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잡이 동원·평판 조작 등 경매가 조작사건 다발 … 감시시스템 강화하며 ‘유용성’ 강조나서

이베이(eBay). 세계 최초, 최대의 인터넷 경매 회사다. 인터넷 역사로는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1995년10월에 설립된 이래 ‘경매의 대중화’를 선도해왔다는 자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베이가 출범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경매’하면 흔히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곳을 통한 골동품이나 고가품의 거래, 또는 기껏해야 중고 자동차를 매매할 때나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그러나 이베이의 출현으로 누구든지 방안에 앉아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만으로 어떤 물건이든 사고팔 수 있게 됐다. ‘인터넷 혁명’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성과였다. 이베이가 취급하는 경매 품목은 4천3백20여개에 이르며 거래자는 하루 평균 4백만명, 거래 물품수는 45만개에 이른다.인터넷 상거래, 이른바 e-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베이는 하나의 ‘신화’다. 수많은 ‘닷컴’족 기업들이 겉만 화려한 채 막대한 손실로 멍들어 있는 것과 달리 이베이는 매 결산기 때마다 외형과 수익을 올려 다른 기업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베이의 올해 매출이 4억달러로 작년의 두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이베이에 회원으로 등록하고 각종 물품의 경매에 참여하고 있는 단골 고객은 1년전보다 세배가 늘어난 1천2백60만여명에 이른다.◆ 급성장 신화 … ‘제2의 이베이’ 꿈 제공이베이의 이런 ‘인터넷 경매’ 성공 신화는 아마존 닷 컴, 야후 등 다른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한 온라인 업체들로 하여금 인터넷 경매에 손을 대게끔 했을 정도다. 이밖에도 프라이스라인 닷 컴 등 신생 온라인 경매업체들이 줄지어 출범, ‘제2의 이베이’를 꿈꾸고 있다.이런 이베이가 최근 온라인 경매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기꾼들의 잇단 경매 가격 조작 사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게일 카우치라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주민은 지난 10월 이베이의 웹 사이트에 들어가 경매 물건으로 나온 수집용 인형에 15달러의 원매가(願買價)를 제시했다. 그러나 곧바로 다른 원매자가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경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인형의 임자 A씨는 더 높은 가격이 불려지기를 기다리면서 낙찰을 거부했다. 며칠 뒤 카우치씨는 우연히 수집용 인형 경매에서 높은 원매가를 제시했던 사람의 신원을 알게 됐다. 그는 다름 아닌 A씨 친척이었다. 말하자면 경매값을 올려받기 위해 친척간에 ‘바람잡기’를 했던 것이다. 카우치씨는 이같은 사실을 이베이측에 신고했고, 이베이는 문제를 일으킨 A씨에게 ‘30일간 경매 참여 금지’라는 처벌을 내렸다.그러나 비단 A씨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바람잡이’를 동원한 경매가격 조작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게 이베이 등 웹 사이트 이용자들의 고발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심증’에 그칠 뿐, 가격 조작 혐의를 확인할 증거가 없어 유야무야되고 만다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바람잡이’를 통한 가격 조작에 이어 최근에는 자신이 내놓은 물건에 스스로가 몇개의 가명을 동원해 원매자로 참여하고는 경매가격을 마구잡이로 끌어올리는 신종 사기수법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온라인 경매시장을 뒤흔들었던 ‘월튼 사건’이 그 예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시의 변호사인 케네스 월튼이라는 사람은 4천5백달러를 주고 구입했던 미술품을 이베이 경매에 내놓아 13만5천8백5달러에 매각,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월튼이 미술품의 경매값을 최대한 올려받기 위해 몇 개의 가명을 동원해 자신이 원매자로 참여, 고비때마다 값을 밀어올리는 수작을 부린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베이측은 이같은 사실이 확인되자 월튼에 대해 경매 참여를 금지시키는 제재조치를 가했다.절차에 대한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경매에서 각종 편법과 사술(詐術)을 동원한 가격 조작이 횡행할 경우 고객 이탈이 줄을 이을 것은 불문가지다. 이베이는 ‘월튼 사건’이나 A씨의 ‘바람잡기’와 같은 가격 조작극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자체 개발한 감시망을 가동, 경매 과정에서 조금만 수상한 혐의가 나타나도 2시간 내에 추방시키는 시스템을 실시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경매 이용자들은 그러나 이베이가 가격 조작을 원천적으로 막을 만한 강력한 장치를 동원할 수 있는데도 ‘솜방망이 수단’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한다.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베이 감시 시스템의 기본적인 문제는 신원 확인을 위한 신용카드 번호 등록 요건을 물건 매도자에게만 부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 닷 컴이나 야후 같은 경우는 매도, 매수 참여자 모두에게 신용카드 번호를 등록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거래 과정에서 수상한 조짐이 발견될 경우 즉각 해당자의 신용카드를 조회해 신원을 파악,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게 가능하다. 그러나 이베이는 매도자의 신원 확인만이 가능하게 돼 있어 가격 조작 등 부정 행위를 적발하고 제재조치를 취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뿐만 아니라 경매 협잡꾼들은 가명을 이용, ‘경매 참여자 평가(feedback rating)’란에 들어가 자기 자신에 대해 후한 점수를 매김으로써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신뢰를 높이는 ‘평판 조작’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경매 참여자 평가’란 이베이를 통해 경매를 한 사람들이 거래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소감과 평판 등을 게재토록 하는 코너다. 온라인 경매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 코너를 통해 주요 참여자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을 정도로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그럼에도 이베이가 경매 참여자들에 대한 신용카드 번호 등록 요건 등을 느슨하게 운영하는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되도록 많은 손님들을 불러모으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다른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신원 확인 등이 엄격하게 이뤄지기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한 정보가 백일하에 드러나는데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베이는 얼마전 경매 참여자들 모두의 신용 상태를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정보 신고 제도의 도입을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이 알려지자 이베이의 등록 회원들이 대부분 반발, 무산되고 말았다. ‘남에게는 엄격하되 자신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주기를 바라는’ 신용정보에 관한 사람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이베이의 ‘장삿속’과 맞물려 온라인 경매 사기를 부추기는 토양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이베이는 이처럼 영업의 근간을 흔드는 사고가 잇따르자 나름의 대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경매가 낙찰돼 값을 치르고도 물건을 받지 못하는 사태에 대비해 2백달러어치까지는 이베이에서 책임을 져주는 보험에 가입한 것을 비롯, 전직 연방 수사관 출신을 책임자로 1백여명의 사기 대책단을 구성해 거래 부정에 대처하고 있다.이베이측은 경매 사기 사건이 꼬리를 잇고 있는데 대해 “웹 사이트가 시골 마을 수준에서 뉴욕시 수준으로 단기간에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몸살”이라고 말한다. 또 경매 사기도 전체 거래 규모에 비해 극히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확인된 사기 사건은 경매 2만5천건 당 한개꼴에도 못미친다는 것이다. 각종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이베이를 찾는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베이 웹 사이트의 유용성을 웅변적으로 입증한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온라인 경매산업은 이제 걸음마를 막 벗어난 단계에 불과한 만큼, 요즘 치르고 있는 ‘홍역’을 잘 넘기면 지구촌 사람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쇼핑 혁명으로 완전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