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서 '환경 파수꾼' 대변신 ... 생태계 연구ㆍ보호 앞장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에서 영월읍 거운리까지 장장 70리를 굽이쳐 흐르는 동강은 「첫번째 손님」을 반긴다. 그 손님이 누구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들어 그냥 지나치는 여행객이라도 괜찮고 연구차 우연히 들른 학자라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품고 있는 태고의 신비를 한번만 보여주고서도 영원한 「동강 지킴이」로 만들 자신이 있어서다.한상훈 한국자연환경과학정보연구센터대표(38)는 동강의 이런 수법에 넘어간 대표적인 사람이다. 농학박사로서 한국 포유동물연구의 권위자인 그가 동강을 처음 찾은 것은 지난해 4월. 환경부 자연보전국 생태조사단 팀장으로서 수자원공사가 마련한 영월댐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감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라져가는 국내 포유동물생태 연구를 위해 전국 산하를 누빈 그였지만 동강 방문은 이때가 처음이었다.『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태초의 비경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더군요. 막연히 동강에 댐을 만들면 안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현장에 가보니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습니다.』수자원공사 영월댐 환경영향평가의 잘못된 점을 낱낱이 지적한 그는 동강에서 돌아온 뒤 환경부에 사표를 냈다.「동강지킴이」가 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라는 신분은 부적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자연보전국 생태조사단 팀장으로서 영월댐건설의 부당성을 지적했으나 건설부등 관련부처 협의과정에서 묵살된 것도 그의 결단을 부추겼다.그런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강탐험에 나섰다. 평균 일주일에 한번 꼴로 동강을 찾았고 올 들어서도 이런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탐험주제는 전공을 살려 동강유역에 서식하는 동물생태조사로 정했다.탐험에 나선지 9개월만인 올해 2월말. 한 대표는 동강이 생태계의 보고임을 입증하는 희귀동물 발견에 성공했다. 중국 만주일대 및 북한등 북방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무산흰족제비와 북방토끼가 백룡동굴부근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그래서 그는 올들어 더 열심히 동강을 찾고 있다. 이 유역에 산재해 있는 2백60여개에 달하는 동굴조사가 그의 2차 동강 탐험 주제다. 사전조사를 해본 결과 몇몇 동굴에서 빙하기시대 동물화석과 박쥐무덤이 발견되는등 지적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한 대표의 동강지킴이 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동굴탐험사진가인 석동일씨, 서울대 지질학과 김수진교수 등 몇몇 뜻이 맞는 사람들과 지난 5월 「동강자연학교」(교장 서울대 김수진교수)도 개설, 청소년들에게 동강의 가치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가 돈과는 인연이 먼 학문을 선택하고 환경보호 운동에 뛰어들게 된데는 부친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낚시가 취미로 주말에 출조할 때면 항상 그를 데리고 갔다. 그 또한 여느 아이처럼 뛰어놀기를 좋아해 기꺼이 낚시에 동참했고 이 과정을 통해 자연과 친해졌다.부산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장래 희망을 「생물학자」로 당당히 적어냈다. 이 꿈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이런 야무진 각오를 하고 선택한 대학은 경희대학교. 실력으로는 다른 대학에 충분히 진학할수도 있었으나 당시 경희대 생물학과에는 새박사인 원병오교수가 있어 주저없이 선택했다. 이름이 아닌 자신의 꿈을 대학선택 기준으로 삼은 셈이다.84년 학부과정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일본 동경농업대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다른 나라를 놔두고 굳이 일본을 유학처로 삼은 것은 한국 고대 동식물에 대한 자료가 일본에 많았기 때문.◆ “환경보호운동, 지역주민이 나설때”각오는 하고 떠났으나 일본 유학생활은 고생 그 자체였다. 어학도 달릴뿐더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료를 찾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약한 생각이 들때면 「어릴 적 꿈」을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다. 학업에 정진한 끝에 97년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한국산 소형포유동물의 행태분류학적·분자계통학적 검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지 13년만이었다.학위를 따고 귀국하자 환경부에서 제의가 왔다. 전국 자연환경조사 프로젝트의 동물분야 팀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였다. 비록 계약전문직이긴 했지만 연구도 병행할 수 있어 혼쾌히 수락했다.환경부 자연보전국 생태조사단 팀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분포조사 및 보호대책마련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제대로 정책결정에 잘 반영되지 않고 변색되기 일쑤여서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동강이 준 충격이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그런뒤 98년 한국자연과학정보연구센터를 설립, 환경연구 및 보호운동에 대한 이론적 토대구축에 앞장을 섰다. 지난해말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발간한 환경법전은 이 센터의 첫 연구성과물이다. 한 대표는 이와함께 한국에 서식하고 있는 세계적 희귀동물보호활동에도 열심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두루미와 저어새, 지리산에 서식하고 있는 반달가슴곰 등이 그의 보호관찰 대상이다.『환경보호운동도 이젠 차원을 달리해야 합니다. 구호만을 외쳐서는 한계가 있고 주민 스스로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가치를 느껴 스스로 보존에 나서게 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환경보호운동에 대한 한대표의 시각이다. 한국 동물생태연구분야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구축한 그가 왜 공무원 신분을 박찼는지 이 말속에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