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아닌 필수' 대학가 열기. 조기유학 겨냥 업체 속속 등장...학부모.대학생 쌈짓돈 줍기 '후끈'

서울시내 중류급 대학 어문학부에 다니고 있는 K양(21, 서울 성산동)은 오는 가을학기를 지낼 일이 걱정이다. 친한 친구 3명이 모두 휴학하고 미국,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나 자신만 외톨이가 됐기 때문이다. 같이 공부하던 학부생들이 이미 1학년 2학기부터 하나 둘씩 모습을 감추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남의 일이겠거니’하고 애써 무시해온 K양이지만, 친한 친구들의 잇따른 해외연수에는 심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인 아버지에 넉넉지 못한 집안사정 때문에 생각조차 멀리했던 해외연수지만 이제는 좀더 현실적으로 고려해 봐야만 하는 ‘숙제’로 다가왔던 것이다.“여자인데다 명문대학도 아니고, 특별한 자격증도 없으니 졸업 후 직장 구하기 힘들 것은 뻔하잖아요. 기댈 곳이라곤 어학뿐인데, 아무래도 국내에서 실용영어를 배우기는 힘들 것 같고…. 어학연수 경험을 선호하는 기업이 많다고 하니, 앞으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어학연수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K양은 올 겨울이나 내년 봄 어학연수 시작을 목표로 아르바이트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K양의 사례에서 보듯 요즘 대학가의 어학연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가는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학생수 때문에 고역을 치르고 있다.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집계한 휴학생 실태는 이런 현상을 좀더 객관적으로 추정케 해준다.◆ 이화여대 연수목적 휴학생 50%나 늘어교육부가 올 봄 전국 1백61개 4년제 국·공·사립 종합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월1일 현재 휴학생은 50만8천6백47명으로, 이는 전체 재적생 1백66만6천7백49명중 30.5%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휴학이유로는 군입대 휴학이 29만9천9백71명으로 전체 휴학의 59%로 일단 가장 많았지만, 외국유학이나 연수 등 개인사정에 의한 일반 휴학도 19만3천9백9명으로 38.1%에 달했다. 이같은 휴학생 수는 사상 최다였던 지난해 2학기의 50만2천5백43명에 비해 6천여명(0.4%)이 늘어난 것이며, 지난해 1학기에 비해서는 1.4%가 증가했다. 일부 지방대학의 경우 재적생의 절반이상이 휴학하고 있으며, 서울의 속칭 명문대 휴학생도 전체 재적생의 20~30%에 달하는 등 명문대도 휴학열풍의 예외지대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휴학생들이 모두 해외연수나 유학을 떠나는 것으로 보긴 힘들지만, 상당수가 해외연수를 목적으로 휴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실제로 이화여대의 경우 올해 1학기 전체 휴학생은 1천7백40명으로, 지난해 1학기의 1천7백72명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으나, 어학연수 목적의 휴학생은 6백1명으로 지난해 봄학기 4백7명보다 50%나 늘어났다.최근의 어학연수 붐은 유학연수 알선업체의 급증 및 방문상담의 급증을 통해서도 ‘돈되는 사업’임을 확인시켜 준다. 국내 유학연수 알선업체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신고제라 공식적인 집계는 어렵지만 업계는 대략 9백~1천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중 30~40%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사이에 생긴 것으로 관측된다.어학연수가 붐을 이루던 95~96년 우후죽순격으로 생겼다가 @@F를 겪으며 대거 문을 닫았으나 지난해부터 어학연수시장이 되살아나면서 다시 다투어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유학연수 업계는 일단 어학연수 상담학생들만 놓고 볼 때, 어학연수 희망자가 @@F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보고 있다.국내 최대규모의 유학연수 알선업체로 꼽히고 있는 문화교육의 경우 올 상반기에만 1천5백여명의 연수 희망자와 상담을 했고, 18년 역사를 자랑하는 YBM시사영어사 부설 시사유학개발원도 올 한해 동안 98년 대비 2배 정도 늘어난 2천여명 상담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각국 문화원·교육원 학생유치 열기이들 유학연수업계에 최근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조기유학 문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점. 시사유학개발원 김남희원장은 “올해초 정부에서 조기유학 허용여부를 거론한 후 조기유학 상담이 한달에 줄잡아 30~50건 정도로 늘어났다”며 “아직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학부모들의 관심이 훨씬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잇달아 생기고 있는 유학연수 알선업체들도 조기유학이란 새로운 시장을 겨냥한 것이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유학 및 연수는 비단 알선업체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알선 업체야 학생들의 예산이나 관심사에 따라 어느 나라로든 보내주기만 하면 되지만, 각국 문화원이나 교육원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다 많은 학생을 유치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이런 측면에서 학생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 및 관련기관이 영국문화원과 캐나다대사관 부설 교육원이다. 영국의 경우 비싼 학비 때문에 @@F이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연수 국가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올들어 서서히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다.여기에는 올해 초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이 교육의 상품화로 해외학생 유치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데다 이와 맞물려 주 15시간으로 제한돼 있던 외국학생들에 대한 아르바이트 허용시간이 올해초부터 주 20시간으로 확대되는 등 가시적인 조치들도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문화원은 이런 여세를 몰아 오는 10월28일, 29일 양일간 서울(조선호텔)에서, 30일 대구 계명대에서 ‘영국유학연수박람회’를 개최, 보다 많은 학생유치에 나설 계획이다.캐나다는 요즘 해외연수지로 가장 뜨고 있는 국가중의 하나다. 미국에 이어 인기 2순위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캐나다교육원이 집계한 3개월 이상(비자발급 최소기간 기준)의 어학연수 및 유학생 수는 97년 8천3백54명으로 최고수준을 나타냈다가 98년엔 3천6백26명으로 절반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어 99년 6천9백85명, 올 상반기엔 5천3백82명으로 상반기실적 최고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올 하반기까지 1만명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어학연수지로서 캐나다의 이같은 인기상승에 대해 캐나다교육원 유혜승 원장은 “교육수준이 높고 평준화되어 있는데다, 비용이 싼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인문계 학부를 기준으로 1년 동안 드는 평균 연수 및 유학비용은 캐나다가 4천7백달러(US$), 미국 국립 8천1백달러, 미국 사립 1만3천6백50달러, 호주 7천8백달러, 영국 1만달러로 집계되고 있다(캐나다통계청).이밖에 93년부터 매년 열어오고 있는 ‘캐나다 유학연수박람회’를 통해 현지 대학과 연수기관, 숙소, 현지생활 등에 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학생유치에 보탬을 주고 있다. 올해의 경우 오는 11월 4~5일 양일간 시청앞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유학연수박람회를 열 방침이다.한편 9월 초 굿모닝팝스가 유학연수박람회를 개최하고, 9월16~17일에는 코엑스(COEX)에서 세계유학박람회가 열리는 등 올 가을에는 유난히 많은 유학연수박람회가 열리기로 예정돼 있다.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고려하는 학생들이라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셈이다.그렇다면 요즘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들은 예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문화교육 원종욱부장은 “해외 어학연수가 대학생활의 필수과정으로 인식되면서 실용성에 중점을 둔 건전한 어학연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F이전의 어학연수가 ‘있는 집 자식들의 부의 향유’라는 성격이 일부나마 강했던데 비해, 지금은 다양한 문화체험이나 취업의 필요에 의해 알찬 연수를 계획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이에 따라 여행을 겸한 단기연수가 줄어드는 대신 6개월~1년의 중장기 연수 희망자가 늘어나고, 한국인이 많이 몰려 있는 곳보다는 한국인이 적은 지방학교나 시골학교를 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시사유학개발원 김남희 원장은 “예전에는 무조건 가고 보자는 식이 많았는데, 요즘은 ‘가서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에 중점을 두는 실속파들이 많아졌다”며 “어학연수가 단순히 언어를 익힌다는 단순한 기능 외에 세계화에 필요한 다양한 문화체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최근의 추세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