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내부조직중 ‘인사부’라는 곳은 샐러리맨들에게 은근히 신경쓰이는 부서다. 자리 이동에서 승진, 승급에 이르기까지 직원들의 신상과 관련된 업무를 컨트롤하는 인사부야 말로 샐러리맨들의 회사인생을 좌우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자신이 원하는 부서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 샐러리맨의 직장생활은 즐거움으로 가득할 수 있다. 자리 이동과 승진마저 제 마음대로 결정내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장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반대다. 어느 기업이든 인사체계라는 꽉 짜인 기존의 틀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샐러리맨들은 그 속에서 공통의 룰을 따라 자신의 인생코스를 밟아가기 마련이다.도쿄 증시에 상장된 기업중 외식업체인 ‘글로벌 다이닝’(하세가와 코지(長谷川耕造) 사장, 51)은 이같은 점에서 볼 때 일반 사람들의 상식과 룰을 완전히 뒤집은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인사부가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또 직원들이 자신의 일과 근무하고 싶은 점포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승진과 급여책정도 자유다. 철저한 자기신고제다. 신고해서 윗 상사가 OK만 해주면 그걸로 끝이다. 한 마디로 말해 기상천외한 발상이다.상식과 관행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 같아 어찌 보면 엉터리 회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캐고 들어가 보면 전혀 ‘아니올시다’다. 성적표에 해당하는 경영성과도 우등생이지만 기업체질 역시 단단한 근육질이다. 혈액순환에 비유할 수 있는 사내 커뮤니케이션도 양호하고 소화기관도 튼튼하다.근로의욕 사기충천 … 매년 20% 성장세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수도권 일대에서 고급레스토랑 ‘라 보엠’과 ‘제스트’ 등 29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이 업체는 신생회사가 아니다. 미국에도 91년 진출해 로스앤젤리스에 점포를 하나 두고 있다.주식회사의 골격을 갖춘 것은 지난 85년이고 97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사명을 바꿨지만 실질적인 창업의 씨앗은 73년에 뿌려졌다. 하세가와 사장이 ‘대학졸업=샐러리맨’이라는 등식에 회의를 품고 학교를 뛰쳐나와 조그만 찻집 ‘北歐館’을 연 것이 오늘에 이른 출발이었다. 하세가와 사장이 다니던 와세다대학 인근의 다카다노바바라는 지역에서였다.글로벌 다이닝의 인력은 정규직원만 해도 1백20명을 넘는다. 각 점포에서 일하는 파트타이머를 합치면 1천3백명에 육박하는 매머드 조직이다. 97년 도쿄증시 2부에 상장된 우량 외식업체이며 2000년에는 94억5천만엔의 매출을 올렸다.절대 다수 외식업체들의 매출신장률이 마이너스로 뒷걸음치는 가운데서도 최근 수년 동안 매년 20%대의 성장을 지속했다. 경상이익도 9억2천만엔에 달했을 만큼 강한 수익력을 갖고 있다.일본 언론은 이 회사 성장에너지의 비결을 무엇보다 독특한 인사제도와 하세가와 사장의 리더십 그리고 색깔있는 경영방식에서 찾고 있다.“인사부가 뭐 필요합니까? 직원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자리를 옮겨 놓으면 업무가 될리 없습니다. 샐러리맨들은 모두 속마음으로 인사부가 없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하세가와 사장의 생각은 명쾌하다. 직원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자신이 찾아 자신의 책임하에 하게 내버려 두면 회사는 잘 돌아가게 돼 있다는 것이다. 모든 직원들이 높은 직위에서 명령내리는 일만 할 수는 없지만 개개인의 의사와 의욕을 잘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믿고 있다. 그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 일할 때는 직원의 능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이 회사에서는 새로 점포를 오픈할 경우 사내에서 점장을 모집한다. 해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응모하면 된다. 결정은 점장회의에서 선거를 통해 내려진다. 다수결로 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점장이 된다. 주방 일을 하다 홀에서 서빙업무를 해보고 싶을 때는 점장과 의논해 동의만 받으면 그만이다.더 특이한 것은 급여체계다.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싶다면 직원 자신이 회사에 신고만 하면 된다. 승급도 마찬가지다. 모든 업무와 그에 상응하는 보수가 명확히 정해지고 공개돼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면 얼마를 받게 되는지를 직원들 누구나가 훤히 알고 있다.“승급과 승진은 회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본인의 문젭니다. 그리고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하세가와 사장은 “자신의 목표를 뚜렷이 정해놓고 도전하는 직원들이야 말로 책임의식과 의욕으로 뭉쳐진 사람”이라며 “급여신고를 하고 나면 더 기를 쓰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자연 급여결정을 포함한 이 회사의 인사업무는 모두 직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러한 일을 하니 이 정도 보수를 달라’고 회사에 요구할 수 있는 자율적 근무체계가 뿌리내린 것이다. 20대 직원이 연간 1천만엔대의 급여를 받고, 연수입이 2천만엔에 이르는 점장이 탄생한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분위기다. 25세의 나이로 점장을 맡고 있는 직원도 있다.급여 수준 역시 파격적이긴 마찬가지다. 시간당 8백50엔을 받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3천5백엔을 받는 사람도 있다. 시간당 3천5백엔이라면 외식업체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고임금이지만 하세가와 사장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마다 하는 일의 내용과 수준이 다른데 받는 보수에 맞게 일만 제대로 해내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8백50엔을 받고 접시만 나르는 사람보다 3천5백엔을 받으며 비싼 칵테일을 만드는 사람이 매출 기여도가 더 크므로 급여를 더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이다.이 회사는 사장에서 현장의 파트타이머에 이르기까지 전직원의 급여를 사내에 공개하고 있다. 자신의 일과 일터를 마음대로 고르고 급여책정도 자율적으로 하게 한데서 올지도 모를 오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점포간 매출비교로 ‘거품능력’ 견제다소 외진 곳에 자리잡은 글로벌 다이닝 레스토랑(위) 파격적인 직원관리로 주목받고 있는 하세가와 코지 사장.직원들에게 자유와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지만 그렇다고 견제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다이닝은 일선 점포들의 매출을 매월 비교하면서 3개월 연속으로 하위 3등 이내를 면치 못한 점장들에게는 징계를 가한다. 점장 자격이 없다고 판단, 직급을 강등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사내에서는 일종의 ‘재판’이 열린다.매출이 부진한데 대한 원인을 참가자들이 모두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분석한 후 최종 결정을 내린다. 하세가와 사장이 참석해 목소리를 높이고 질책을 가할 때도 많지만 결정 방식은 어디까지나 다수결이기 때문에 사장 한명의 의사대로 되지 않는다.내부 의사결정이 하의상달식으로 이뤄지니 직원들의 근로의욕과 사기도 일류수준이다.24시간 영업을 하므로 야간 근무자들은 짜증이 나고 지쳐 있을법한데 그러한 기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언제, 어느 점포를 방문하더라도 고객을 맞는 일선 종업원들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힘이 넘쳐난다.‘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를 하도 크게 외쳐대 일부 고객들 사이에서는 마치 학교 운동부원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대낮은 물론 새벽 2, 3시에 찾아가도 종업원들의 고객을 맞는 태도는 변함이 없다.인사부를 없애고 파격적인 직원관리 방식을 택한 것 못지 않게 글로벌 다이닝은 영업, 점포 확장전략에서도 경쟁업체들의 허를 찌르는 스타일로 주목을 받고 있다.이 회사는 도쿄에서도 번화가가 아닌 비교적 외곽에 점포를 집중적으로 내고 있다. 임대료가 비싼 도심을 피하면서 일반인들이 보기에 장사가 전혀 될 것 같지 않은 곳에 점포를 설치하며 신규고객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하세가와 사장은 발상을 바꾸지 않고는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넓은 도로를 끼고 있으면서도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잠재고객을 끌어들이기에 좋은 목은 도쿄에도 얼마든지 있다”며 “공원 주변이야 말로 자신이 꼽는 최적의 후보지”라고 자신하고 있다.직원들이 스포츠맨처럼 생기로 가득차 있다는게 고객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지만 실은 하세가와 사장 자신이 스포츠광이다. 그것도 마라톤을 특히 사랑한다.“달리는 것 자체로 자신에게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습니까. 달리고 있을 때는 누구나 완전히 평등해지므로 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글로벌 다이닝을 일본적 경영 시스템 파괴의 선구업체로 부각시킨 그의 ‘달리기’ 예찬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