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IT관련 산업 ‘암울’, 재고수준 여전히 높아 … 삼성전자 바닥권 진입 ‘매수기회’

반도체를 보면 세계 경기의 회복 시기를 알 수 있다. 반도체 경기를 살펴봐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기는 전자와 IT관련 산업이 선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자제품 세트(완제품)수요가 증가하면 세트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수요가 증가한다. 전자제품 세트(완제품)를 만들려면 반도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의 디지털화가 진전되고 있다. 휴대가 간편하려면 제품의 크기는 자꾸 작아져야 한다. 이동 중에도 음성과 데이터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려면 고주파 무선통신(RF)이 필수적이다. 이 모두 반도체산업의 발전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결국 D램으로 대표되는 반도체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반도체업체들의 수익이 회복된다면 이는 한국 경제의 회복, 아니 세계 경기 회복을 알리는 초봄의 꽃소식과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호전되기 보다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관련업체들의 수익은 1분기보다 2분기가, 2분기보다 3분기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2위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이미 분기별 수익이 적자로 돌아섰고 확대추세에 있다. 일본과 대만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메모리를 주력으로 하는 반도체업체 가운데 아직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던 삼성전자마저도 여름 들어 반도체 사업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반도체 장비업체 사장들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의 발주서를 받아본 기억이 언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이다. 반도체와 LCD 생산에 필요한 재료를 납품하는 업체들은 가격을 깎아 주느라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수요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재고라도 없다면 가격은 강세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재고 감소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3분기말 재고금액은 분기 매출액보다 많았다. 독일의 인피니언 등 세계 대부분의 업체가 7~8주 내외의 분량을 재고로 떠 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호황기 1~2주 재고에 비하면 턱없이 많은 수준이다.하이닉스반도체 이어 삼성전자도 적자D램 현물가격은 변동원가(Cash Cost) 아래로 내려간 지 오래고 이제 계약가격마저 변동원가 수준을 위협하고 있다. 수요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PC시장의 38%와 10%를 점하고 있는 미국 일본 경기가 여전히 좋지 않다. 감원바람이 불고 있는 기업들의 대체수요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포화 상태인 개인의 PC대체수요는 구매력과 소비심리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성장률은 20%를 상회하나 아직 기여도가 낮다. 물론 가을 이후 미국 개학철과 겨울 추수감사절에서 성탄절로 이어지는 성수기를 맞아 수요가 다소 회복될 전망이다. 윈도XP 출시와 펜티엄4 가격 인하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년 상반기 비수기에는 다시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99년과 2000년 상반기 PC수요가 많았던 점과 PC교체주기가 3년이란 점을 감안하면 2002년 하반기 이후가 기조적인 회복이 가능한 시기라고 판단된다.메모리 반도체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서버 워크스테이션급 컴퓨터와 디지털TV를 비롯한 새로운 가전 및 개인용 정보화 기기들은 어떠한가. 닷컴의 몰락으로 중고 서버급 컴퓨터들이 시장에 흘러나오고 있다. 디지털TV 디지털 셋톱박스 디지털캠코더 등은 2003년은 돼야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각각 Rambus D램과 DDR D램을 사용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등 고성능 게임기도 경기가 나쁘면 성장이 더딜 것이다.통신용 반도체의 경우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핸드폰의 수요도 예상보다 부진하기 때문이다. 연초에 5억3천만대를 예상했으나 요즘은 전년 수준인 4억만대가 팔려도 다행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보조금 지급을 금지했다. 3개 사업자 구도를 정착시키려는 정부의 정책의지로 볼 때 보조금 부활은 어려울 전망이다. 선 후발업체간의 재무능력에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유럽의 이동전화사업자들은 IMT 2000 주파수 경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보조금 지급을 늘릴 능력이 충분치 않다. 훨씬 가격이 올라갈 2.5세대 혹은 3세대 핸드폰 수요확대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고성장을 구가하던 S램과 플래시메모리 마저 효자노릇을 그만 두게 된 배경이다.물론 돌파구는 인위적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 업계의 감산 공조가 그것이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이미 변동원가 아래로 내려간 판매가격으로 인해 일부 제품은 생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스트가 높은 일본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러나 돌파구가 생기느냐 하는 문제는 세계 1, 2위이며 불황을 끄떡없이 견딜 수 있는 재무구조를 갖춘 삼성전자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태도 변화에 달려 있다.사실 97~98년의 불황을 겪으며 한국과 일본업체들은 감산공조를 통해 이를 극복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나서 이들은 후회하고 있다. 대만의 생존기반을 만들어 줬다는 반성이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앉아서 덕을 봤다. 기다리면 다음의 호황기에 더욱 강해질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오히려 불황을 즐기려 하는지도 모른다.18%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가 자체 물량의 16%를 차지하는 미국 유진공장의 가동을 6개월 동안 중단키로 했다. 0.22um으로 가공하는 생산기술을 0.16um 기술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조치로 감소하는 D램 생산량은 전세계적으로 6일간 소요되는 물량에 불과하다. 세계시장의 40%를 점유하는 상위 2개사의 협조가 없다면 현재 6~8주 판매분량에 달하는 재고의 일부를 줄여주는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감산 공조 가능성 낮아 … PC·핸드폰 수요회복이 관건결국 미국 금리인하의 효과가 나타나 주가가 오르고 가처분소득이 늘어난 개인의 PC와 핸드폰 수요가 증가할 때까지 불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투자 축소로 인한 공급능력 제한의 효과도 앞으로 1년은 더 기다려야 가시화된다. 불황이라는 터널의 끝은 앞으로 3~4분기가 지나야 보일 것 같다.그러나 삼성전자 주가는 이제 바닥권에 근접했다고 판단된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순이익 규모를 2분기 연속 추월했다. 시가총액은 인텔의 9분의1에 불과하다. D램에서 1, 2위를 다투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EBITDA(감가상각비 공제전 세전영업이익)로 비교하면 삼성전자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3배에 달한다. 시기적으로 아직 경기회복의 시기를 논하기는 빠르지만 불황의 터널을 지나면 더욱 강자로 거듭날 회사를 보다 싼 가격에 살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