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울 때 일이다. 언론에서 복구작업 장면을 보여준다. 기자는 정의감 넘친 얼굴로 전국민이 힘을 합쳐 이 난국을 헤쳐 나가자고 얘기한다. 이어 헬기가 골프장 상공을 날면서 이런 시기에도 골프치는 자들이 있다면서 국민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문득 수해복구하는 것과 골프치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많은 국민들이 수해를 당해 가슴 아파할 때 한가히 골프를 친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전국민에게 같은 생각과 행동을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수해복구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복구하고 다른 비즈니스가 있는 사람들은 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고위층 부인의 옷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일이다. 옷을 로비의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아닌지가 문제의 핵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에서는 주제와는 별 상관없이 비싼 옷을 문제삼고 비싼 옷 파는 집과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죄악시한다. 한마디로 “살기 어려운 것은 다 가진 자들의 방탕한 낭비 때문”이라면서 그들을 속죄양으로 하는 원시적 메시지를 속에 깔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한때는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했던 비교적 큰 나라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수입으로 동일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집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잘 사는 사람이 일정 규모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부유한 사람이 자신의 부를 즐기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 속성이다. 깨끗하게 돈을 벌고, 돈 있는 티를 안내고, 사회를 위해 부를 환원했으면 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부자에 대한 바람이다. 하지만 바람은 역시 바람일 뿐이고 선택은 그들의 몫인 것이다.자본주의를 받아들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에는 이를 거부하고 시기질투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그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이 많다보니 그렇게 됐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진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질시는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가진 자에 대한 질투와 시기는 누구를 위해 필요할까. 아마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냥 그들을 싸잡아 비난함으로써 기분이나 푸는 효과 외에는 없을 것이다. 비난한다고 가진 자가 반성하는 것도 부가 분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돈 쓰기가 힘드니 사람들이 안보는 외국으로 돈을 빼돌리든지, 아예 외국에서 흥청망청 쓰든지, 더욱 은밀한 방법을 사용하려 할 것이다. 언론에서 질타한다고 강남의 고급 브랜드 옷가게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재벌 2세들의 방탕을 나무란다고 그들이 개과천선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미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바르게 돈 벌고, 잘 사용하는 사람을 스타로 만듦으로써 사람들에게 부는 좋은 것이라는 개념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민주주의는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데서 출발한다. 인정을 안해도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차이를 억지로 없애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멀쩡히 있던 일류학교를 없애고 평준화시킴으로써 교육의 하향적 평준화에 성공했지만 다른 형태의 일류학교가 탄생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부란 것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배가 아프고 보기 싫다고 부자에게 가난한 사람과 똑같은 형태의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 서로간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