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타, 도전의식 부족ㆍ세습문제 등 위기 봉착 ... 창업주 경영법 소화 여부 주목

「마쓰시타(松下)」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창업주인마쓰시타 고노스케다. 그는 무학력에 머슴살이로 출발, 세계적인가전회사를 일궈냈다. 결핵으로 요양중이던 10대의 어린 나이에쌍소켓을 고안해냈다. 28세 때 자전거용 전지식라이트를 상품화,청년실업가로 변신한다. 29년의 공황 때는 사원을 한명도 정리하지 않았다. 급료를 한푼도 깎지 않았다. 감격한 사원들이 휴일을반납하면서 일을 했다. 2개월만에 재고가 정리됐다. 공장은 완전조업 상태로 되돌아왔다. 「불황은 곧 해고」라는 도식을 거부,새로운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존코터교수는 이를 「전대미문의 해결책」으로 평가했다.고노스케의 가전신화 창조는 지난 50년대 미국 출장에서 시작된다. 그는 『1개월 정도 미국에 갔다 온다』는 한마디를 남기고51년1월 훌쩍 일본을 떠난다. 그러나 2개월이 넘도록 돌아오지않았다. 한국전쟁 특수로 사원들이 정신이 없었다. 누구도 사장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고노스케사장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 생활은 한마디로 충격의 연속이었다. 「밤낮으로 전기가 켜져있다」 「TV가 가게마다 쌓여 있다」 「미국의 초임이일본 사장과 같다」등. 왜 이같은 차이가 나는가. 그는 밤새 고민한 끝에 「우선 철저하게 배우는 것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노스케사장은 귀국하자마자 네덜란드 필립스사와 기술 제휴를맺었다. 사원들에게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미국유럽을 따라잡는게 제일이다. 공부해야 한다. 열심히 배울 뿐』이라고 강조했다. 마쓰시타의 가전왕국 건설은 바로 이같은 발상에서 출발했다. 「고효율 대량생산 방식」으로 지난 60년 TV생산66만대를 기록했다. 냉장고는 23만대, 세탁기는 41만대에 이르렀다. 가전분야 정상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그는 61년 사위인 마쓰시타 마사케루 부사장에게 사장 자리를 넘겨주고 회장으로 물러났다. 그후에도 주요 현안에 대한 조언으로경영을 도왔다. 89년4월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자산은 3천5백억엔. 사상 최대 규모였다.고노스케회장은 가전왕국 마쓰시타를 건설했다. 일본형 경영시스템을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경영의 가미사마(神樣)로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에 관한한 신과 같은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영이념을 문서로 남겼다. 「강령」 「신조」 「마쓰시타전기의 준수정신」 등 3가지로 돼 있는이 문서는 「마쓰시타 헌법」으로 불린다. 마쓰시타가족은 매일 아침 사무실에서 창업주가 만든 헌법을 합창한다. 이를 헌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옛날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글로벌시대와 전후 최악의 불황에 대비, 헌법도현대풍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마쓰시타는 창업주가 금과옥조로 물려준 헌법을 새롭게 바꾸기로 했다. 물론첫 개정이다. 현재 진행중인 중기경영계획이 마무리되는2001년3월을 개정일로 잡고 있다.이뿐만 아니다. 고노스케회장의 창업이념의 하나였던 종신고용제를 뒷받침해온 퇴직금과 연공서열형 임금제에도 이미 손을 댔다.퇴직금을 급여에 포함시켜 미리 지급하고 있다. 퇴직금 선불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 제도로 신입사원의 경우 연간 8만엔에서최대 66만엔까지 더 받게 된다.4월부터는 부과장급 이상에 대해 연간 수입의 50%를 실적에 연동시키는 연봉제도 실시한다. 일반 사원들에 대해서도 능력급과성과급의 비율을 높일 예정이다. 고노스케류의 임금시스템을 더이상 고집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 셈이다.개혁 뿐만이 아니다. 경영 목표도 다시 내걸었다. 「발전하는 행동」에서 「고수익 기업으로의 발전」으로 바꿨다. 2000년도 연결매출과 세전이익의 목표를 5% 이상으로 잡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사업부 계열사란 벽을 뛰어넘는 「무리(群)경영」과 제품 생산 효율화를 선언했다.마쓰시타가 이처럼 변신을 시도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로 가다가는 적자기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 따른것이다. 올 3월 결산기의 매출과 세전이익은 각각 2.3%에 머물전망이다. 반도체 수요 부진으로 부품 부문의 실적이 급속 악화됐기 때문이다.그러나 더 심각한 원인은 다른데 있다. 창업주가 물려준 「부(負)의 유산」이 바로 그것이다. 고노스케식은 철저한 사업부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냉장고 세탁기 등 하드웨어쪽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사업부를 뛰어넘는 상품 개발도 부진했다.그래서 사업부를 합친 사업본부를 만들기도 했다. 사업부를 사장직속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사내 분사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조직의 관료화도 걸림돌이 되고있다. 마쓰시타그룹의 경영을 분석할 때 흥미있는 한가지 법칙을확인할 수 있다. 「계열사의 실적은 가도마(門眞)로 부터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게 바로 그것이다. 가도마는 오사카의 본사가 있는 곳. 따라서 본사에서 멀면 멀수록 실적이 좋다는 얘기다.◆ 고노스케 ‘부의 유산’ 처리가 과제요코하마의 마쓰시타통신은 휴대전화사업으로 모기업 실적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코쿠의 마쓰시타고토부키전자 또한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생산으로 98년3월기에 매출 5천34억엔에3백27억엔의 영업이익을 냈다.도전정신의 부족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64년 컴퓨터 개발에서 손을 뗐다. 국내 기업들이 결속, IBM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물러서고 말았다. 이로인해 컴퓨터분야 진출이 늦어졌다.「가미사마」도 컴퓨터가 급속 보급될지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도전정신의 부족으로 신규 사업 개척에 사실상 실패했다. 일부에서는 「머니(돈)시타전기」라고 비꼬기도 한다. 눈앞의 돈되는 사업에만 열중했다는 것이다.창업주의 후계 문제도 불씨로 남아 있다. 마쓰시타는 후계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야마시타 도시히토 상담역(전 사장)이 97년7월15일 오사카에서 열린 한 파티자리에서 세습에 대해 비판,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창업자의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부사장이 된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올해안에 합당한조치를 취하고 싶다』고 밝혔다. 창업주의 손자로 일찌감치 사장후보로 주목돼 온 마쓰시타 마사유키 부사장을 겨냥, 포문을 연것이다. 야마시타상담역이 합당한 조치 부분을 부정하면서 파문은 일단 가라앉았다.그러나 세습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여론은 한마디로 「노(No)」쪽이 우세하다. 언제 또다시 파고가몰아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마쓰시타의 과제는 고노스케 창업주가 남긴 이들 부의 유산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이다. 사원들은 『혁신적이면서 유연한 창업자의 정신을 잊어버리면 「타이타닉호」처럼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고노스케철학」의 계승이 바로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마쓰시타가 고노스케의 혼을 어떻게 소화시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