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반세계화 물결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과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90년대 이후 반세계화 물결은 비정부기구(NGO)를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지난해 11월말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제3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담을 계기로 본격화되고 있다.금년 들어서는 지난 4월에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춘계회의뿐만 아니라 9월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제55차 IMF·IBRD 연차총회에서도 당초 회의일정을 하루 앞당겨 끝낼 정도로 반세계화 물결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앞으로 WTO나 IMF 총회는 온라인을 통해 사이버 총회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최근 들어 반세계화 물결은 심하다.국제통화기금(IMF)이 내린 정의에 따르면 세계화란 세계 각국간 무역과 금융시장의 통합현상으로 크게 무역과 자본이동, 인력이동 그리고 지식이동을 통해 이루어지며 참여하는 모든 국가에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보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모든 국제협상이 진행돼 왔다.문제는 IMF의 정의대로 세계화는 모든 국가에 이익을 제공해 주는 ‘원-윈 게임’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제교역질서를 토대로 살펴본다.현 시점에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지 5년이 지났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출범 이전에는 WTO체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WTO체제라는 것은 기본골격이 세계 각국간에 놓인 무역장벽을 해소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우리처럼 수출에 의해 성장을 주도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가장 커다란 혜택이 예상됐었다.당시에 김영삼 정부는 이런 점을 부각하면서 WTO체제하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논리로 국회나 국민들을 설득시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아시아 국가들도 이런 기대감으로 21세기에는 북미경제권, 유럽경제권과 함께 세계 3개 경제권으로 부각될 것으로 확신했었다.◆ WTO체제 5년여 … 아시아 경제 아직도 빈곤이런 기대와는 달리 출범한지 5년이 지난 WTO체제는 일반적으로 ‘서고동저(西高東低)’라 불리고 있다. 다시 말해 90년대초에 부진했던 미국, 유럽과 같은 서구선진국 경기는 활황을 보이고, 21세기 세계를 지배할 것으로 예상됐던 동아시아 경기는 외환위기에 휩싸이면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WTO체제에서는 세계 각국간에 놓인 각종 교역장벽이 해소됨에 따라 경쟁이 격화되는 본질을 갖고 있다. 무한경쟁 체제하에서는 경쟁력 확보 여부에 따라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운명이 좌우된다. 다시 말해 매년 세계경제가 성장하는 부문을 제외하고는 제로섬인 경제게임에서는 선진국들의 경기가 활황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개도국들의 이익이 희생당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21세기에는 어떤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의도로는 지난해 11월말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제3차 WTO 각료회담을 계기로 뉴라운드 체제를 출범시키려 했다. 회담결과는 개도국과 비정부기구(NGO)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선진국들의 이런 의도가 일단은 무산된 상태다.뉴라운드란 종전의 협상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출범한 이래 WTO 체제까지 진행됐던 모든 협상은 세계 각국간에 놓인 상품과 서비스의 흐름을 제약하는 모든 교역장벽을 해소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반면 뉴라운드는 종래에 각국의 고유문제로 간주돼 왔던 상이한 경제정책과 제도, 기준, 관행 심지어는 국민들의 의식까지 국제적으로 통일시켜 ‘공정한 경쟁기반(level playing field)’을 마련하는 일이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미국과 한국과는 국명만 다를 뿐이지 경제활동면에서는 하나의 국가가 되는 셈이다.아무튼 뉴라운드 체제가 출범하면 우리와 같은 개도국의 대외정책은 낙후된 기준과 관행을 통일시키기 위해 글로벌스탠더드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은 세계 각국의 이익을 골고루 반영하는 글로벌스탠더드가 존재하느냐 여부다. 만약 있다면 모든 국가가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다.문제는 아무래도 최근과 같은 ‘미국 중시의 사회(america-oriented society)’에서는 국제역학 관계상 글로벌스탠더드는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대외정책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한다는 것은 대미 편향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이런 체제하에서는 세계화가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국가간 혹은 계층간의 불균형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일단 미국과 유럽의 기준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비용부담이 엄청나게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WTO체제하에서는 최종상품(products)에 대한 국경간 조치를 해소하는데 반해 뉴라운드 체제는 생산과정(product process)과 직접적으로 관련있기 때문에 개도국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미래학자들이 21세기 들어서는 새로운 이즘(ism)으로 신종속이론을 거론하고 개도국들의 이익을 고려해 주는 국제교역질서가 태동하지 못할 경우 세계경제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연유다.동시에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내에서 미국이론을 거의 베끼다 시피하는 정책운영에 대한 강한 반감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가 되는 현상이다.더욱 우려되는 것은 정보 비대칭성, 금융시스템의 격차가 심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국제교역질서보다 세계화 진전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불균형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자본시장 개방 이후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가 없다는 점이 이같은 사실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 세계화 진전될수록 개도국 희생 불가피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어떤 금융위기국에 비해서도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개방속도가 빨랐다. 물론 외환위기 극복에 도움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다. 반면 우리 정책운용이나 기업경영에 있어 독자적인 힘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동시에 외국기업과의 불균형과 근로자간의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특히 최근 들어서는 포드사의 대우차 인수 포기와 한보철강에 대한 네이버스 컨소시엄의 일방적인 계약포기 사례에서 보듯이 선진국 기업들의 자의적인 행위가 심해지고 있다. 물론 이면에는 우리나라 국부가 상실되는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기업매각과 관련된 국부유출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확산되고 있는 반세계화 물결을 일부 경제각료의 말처럼 부정적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지, 정작 고통을 당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번만큼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화·국제화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이로 인한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내적 역량을 갖춰 놓아야 한다. 이런 점이 전제가 되지 못했다면 속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내에서 형성되고 있는 신사대주의는 반드시 경계해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