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쾌한 얼굴로 “오늘도 좋은 하루”를 외치기보다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으로 잔뜩 찌푸린 얼굴로 출근한다. 그러면서 호시탐탐 언젠가 올 그날에 대한 허망한 꿈을 꾼다. “언젠가 복권이 당첨돼 살림이 펴인다면 그날로 사표를 낼 것이다. 투자한 주식에서 대박이 터지면 일 안하고 지내야지….” 하지만 그런 허망한 꿈은 이뤄질 확률도 거의 없지만 일어나더라도 생각처럼 행복하지 않다. 일의 가치가 생활의 방편에 불과하다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 일이 없는 사람은 행복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노사분규가 극성을 부리던 90년대 초 황사장은 사업을 정리했다. 안산에서 대기업에 기계류를 납품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정나미가 떨어졌다. 내가 누구를 위해 이 고생을 하고 이런 수모를 받아야 하나. 차라리 공장을 정리하고 그 돈으로 여생을 즐기며 살자고 결심을 했다. 회사를 정리하고 얼마간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사우나 가고, 골프 치고, 저녁에는 친구 불러 좋은 술집 찾아다니고…. 왜 진작 이렇게 살지 못했나 후회까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그를 피했다.자신이야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괜찮지만 직장이 있고 생활이 있는 친구들이 그의 리듬에 맞추기는 부담이 됐던 것이다. 또 그렇게 좋던 사우나, 골프, 술집도 시간이 지나면서 시큰둥해졌다. 매일 푹 쉬지만 하루하루 무기력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무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경쓰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음식에 적당한 운동에 아무 걱정없이 그야말로 신선처럼 사는데 왜 이리 피곤한 걸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어느 날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가 가정환경 조사서를 들고와 아버지 직업을 뭐로 해야 할지 물었던 것이다. 순간 그는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사람에게 일은 밥벌이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야말로 삶의 가장 중요한 축이란 사실을 발견했다. 일이 없고 일에서 만족을 못 느끼면서 행복을 꿈꾼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건지 깨달은 것이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더라도, 직원들과 끊임없이 부딪치고 때로 욕을 먹더라도, 사업 때문에 돈을 꾸러 다니더라도 일에서 즐거움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하는 일이 적성에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는 일이 남들 눈에 그럴 듯해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살다보면 꼭 이렇게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또 일을 좋아하기 보다는 일을 싫어하고 그만두고 싶게 만드는 수많은 요소가 많은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일 없이는 살 수 없다. 또 일만큼 싫증 안내고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은퇴 후 일이 없어지면 사람은 급격히 늙는다. 시골에서 일하는 노모를 아파트에 편히(?) 모시면 병이 생긴다. 이 지겨운 일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아무 일도 안하면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큰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비극이 있기에 희극이 존재할 수 있고 일의 고달픔이 있기에 휴식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이 있다는 것은, 아침에 눈을 비비고 나갈 직장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일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때 우리는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