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 알려진 일본의 좋은 이미지 중 하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천국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강·절도 사건이 적은 데다 흉악범죄도 많지 않아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마음놓고 살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이런 평가가 선입견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본 경찰당국이 대책마련에 유난히 골머리를 앓는 것은 차량 대상 도난사고다.자동차 도난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는가는 통계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89년부터 98년까지 10년간 일본에서 발생한 자동차 도난사고는 연평균 3만5천건 전후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99년 4만3천92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00년에는 5만6천2백5건으로 치솟았다. 일본 경찰당국은 자동차 도난이 급증한 원인으로 러시아와 아시아를 거점으로 한 대규모 절도단의 암약과 느슨해진 감독법규를 꼽고 있다. 훔친 자동차를 손질한 후 해외로 내다 파는 조직이 기승을 부리는 데다 수출관련 법규개정으로 중고차 수출 절차가 간소해지다 보니 환금성이 높은 자동차가 먹이감으로 각광받게 됐다는 것이다.“올 한햇동안 30억엔 매출 무난” 전망자동차 도난 사고가 급증하면서 때 아니게 인기상품으로 등장한 것은 도난방지 용품이다. 자동차용품 업체 중 일본 최대를 자랑하는 ‘오토백스 세븐’의 각 점포 등 전문업체 매장에서는 도난을 막아주는 장치와 아이디어 상품들이 올 여름 매출 증가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업체 관계자들은 도난방지 용품 한가지만으로도 올 한햇동안 30억엔(약 3백30억원)의 매출이 무난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꾸준한 수요 증가를 기대하는 눈치다.초장기 불황에 따른 매출 뒷걸음으로 모든 유통업체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는 일본의 현실과 비교하면 도난방지 용품은 대단한 특수를 누리는 셈이다.매장 관계자들은 인기를 끄는 도난방지 용품을 크게 두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빛과 소리로 범인을 놀라게 해 도난을 막아 주는 장치와 핸들과 액셀러레이터를 고정시켜 자동차가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이중 가장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빛과 소리로 범인을 쫓는 장치다. 오토백스 세븐의 최근 월간 매출 랭킹에서도 상위 10개 품목 중 2위와 3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빛과 소리로 도난을 막는 장치가 차지했다.특히 매출 1위에 오른 카토전기의 ‘호네트 18M’은 엔진 룸에 장착한 상태에서 운전자가 자동차를 떠나 있는 동안 조금만 충격을 줘도 경보 사이렌이 울리도록 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충격만 가해지면 큰 소리가 나도록 해 차를 훔칠 의지를 쉽게 포기하게끔 만든 것이 이 상품의 최대 장점이라고 매장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카 메이트의 ‘나이트시그널 SS SQ17’은 자동차 대시 보드에 장착해 놓으면 차내 진동을 스스로 감지해 적색의 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갑작스럽게 빨간 빛이 쏟아지면서 자동차를 훔치려는 범인을 놀래 준다는 것이다.도난사고가 급증하자 자동차업계와 손해보험업계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유럽에서 보편화된 ‘이-모빌라이저’, 즉 자동차 열쇠가 들어 있는 송신기를 통해 운전자 고유번호와 차량 본체의 전자제어장치 등록번호를 입력시키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장치를 보급하는 것이 대표적 아이디어다. 하지만 그만큼 자동차 가격이 비싸지는 데다 보험업계의 요율할인 문제 등으로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하소연.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도난방지 용품이야말로 반짝 인기 상품이 아닌 스테디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