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역사책에 애착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한때 우리나라 증권 애널리스트 업계의 대부 역할을 하셨던 분이 퇴임한 지금은 국내외 역사책을 애독하신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이력상으로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경제와 증권’ 서적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서적을 애독하는 이유는 아마도 “투자의 세계가 반영하고자 하는 경제 현실도 결국은 역사와 사회라는 큰 흐름 속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이제 2002년이라고 새롭게 구분된 시간 여행을 시작할 때가 왔다. 새해를 맞이할 때는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에 더 주목하고 싶은 게 보편적인 사람 심성이다. 그런데 미래에 대해 전망할 때 가장 강력한 판단 준거가 되는 것은 ‘지금 당장의 현실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99년 12월에 주가가 1,000을 넘는 초 강세를 보였을 때, 각 증권사들이 발간하는 2000년 주식시장 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다.(2,000 돌파를 이야기하는 보고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음)반면 2000년 12월 주가가 500선까지 힘 없이 하락했던 때에는 당장 연말 배당투자나 1월 효과에 대해서도 선뜻 강하게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었다. 그렇다면 2001년 12월의 분위기는 어떠했었는가. 4분기 들어 ‘V’자형 주가 반등을 경험한 시장 참여자들은 낙관적인 가정만을 보고 싶어하는 현상에 젖어서 대부분의 2002년 주식시장 전망은 다시금 장밋빛 일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연말과 연초의 상반된 정서 반전이 2002년에도 나타날지, 아니면 연말의 낙관적인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지 지금으로서는 단언하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 두 해 연속 연초에 나타났던 정서 반전을 통해 간접적인 시사점을 얻을 수 있겠다.먼저 한 마디로 흥분에 들떠 있었던 99년 연말을 생각해 보자.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다는 밀레니엄 진입을 앞두고 미래의 성장성이 일방적으로 부각됐다. 투자자의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좀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앞만 바라보려는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이런 관성의 균형점이 바뀌는 변곡점은 여러 시점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극적인 변곡점은 2000년 1월1일 0시였던 것 같았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밀레니엄 시대에 진입하는 영국은 템즈 강 주변에 건립한 대형 밀레니엄 돔 개막식을 이 역사적 시간에 거행했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역사적인 카운트 다운이 밀레니엄 돔 개막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입에서 정확히 1999년 12월31일 23시59분 이후 시작됐고, 2000년 1월1일 0시를 가리킨 직후 잔잔한 심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이 벌어진다.역사적인 카운트 직후 대여섯살 정도 됨직한 어린 여자 아이가 왕년의 인기 그룹 아바의 ‘I Have A Dream’을 앳된 목소리로 불렀다. 잔잔하게 울리는 올드 팝스를 들으면서 필자는 요란하게 시작하는 2000년도 결국 평범한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1월 시장은 사람들의 기대와 반대로 움직였다.2000년 연말은 바로 직전 있었던 2차 퇴출 기업 발표 이후 기대를 모았던 랠리 가능성이 무산되면서 시장 전체에 무기력 증상이 퍼졌고 바로 1년 전에 실패했던 ‘1월 효과’ 기대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조건 반사가 형성됐던 시점이다. 이런 분위기와 달리 2001년 1월에는 모처럼 ‘1월 효과’가 현실화됐다.서두에 어느 애널리트가 퇴임 후 ‘경제와 증권’ 서적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서적을 애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역사를 통해 선조의 성공과 실패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큰 지혜는 결국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특히 주식시장의 세계에서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다소 엉뚱할 수 있는 주장을 펴고 싶다.주식시장은 미래의 기대를 사고 파는 시장주식시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주식 현물을 사고 파는 시장이라기 보다는 미래의 기대를 사고 파는 성격이 더 강하다. 양떼 근성과 같은 쏠림 현상이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장에서 의외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은 바로 과거의 경험을 되새길 때 소위 ‘최근 효과(Recency Effect)’가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크게 봤을 때 역사는 반복되겠지만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는 시장 참여자들은 바로 직전의 유사한 경험만을 집착해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2000년 1월에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였으니까 2002년 1월에도 주가는 오를 것이라 생각하기가 쉽지, 99년 1월에 주가가 약세를 보였으니까 2002년 1월에도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매우 힘든 게 오늘 날의 주식시장 현실인 것이다.이런 측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인해 2002년 1월 주식시장에서는 흥분보다는 절제력이 몇 배로 더 필요한 접근방식이 유효해 보인다.첫째, 유가 수혜 측면에서 볼 때 석유 감산이 시행되는 2002년 1월에는 외국인 투자자의 모멘텀 플레이(Momentum Play)가 올해보다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둘째, 일본과의 연계성 측면에서 2002년은 2001년과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1년의 경우 한국은 견실한 내수시장 성장에 힘입어 ‘일본산 경기침체’를 수입하는 메커니즘에 빠지지 않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본의 구조조정 부진으로 인해 디플레 압력이 고조되며 일본도 마침내 환율 평가절하를 통해 ‘일본산 경기침체의 수출’ 구도의 당위성을 국제 사회에서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다. 산업 및 정책 구조적 측면에서, 일본산 경기침체의 수출 대상 후보로는 1차적으로 미국과 중국보다는 한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겠다.셋째, 용적률 변경과 주차장 관련 법령 개정에 따른 주택의 한시적 특수 피크가 마무리되는 2월부터는 수도권 지역에서 부동산 공급 과잉 효과가 점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소비자들의 차입 여력이 확대됐고 실제로 한국 가계부문은 부채를 통한 소비지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만약 부동산 시장 활황세가 결국 버블로 판단될 경우 현재의 소비자 부채 증가 붐은 많은 숙제를 던져줄 것으로 예상된다.종합적으로 볼 때 주식시장에서 단기적인 전망은 ‘최근 효과(Recency Effect)’에 영향받기 쉽다는 점을 감안해 2002년초에는 작심삼일에 그칠 수 있는 무분별한 낙관론에 휩쓸리지 않는 시장 접근을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