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부룩하이머 감독은 영화 <진주만 designtimesp=21089>으로 미국 영화계의 시계 바늘이 다시 80년대로 돌아왔음을 선언하고 있다.요즘 미국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진주만(Pearl Harbor) designtimesp=21090>이란 영화다. 우리나라의 현충일과 같은 날인 메모리얼데이(5월28일)가 낀 3일간의 황금연휴에 개봉된 이 영화는 제작단계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다. 1억3천5백만달러라는 거액의 제작비는 물론 실전을 방불케 하는 영화촬영 등이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진주만 공습 당사자로 영화에서 좋게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거대시장인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영화제작자들이 홍보의 포커스를 미국에선 전쟁, 일본에선 사랑에 맞추고 있는 것도 얘깃거리다.개봉 후 첫 4일간 흥행실적이 7천5백만달러로 <쥬라기공원 designtimesp=21093>(9천만달러)에 이어 사상 두번째 기록을 세우는 등 이미 성공적으로 출발한 이 영화는 미국 사회가 최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은 지금 80년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진주만 designtimesp=21096> 제작자인 제리 부룩하이머가 <탑건 designtimesp=21097> <비버리힐스캅 designtimesp=21098> 등 80년대 최대 히트영화를 만든 사람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20년만에 <진주만 designtimesp=21099>을 등에 짊어지고 부활한 ‘흥행의 귀재’ 제리 부룩하이머는 미국 영화계의 시계바늘이 다시 80년대로 돌아왔음을 선언하고 있다.영화만이 아니다. 80년대 미술의 상징인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 기수였던 줄리안 슈나벨이 다시 무대 중심에 서고 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컴백무대를 준비하고 있고 80년대 노래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85년 월스트리트 다우지수가 1,300을 넘었을 때 “우리는 물질의 세계에 산다. 나는 물질을 추구하는 소녀(Material Girl)”라고 노래하면서 ‘Material Girl’이란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만들어낸 마돈나도 지금 다시 복귀를 준비중이다.지난해 3월 나스닥 정점 전후 문화기류 급변정치권도 80년대 분위기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부통령과 대통령을 역임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아들이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다. 그의 정책 또한 80년대를 상징하는 정치인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스타워즈 미사일 방어구상에서 감세정책을 골자로 하는 경제정책이나 환경정책 모두 닮은 꼴이다. 대통령 주변의 참모들도 대부분 그때 그 사람들이다. 무간섭주의를 표방하면서 오후 낮잠을 즐겼던 레이건 대통령처럼 부시 대통령도 오후 6시면 ‘칼퇴근’이고 주말에는 거의 일을 하지 않는다.80년대로의 회귀는 지난해 3월 나스닥이 정점에 올랐던 전후에 시작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뉴스위크지가 지난 88년 ‘공식’ 사망선고를 내린 여피문화를 닷컴으로 돈을 번 신흥 부자들이 다시 무덤에서 꺼낸 것. 물론 겉으로 보면 닷커머들은 여피족과 많이 달랐다. 정장대신 캐주얼을 즐기고 품위있는 고급승용차 BMW 대신 S.U.V(스포츠카)를 즐겼다. 그러나 소비성향이 엄청나다는 본질에서는 정확하게 일치했다.이들이 증권시장인 월스트리트나 닷컴을 통해 일확천금을 번 것은 일반인들에게도 운이 좋으면 누구나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1백만달러를 걸고 벌이는 퀴즈게임 ‘누가 백만장자가 되는가’라는 TV프로그램이나 역시 1백만달러가 상금인 생존게임 ‘서바이벌’ 등이 예상을 뒤엎고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식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고 경기도 꺾이고 있지만 한번 시작된 ‘80년대 문화 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백만장자…’ 같은 퀴즈게임과 ‘서바이벌’ 같은 생존게임은 계속 ‘유사품’을 만들어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패션도 80년대식이다. 장식을 최대한 억제했던 미니멀리즘이 유행했던 90년대와는 달리 80년대에는 과도한 치장과 권위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는 경향이 컸는데 이런 문화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한쪽 어깨끈만 달린 섹시한 드레스, 반짝이는 구슬로 장식된 미니스커트, 금속조각이 박힌 단추, 낙하산복과 비슷한 모양의 캐주얼웨어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뾰족한 굽이 다시 유행이고 징 박힌 부츠, 넓은 파워벨트가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조다시나 서지오발렌테 청바지 등 80년대를 풍미했던 패션이 거리에 넘쳐난다.실베스타 스탤론의 <람보 designtimesp=21118>나 아놀드 슈워츠제네거의 <코난 designtimesp=21119>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80년대 남성 위주의 문화까지 다시 등장하고 있다. 남성잡지 GQ의 5월 테마는 ‘로널드 레이건을 낳은 시기에 경의를 표하라’이다. 가공되지 않은 그대로의 힘에 대한 매력은 요즘 문화에 그대로 반영된다. 80년대식 영웅에 대한 추억이다. 대중은 그래서 영화 <글래디에이터 designtimesp=21120>의 주인공 러셀 크로 같은 근육질 영화배우나 ‘서바이벌’ 같은 게임에서 혹독한 환경과 싸워 이긴 생존자들에게 갈채를 보내고 있다.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조지 부시 대통령 보수적 정책도 한몫경기하강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80년대 문화가 붐을 이루는 것은 90년대를 풍미했던 신경제의 종말을 앞둔 미국 대중의 두려움과 초조함이 ‘현실도피, 권력, 통제’ 등으로 상징되는 80년대식 문화로 빠져들게 만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조지 부시 대통령의 보수적인 정책들도 이같은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80년대로의 복귀는 급격한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전쟁에 대한 향수로까지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쟁영화인 <진주만 designtimesp=21136>의 제작단계에서부터 전투복 스타일의 패션이 유행했고 자동차회사들이 새로 개발하는 차종들의 모습이 군용차량과 비슷할 정도다.서점가에서도 NBC방송의 유명앵커인 톰 브로카우가 2차대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엮어 98년 출간,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됐던 <위대한 세대 designtimesp=21139> 후속편이 계속 인기를 끌고 있다. 제임스 브래들리가 지은 <아버지 세대의 깃발들 designtimesp=21140>이란 책도 지난해부터 줄곧 45주 동안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브래들리는 2차대전중 유일한 일본 본토 상륙전투로 7천명에 가까운 일본인이 사망했던 아이오지마 전투에서 성조기를 꽂은 군인의 아들. 그는 불과 몇 해 전까지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무려 27개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지만 80년대 붐을 타고 성공작가 대열에 올랐다.미국이 가고 있는 80년대 붐의 끝이 어디일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