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나타난 변화 중의 하나라면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 부쩍 늘었다는 점일 것이다. 자산 가치 하락으로 싼 값에 한국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는 매력으로 인해 외국 기업들의 국내 진출이 줄을 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외국인 직접 투자는 69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6.4%가 증가했다. IMF 이후 또다른 변화로는 외국인 투자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외국 기업에 대한 편견이나 거부감이 상당 부분 누그러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외국 자본이 유입돼야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외국 기업을 보는 국내 시각은 상당히 호의적으로 바뀌었다.이런 분위기를 타고 외국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국내 기업으로서는 외국 기업과 한판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그러나 현재의 구도를 「외국 기업 대 국내 기업」의 대결 구도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세계가 한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경쟁에 국경이 없어지는 글로벌 시대에 외국 기업, 국내 기업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원도 『국내 소비자들도 이제는 품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더 중시하지 국내 기업이냐 외국 기업이냐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에따라 외국 기업의 진출 확대를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 계기로 삼고자 하는 긍정적인 태도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그렇다면 외국 기업들은 주로 어떤 전략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한 손엔 「세계화」라는 방패를, 다른 한 손엔 「현지화」라는 무기를 들고 싸운다고 할 수 있다.국내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외국 기업들은 대다수가 전세계 각지에 진출해 있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즉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영 관행을 갖추고 있다. 경영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란 세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수익 위주의 재무 구조와 효율적인 경영 프로세스이다. 볼보코리아에 인수된 삼성중공업, 후지제록스에 인수된 코리아제록스, 미국계 종자회사인 세미니스에 인수된 흥농종묘 등 외국 기업에 인수된 국내 기업들은 거의 예외없이 재무 구조가 개선됐다.◆ 마케팅 기능을 생존 핵심 요소로 활용경영 프로세스면에서도 효율성이 증가했다. 대표적인 예로 볼보코리아가 삼성중공업을 인수해 탄생한 볼보건설코리아의 경우 보고서 작성을 줄여 결재 과정을 축소하고 임원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규정, 서로에 대해 간섭하지 않게 함으로써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했다.코리아 제록스의 경우 직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되던 경영 정보를 모든 직원에게 공개, 지식을 전직원이 공유할 수 있게 하고 의사 결정 단계도 기존의 7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했다.글로벌 스탠더드의 두 번째 특징은 능력에 기반한 성과급제다. 외국 기업들은 정리 해고나 인력 조정을 자유롭게 감행한다는 편견과 달리 오히려 국내 기업보다 더 신중한 경우가 많다. 인원을 정리할 때도 철저한 실적 평가를 근거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외국 기업들은 국내 기업을 인수한 직후에 섣불리 인원 정리를 시도하지 않았다. 국내 여론을 의식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직원들을 평가할만한 충분한 시간과 근거가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진 기업은 인원 정리보다는 성과급제 도입을 서두르는 경우가 더 많다. 성과급제를 통해 실적을 중시하는 경영 관행을 구축하고 근로 의욕을 자극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흥농종묘의 경우에도 현재 1백% 연공서열에 의한 급여체계를 4년후에는 완전 능력급제로 바꿀 계획이다.셋째, 선진 기업들은 마케팅 기능을 회사의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로 활용한다. 수십년간 국내 기업들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초과 수요 시대를 누려왔다. 상품은 만들기만 하면 팔렸고 별다른 마케팅 노력을 기울일 필요조차 없었다. 이에 비해 선진 기업들은 기업간의 자유로운 경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공급 초과 시대에 대비해올 수 있었고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개발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오래전부터 국내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코카콜라나 P&G 등은 세계적으로 마케팅에 강한 기업들로 유명하다. 이들 선진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브랜드를 중시하고 △목표 고객에 맞춰 판촉 전략을 세우며 △마케팅의 효과를 분석, 새로운 전략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 마케팅 전략의 기본에는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기본 원칙이 깔려 있다.◆ 현지화도 성공 밑거름그러나 외국 기업들은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만을 가지고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성공 요인에는 항상 「현지화」 전략이 따라붙는다. 선진 기업들은 어떤 특정 지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시장과 소비자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현지화를 위해 선진 기업들은 해당 지역에 나름대로의 유통망을 구축하고 소비자와 친밀해지기 위한 각종 광고 및 이벤트를 기획하며 언론을 통한 홍보 활동을 시도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지역에 맞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일례로 월마트는 상품의 대부분을 진출 지역의 기업으로부터 공급받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이 원칙에 따라 국내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으로부터 전체 상품의 90% 가량을 공급받고 있다.선진 기업들의 국내 진출에 맞서 국내 기업이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이미 현지화된 국내 기업들은 토착 기업으로서 한국 시장과 소비자에 밝다는 장점에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덧입히는 것이다. 외국 기업들이 현지화에 노력하는 동안 국내 기업들은 세계화에 주력하는 것, 이 방법 뿐이다. 승부는 얼마나 잘 배우느냐하는 「질」과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 하는 「스피드」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인터뷰 / 다케시 이노우에 보스턴컨설팅그룹 일본 사무소 수석 부사장브랜드·주고객군 관리가 생존 핵심선진 기업들의 현대 마케팅 전략은 브랜드 관리(Brand Management)와 주요 고객군 관리(Key Account Management)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이 두가지 마케팅 전략은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영 환경에서 한 기업을 경쟁사와 구분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브랜드는 똑같은 품질의 상품에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마술」과도 같은 기능을 한다. 똑같은 운동화라도 나이키의 브랜드가 붙어 있느냐 아니면 무명의 무늬가 그려져 있느냐에 따라 가격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객은 어떤가. 이전에는 무차별적인 대중을 대상으로한 판매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업들은 주요 고객층이 누구인지를 파악, 그 고객층을 주로 관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즉 기업에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고객이 누구인가, 어떤 소비자층이 기업의 단골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은가 등을 파악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등장했다. 브랜드 관리와 기업의 주요 고객군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업이 얻는 결과가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마케팅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우선 브랜드 관리가 무엇인지부터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브랜드란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가진 제품과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겠다는 고객에 대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가 좋다는 것은 소비자의 기대를 그 기업이 잘 충족시키고 있다는 의미이다.그렇다면 브랜드 관리란 무엇인가. 소비자가 그 브랜드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어느 정도의 품질과 가격 서비스 이미지 등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계속 향상시켜 나간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소니」라는 브랜드에 대해 들을 때 소비자들은 일정한 품질과 서비스, 이미지 등을 상상한다. 소니라는 브랜드를 잘 관리한다는 의미는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접했을 때 갖게 되는 이런 기대를 품질과 서비스 광고 이벤트 유통망 등을 통해 유지시켜 나간다는 의미다.브랜드 관리에서 선진 기업들의 최근 추세는 브랜드 매니저라는 전문가를 두고 이들에게 새로운 상품 개발, 포장 변경, 광고, 유통망 관리, 이벤트 기획 등 해당 브랜드에 관한한 모든 책임을 일임함으로써 일관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브랜드 관리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기업과 상품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다음으로 주요 고객군 관리에 대해 알아보자. 주요 고객군 관리란 「모든 고객이 동일하게 회사의 성과에 기여하고 있지는 않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각 고객들이 한 기업에 기여하는 성과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성과를 많이 창출해주는 고객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경우 똑같은 자원으로 더 높은 효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선진 기업들은 고객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어떤 고객이 기업에 어느 정도의 수익을 가져다 주는지 분석, 서로 비슷한 고객끼리 한 고객군으로 묶어 고객군별로 관리하고 있다. 선진 기업들은 주요 고객군만을 전담하는 조직을 운영, 이들 고객의 개별적인 필요를 해결함으로써 고객 관리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예를 들어 씨티은행의 경우 「씨티 골드 센터」를 통해 고소득층 고객을 따로 관리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이란 것도 결국은 소비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요 고객군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