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1은 최고의 수를 의미한다. 인도인을 제외하고는 0이라는 숫자를 몰랐기 때문에 자연수 1은 언제나 숫자세계의 출발점이었다. 인도인의 0은 아랍세계를 거쳐 13세기 이탈리아로 전해졌고 이로써 유럽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수학의 세계로 들어섰다.1은 남성이며 유일신이며 집중력, 창조력을 의미했다. 2는 분쟁을 뜻하며 여성적인 수로 인식됐다. 3은 신성한 수로 인식됐다. 3위일체며 시간(과거, 현재, 미래의 의미에서)을 뜻했고 사랑을 함축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졌다. 4는 두 발을 딛고 있는 땅을 의미하며 5는 결혼,완전성 또는 물질의 원소를 의미하며… .숫자의 세계는 이렇게 진행돼 거대한 수비학(數秘學·Numberology)의 체계를 구축해 왔다. 자연수로만 이뤄졌던 피타고라스 시대 이후 가장 아름답고도 비밀스러운 숫자인 1.618의 피보나치수열에 이르면 누구라도 금방 숫자가 들려주는 은밀하고도 신비로운 세계에 들어설 자격을 갖추게 된다.피보나치수열은 우리가 흔히 보는 소라고둥의 나선형 곡선이며 십자가에서 가로막대와 세로막대에서 보듯이 언제나 동일한 비례로 스스로를 키워가는 신비로운 숫자다.레오나르도 다빈치 시대의 이탈리아 수학자 파치올리는 <수학 기하학과 비례학의 최고봉 designtimesp=22550>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지만 복식부기를 발명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1494년에 완성된 파치올리의 복식부기를 통해 비로소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최고조의 상업적 성공을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복식부기의 발견이며 온갖 투기적 자산의 가치평가 기법들이 긴밀한 연관관계를 갖고 이 시기부터 맹렬한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피보나치 스스로도 “두 사람이 여섯 판짜리 게임을 하다가 A가 다섯 판을 이기고 B가 세 판을 이긴 상태에서 게임이 종료됐다면 판돈은 어떻게 나누는 것이 옳은가” 하는 확률문제를 퀴즈로 제시하고 있다.바로 이런 수학적 사고들이 자리를 잡고 나서야 증권과 보험등 확률과 투기에 의존하는 상품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열풍도 고도의 확률론에 뒷받침된 옵션거래가 있었기에 그토록 맹렬한 기세로 번져갔던 것이다.마치 화학의 발달이 연금술의 발전과 표리를 이루었듯이 수학의 만개(滿開), 때로는 자본시장 역시 수비학적 암호들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며 발달해왔다.버트란트 러셀은 복식부기를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다지만 현대판 연금술사들이 온갖 신비를 쏟아내는 21세기 월스트리트에서 다른 것도 아닌 회계문제가 온통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은 10년 호황과 주식 신비주의가 무너져내린 다음의 허망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실제로 치솟는 주가를 정당화하고 수십 배의 레버리지를 가진 고위험 파생상품 거래를 정당화하는 데 얼마나 많은 수비학적 암호들과 복잡 난해한 복식부기들이 동원됐던가.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복식부기가 더 이상 숫자의 진실을 들려주지 못하고 한때 너무도 견고한 것처럼 보였던 주가배수(PER 숫자)며 EBIDTA의 성채가 허망하게도 무너져내리고있는 것을 보는 것은 또 얼마나 비장미 넘치는 일인가 말이다.사람은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있지만 고도의 전문성과 정밀도를 자랑하는 미국의 복식부기(GAAP)체계가 이리도 허망하게 녹아내릴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다.머지않아 파생상품 분야에서도 초대형 분식회계 문제가 터저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지만 제아무리 명징한 숫자라고 한들 인간 욕망의 수비학적 증거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지금 월스트리트가 웅변하고 있다.