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야기의 홍수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적인 이야기든 꿈에서도 구경하기 어려운 황당무계한 이야기든 우리는 그 어떤 이야기도 충분히 즐길 자세가 돼 있다. 요컨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그럴듯한 사건들을 대신 경험하고 즐거워한다. 아마도 이 점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이야기가 존재해 왔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하지만 이야기보다 더 황당하고 기막힌 사건들이 매일 신문 지면에 오르는 지금 과연 어떤 이야기가 새롭고 충격적일 수 있을까. 독자와 관객들은 여전히 현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요구하지만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 이야기는 이미 구식이 돼 버렸다. 게다가 일찍이 프랑스 철학가 미셸 푸코와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주장했듯이, 창작의 원천으로서 작가들이 차지하던 위치를 박탈당하기에 이른 지금 그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라는 건 어쩌면 ‘미션 임파서블’일지도 모른다.마치 작가들의 이러한 딜레마를 항변이라도 하는 듯 영화 <소설보다 더 이상한 이야기 designtimesp=20898>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절친한 친구인 오스틴(토드 필드)과 엠마(디나 메이어), 바이올렛과 자레드는 어느 날 황당한 사건에 빠진다. 워싱턴으로 떠나게 된 변호사 자레드가 그만 집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 게다가 그 남자는 동성애자 자레드의 하룻밤 상대인데다 마약 단속 형사라는 점에 친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충격도 잠깐 네 친구는 시체를 유기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아마추어들이 일 처리를 제대로 해낼 턱이 없다. 시체를 버리러 떠나던 중 교통사고로 또 한명을 죽이고, 트렁크에 시체를 넣은 차가 주차 위반으로 견인되는 등 사건은 계속 꼬여만 간다. 거기에 목격자도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일촉즉발의 위기는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황당한 초보들의 우스꽝스런 해프닝에 가려진 사건의 전모는 겉보기와 다르다.두편의 인디 영화로 주목받았던 감독 에릭 브로스는 마치 <펄프 픽션 designtimesp=20903>과 <셸로우 그레이브 designtimesp=20904>를 합쳐 놓은 듯한 익숙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 적절한 양념으로 재미를 더 한다. 경찰을 죽이고도 “경찰은 시민의 친구니까 경찰에게 신고하자”는 말이나 목격자를 죽이기 위해 인체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바퀴벌레 약을 커피잔에 쏟아 붓는 전형적인 스릴러 장르를 더해 예기치 못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렇게 스릴러와 코미디를 오가며 장르적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이 영화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듯한 전체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이끌어 나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제목이 그토록 주장하던 ‘소설보다 더 이상한’ 무언가가 없다. 플롯 자체도 장르를 교차하는 유희도 모두 다른 영화들에서 이미 익숙한 것들이고 후반부의 반전 역시 그다지 충격적이지 못하다. 아마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소설보다 더 이상한’ 이야기란 이제 불가능하다는 점을 깊이 통감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이 매력적인 제목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관객들에게 그 점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