올 2천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동양과 서양에서 말하는 시간은 어떻게 다를까. 일각에서 말하는 시간의 종말은 실제로 다가오고 있는가.이 책은 2천년과 그 의미, 그리고 시간을 둘러싼 모든 의문들에 질문하고 답한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이며 고생물학자인 스티브 제이굴드 교수,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이자 사상가인 장 들뤼모, 프랑스 최고의 동양학자이며 시나리오 작가인 잘 클로드 키리에르, 그리고 볼로냐대 석좌교수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 등이 철학적인 동시에 과학적이고, 종교적인 동시에 세속적인 다양한 문제들을 제시한다. 책은 위의 4명이 시간, 밀레니엄, 종말이라는 주제 아래 기자들과 나눈 대담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먼저 스티브 제이굴드는 사회와 생명을 지배하는 시간의 크기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특히 그는 시간과 관련된 종말론과 책력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주장을 편다. 무엇보다 그는 2천년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비록 특별한 해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책력의 역사에서 비롯됐고, 책력은 바로 인간들의 약속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그렇지만 책력의 역사에 대해서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세기와 천년이라는 개념은 물리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주기라는 것이다. 단지 일정한 규칙성에 기대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적 필요와 <요한게시록 designtimesp=18207>에 근거한 종말론적 신앙에 의해 사용하게 된 인위적인 개념이라는 얘기다.장 들뤼모는 <요한게시록 designtimesp=18210>의 재해석에 많은 비중은 두며 현대인들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 혹은 종말에의 기다림에 관한 역사적 의미를 평가한다. 특히 그는 「시간의 종말」이라는 개념은 성서에서 「역사적 종말」이라 표현되는 개념과 동일한 의미라며 <요한게시록 designtimesp=18211>은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주기보다는 새로운 천년을 위한 위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씌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천년에 대한 공포라는 신화가 탄생한 것은 15세기 말 독일의 인문주의자 트리데미우스가 중세 시대를 두려움의 시대라 표현하며 그 두려움 가운데 하나로 천년에 대한 두려움을 언급하면서부터라고 설명한다.잘 클로드 키리에르는 동양인들이 갖고 있는 순환적인 시간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시간의 시작과 종말이란 성서의 직선적인 시간관에서 비롯된 개념일 뿐이며 다른 의미는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언급한다.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의식을 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라며 그때부터 시간 속에 정착해 역사라는 개념이 생겼다는 설명이다.마지막으로 움베르토 에코는 새천년의 도래가 특정분야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증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각에서 불안감을 보이는 것은 특정 세력에 의해 조장됐을 뿐이며 역사적으로 천년에 대한 공포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저 밀레니엄 버그라 불리는 컴퓨터상의 오류가 발생할 뿐이며 일반 사람들은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또한 에코는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은 죽기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과 연결된 일종의 착각이라며 세상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세상 자체가 죽기 마련이라는 뜻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그는 시간의 종말에 대해 질문하지 말고 다가오는 세번째 천년에 대해 준비하자고 제안하면서 말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